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조선업계는 여전히 불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9% 떨어진 1539만CGT(Compensated Gross Tonnage·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를 기록했다. 국내 조선사들의 1~3분기 수주량 역시 49.1% 하락한 527만CGT를 기록했고, 점유율마저 중국에 뒤처진다. 2018년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점유율은 38.2%, 중국은 30.3%였지만 올해 1~3분기 기준으로는 중국이 38.8%로 34.3%인 한국을 역전했다.
조선업계의 앞날이 암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2020년 1월 1일부터 국제해사기구(IMO)가 선박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강화하는 ‘IMO 2020’ 규제가 시행된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20년의 선박 수명을 감안하면 2023년부터 발주량이 증가하겠지만 IMO 2020 규제 효과가 반영되면서 발주량 증가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IMO 2020의 대안으로 꼽히는 LNG추진선은 국내 조선소들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LNG추진선은 열효율이 높은 친환경 선박이지만 그간 높은 발주 가격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글로벌 조선업이 호황기로 전환하더라도 중형 조선사들은 예전 같은 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성동조선이 2016년 건조한 셔틀탱커. 사진=성동조선
글로벌 조선업이 호황기로 전환하더라도 중형 조선사들은 예전 같은 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 점유율은 30%가 넘지만 중형 선박 점유율만 살펴보면 3.4%에 불과하다. 국내 중형 조선사들이 LNG 기술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LNG추진선은 대부분 대형선 위주기에 중형 조선사들은 건조 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에 성동조선을 인수한 HSG중공업도 당분간 선박 건조 계획은 없다고 밝혀 당장 점유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HSG중공업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성동조선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내실을 먼저 다지는 게 우선”이라며 “당분간은 국내에서 선박 블록 위주의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고 전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계의 대형 선박은 중국, 일본과 비교해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중·소형 선박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며 “중형 조선사들이 대형 3사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해 대형 선박 시장에 뛰어들거나 중형 시장에서 중국을 압도하는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시점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향후 중형 조선사들의 사업 방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앞의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수가 완료되면 대우조선해양의 계열사들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재편이 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면서도 “국내 중형 조선사들은 직·간접적으로 대형 조선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어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중형 조선사들의 사업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중형 조선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박종식 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신조시장은 중소형 선박이 50% 정도 수준을 차지하기에 기본적으로 중형 조선사들의 시장 잠재력은 크다고 할 수 있다”며 “조선 산업이 향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의 중형 조선소들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 중형 조선사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는 생산 고정비가 높고, 중형 조선사는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수주전에 뛰어들면 윈윈할 수 있다”며 “대형 조선사들은 경쟁력이 높아지고, 중형 조선사들은 안정적으로 일감을 수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재무 사정이 어려운 중형 조선사들을 통폐합해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실제 일본 이마바리조선은 총 10개의 중소 조선사를 인수해 일본 최대 조선사에 올랐다. 하지만 한 중형 조선사 채권단 관계자는 “조선사 통폐합을 논의한 적은 없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각 조선사들의 업종이 다 다른데 통합한다고 해서 기술력이 높아지는 등 시너지 효과가 날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성동조선은 4번의 매각 시도 끝에 인수 후보자가 나타났지만 다른 중형 조선사들은 여전히 M&A 시장에서 주목을 못 받고 있어 매각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남도 통영시에 위치한 성동조선 작업장 전경. 사진=성동조선
성동조선은 4번의 매각 시도 끝에 인수 후보자가 나타났지만 다른 중형 조선사들은 여전히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주목을 못 받고 있어 매각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형 조선사 채권단들은 “조선산업의 전망은 세계 경기와 연동돼 있는데 그걸 예측하긴 어렵다”면서도 “현재로선 매각 등의 계획은 없고 경영정상화에 힘쓰고 있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중형 조선사들은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다른 중형 조선사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일본 조선 업체들이 한국의 조선산업을 위협하고 있는데 정부는 지원 정책 없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수주물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원활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지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존 1000억 원인 중형 선박 RG(선수금환급보증) 규모를 20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며 “중소 조선사의 LNG추진선 건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RG는 조선소가 배를 제때 만들지 못하면 선주에게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지급하는 내용의 보증을 뜻한다.
일부에서는 RG 규모 확대보다 RG 발급 기준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종식 연구원은 “수주 가뭄을 버티기 위해 조선사들은 낮은 가격에라도 선박 수주를 해야 하는데 채권단은 척당 1%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수주 건은 RG 발급을 거부한다”며 “조선소 운영을 위해 적자만 아니라면 이윤이 거의 없더라도 RG 발급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