2020년도 예산안 심사 막바지의 키를 쥔 국회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산하 소소위를 구성하는 여야 3당 간사. 왼쪽부터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국회법에 따르면 예산안은 각 상임위원회가 예비 심사를 거친 뒤 예결위원회가 본심사를 한다. 예결위원회는 10월 말부터 본격적인 예산 심사에 돌입했다. 11월 11일부터 22일까지는 예산안조정소위를 통해 예산 감액 심사를 진행했다. 예결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173건에 대한 예산 감액에 합의했지만, 478건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면서 결정을 보류했다.
예산안조정소위가 기한 내에 예산 심사를 끝내지 못하면 소소위가 꾸려진다. 간사협의체라고도 불리는 소소위엔 교섭단체 3당 간사들과 예산안을 수립한 기획재정부 차관, 예산실장 그리고 예결위 수석전문위원이 참가한다. 여야는 소소위를 구성해 보류된 감액 심사 건과 예산 증액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된다. 예산 증액 논의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을 담은 ‘쪽지 예산’이 항상 문제가 되곤 했다.
소소위는 국회법상 근거가 없는 조직이다. 일종의 실무회의 개념이다. 이 때문에 소소위는 회의 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없다. 소소위를 두고 언제나 ‘밀실 흥정’ 지적이 불거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밀실에서 협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당 실세나 예결위 간사를 중심으로 한 쪽지 예산 논란 또한 끊이질 않는다.
국회 본청 예결위원회 휴게실에 예산 심사 관련 서류들이 빽빽히 놓여있다. 사진=이동섭 기자
쪽지 예산은 다른 말로 하면 지역구 민원성 예산안이다. 의원들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 예산을 A4용지에 적어 예결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하면서 유래했다. 그런데 최근엔 새로운 유형의 쪽지 예산이 등장했다고 한다. A4용지 대신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민원을 전달하는 의원들이 많아지면서 ‘문자 예산’, ‘카톡 예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반영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총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쪽지 예산 전쟁은 더욱 치열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한 의원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구 민원 예산을 거부하긴 힘들다”고 토로했다.
쪽지 예산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자 예결위원장인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소소위 회의 내용 공개를 제안했다. 김 의원은 여야 3당 간사 3인으로 소소위를 구성하되 매일 논의를 마친 뒤 언론에 브리핑하고 회의 속기록을 반드시 작성하며 비공식 회의도 논의 내용을 기록하자고 했다. 여야 간사 3명(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도 11월 27일 오후 2시경 이에 합의했다.
27일 일요신문과 만난 김재원 의원은 ‘소소위 속기록 공개 합의가 무분별한 쪽지 예산 감소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뭐 그렇겠지”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예결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사실 쪽지 예산은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결위에서 미리 결의한 서면을 바탕으로 (소소위에서) 심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쪽지 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국회 예결위원장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3당 간사 합의가 한창이던 무렵 예결위원회가 있는 국회 본청 6층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지자체 로고가 찍힌 팸플릿을 손에 든 이들은 예결위원장 사무실 앞을 서성였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예결위 수석전문위원실을 드나드는 모습도 보였다.
11월 27일 오후 3시경 소소위 첫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당 간사들이 수석전문위원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앞서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이곳을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회의가 시작된 뒤 수석전문위원실 내부에선 간간이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회의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소위는 11월 28일 회의 속기록 공개 결정을 번복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3당 간사는 29일 오후 5시까지 공식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 예산안 처리 마감 시한은 12월 2일이다. 시간상으로 굉장히 촉박한 상황에서 소소위에 모인 여야 3당 간사들은 500여 건에 가까운 예산 증·감액 심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를 두고 “예산안이 날림으로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1월 27일 오후 3시 10분부터 국회 예결위 수석전문위원실로 모이기 시작한 여야 3당 간사. 왼쪽부터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사진=이동섭 기자
소소위와 관련해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낡은 폐습·구습이라 볼 수 있다”면서 “국민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회의 속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민의를 대변하는 책임 있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채진원 연구원은 이어 “국회의원들이 쪽지 예산을 따오면 이를 국민들에게 자랑을 하면서 선거운동으로 연계시킨다. 이는 폐습이다. 이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포장해 선전하면 균형적인 예산 집행이 어려워진다”며 “국익과 별개로 지엽적인 지역구 개발의 자랑거리로 예산을 따는 관행이 지속되면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이지 못하는 반작용이 있다. 자칫하면 예산 심사 자체가 ‘불공정 게임’이 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