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손실을 낳은 ‘DLF(파생결합형펀드)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후속조치와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 위축이 맞물리며 은행권의 상품 판매가 위축되는 모습이다. 사진은 한 은행의 창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문제가 된 DLF 상품은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를 편입한 원금 비보장형 사모펀드로, 은행이 한 번에 1억 원 이상 투자 가능한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된 것이다. 고위험 상품이지만 예금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처럼 팔렸다. 하지만 평균 손실률 52.7%, 최대 손실률 98.1%를 기록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1월 14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해당되는 사모펀드와 신탁을 은행과 보험사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탁(ELT, 주가연계형신탁‧DLT, 파생결합형신탁)은 이번 파생결합펀드(ELF, 주가연계형펀드‧DLF)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신탁이 사모펀드 우회 판매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 같은 규제 조치에 대해 우려가 나온다. 은행에서 판매되는 신탁의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신탁과 같은 상품들의 판매량이 확대되는 추세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전체 국내 파생결합증권(ELS‧DLS)의 잔액은 116조 5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약 40%에 달하는 46조 6000억 원이 은행 판매 펀드와 신탁에 편입됐다.
또한, 국회 정무위 소속 고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KB국민·KEB하나·신한·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들이 작년 한 해 동안 판매한 ELT는 47조 4411억 원, DLT는 1조 3770억 원으로 신탁이 총 48조 8181억 원 판매됐다. 이는 판매된 전체 파생상품 55조 9131억 원 가운데 90%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DLF 사태로 48조 원 규모의 은행 판매 신탁 시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추론이 나온다.
사모펀드와 함께 신탁까지 규제 대상에 오르자 일각에선 우려가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DLF 하나 때문에 엉뚱한 상품들까지 피해보는 이 상황이 말이 되느냐”며 “DLF 때문에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은데, 마지막까지 금융권의 민폐로 남았다”고 말했다. DLF 잡으려다가 신탁까지 괜히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DLF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신탁 규제와 별개로 DLF에 대한 공포 심리로 사모펀드 시장 전체도 다소 얼어붙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월 28일 기준 최근 1개월 동안 신규펀드 설정액은 8조 86억 원이다. 올해 7월까지 10조 원이 넘던 설정액이 8월부터 6조~8조 원대로 떨어진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DLF의 문제로 △‘금리 연계 DLS’를 편입한 ‘사모펀드’ △‘은행’에서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한 것을 꼽았다. 덕분에 증권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미 사모펀드의 특징을 잘 아는 고객들이기 때문에 큰 손실은 없지만 은행의 경우는 다르다”며 “은행을 방문하는 이들은 DLF의 성격을 잘 모르고, 일반인인 자신의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 분위기는 달랐다. 금융권 관계자는 “DLF 사태 이후에 은행에 방문하는 일반 고객들은 상품 소개를 받다가도 ‘파생상품’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살펴보더라”며 “불안 심리 때문에 일반 예금이나 적금 등 전통적인 상품 소개를 받을 때도 ‘손실 위험이 없는 게 확실하느냐’며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계속 우려하더라”고 전했다.
이정민 성균관대학교 법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융회사는 금융기관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신뢰와 안전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이번 사태로 고객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선물이나 증권이 아닌 은행에서의 투자였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기대심리가 있었지만, 결국 DLF 사태로 모든 상품을 의심하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DLF는 미꾸라지처럼 다른 금융상품들을 흐려놓은 셈”이라면서 “고객들 입장에서도 은행을 무조건 신뢰하기보다는 확실하게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제재 조치를 발표하며 사모펀드의 일반투자자 요건을 최소 1억 원에서 3억 원으로 강화했다. 이에 대해 향후 방카슈랑스(은행권에서 보험 판매 허용) 판매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신탁과 방카슈랑스의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데 신탁이 막히게 되면 앞으로 방카슈랑스를 활성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