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바이오 시장의 시선은 메지온에 쏠렸다. 올해 글로벌 임상 3상 결과를 내놓을 마지막 업체였기 때문이다. 발표 시점은 일찌감치 예정돼 있었는데, 메지온이 11월 5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AHA 2019)에서 소아 심장수술 부작용 개선제 ‘유데나필’의 글로벌 임상 3상 톱라인 데이터를 발표한다”는 짤막한 소식을 전하자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같은 달 12일 메지온 주가는 25만 76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메지온은 지난 11월 17일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연구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애매한’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메지온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막상 발표 이후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연구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깔끔하게 가늠하기 어려운 ‘애매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열린 AHA 2019에서 미국 필라델피아소아병원 의료진은 유데나필의 임상 3상 결과, 유효성 1차 지표(산소소비량)는 입증하지 못했으나 2차 지표(운동성능)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메지온은 예정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메지온의 임상 발표를 두고 “사실상 실패” “절반의 성공”이라는 엇갈린 평가부터 “의학적으로는 성공이다” “시장성 자체가 없다”는 논쟁까지 생기면서 투자심리는 빠르게 식었다. 결과 발표 하루 뒤인 18일 주가는 23.37% 급락했고, 29일 주가는 종가 기준 13만 9800원으로 52주 신고가 대비 45.84% 떨어진 상황이다.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주식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9월 18만 원대에서 거래되던 헬릭스미스는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용 파이프라인 ‘엔젠시스’의 임상 3상 실패로 9월 말 주가가 6만 원대까지 급락했다. 현재 헬릭스미스 주가는 다시 9만 원대로 올랐지만, 임상 발표 직전 20만 4100원까지 올랐던 9월 17일과 비교하면 55%가량 떨어졌다.
신라젠의 실패는 아직까지도 주식 시장 ‘쇼크’로 꼽힌다. 지난 8월 미 독립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는 신라젠의 항암바이러스 간암 치료제 ‘펙사벡’에 대해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했다. 사실상 임상 3상 실패로, 회사 시가총액이 1조 원 넘게 증발했다. 한때 8만 2900원까지 올랐던 신라젠 주가는 8000원대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1만 원대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바이오 업계는 어느 산업군과 비교해도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다. 신약이 국제 무대에서 진검승부를 할 정도의 매출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업 가치를 정량적으로 판단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며 “그러다 보니 기관 한두 곳이 바이오 업체에 투자하면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 회사의 주식 가치가 기대감으로 인해 고평가됐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고무줄 처럼 큰 폭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는 이유는 국내 바이오 시장이 태생부터 기대감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일요신문DB
이러한 바이오 시장의 ‘기현상’은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대형 사건’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미약품은 프랑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사노피에 당뇨병 치료신약후보물질에 대한 퀀텀 프로젝트에 성공했다. 계약금만 4억 유로(약 5000억 원)였고, 임상단계 및 상업화에 따른 마일스톤(수수료) 35억 유로(약 4조 33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이전까지 성공했다. 이후에도 한미약품이 잇따라 기술수출에 성공하면서 주식 시장에서 ‘로또’로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거래소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셀트리온 역시 10조 원 규모의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바이오산업이 급부상했다. 동시에 정부는 상장규정을 완화하면서 기술특례조건의 바이오기업의 상장 문턱을 크게 낮췄다. 헬릭스미스가 기술특례 상장 1호 기업이었고, 신라젠 역시 이 조건으로 주식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은 반도체와 함께 정책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산업이고, 첨단바이오법 역시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도적 지원까지 뒷받침됐다”며 “과거 벤처투자 자금도 바이오 산업에 몰리기 시작했다.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올해부터 바이오 시장을 전면에서 이끌던 업체들이 예외 없이 미끌어졌다는 점이다. 한미약품은 올해 1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 취소됐고,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는 품목허가가 취소되면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잇따라 실패 또는 논란을 불러온 신라젠, 헬릭스미스, 에이치엘비, 메지온도 모두 주요 바이오 종목이었다.
다른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신약 개발 기업들의 성장을 위해선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돼야 한다. 신약 개발 하나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며 “다만 선순환을 위한 투자를 넘어 과열 양상을 띠게 됐고 자금 쏠림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 만큼 향후 국내 바이오 기업 가치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될 가능성도 생겼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과 증권가에선 일제히 투자자들에게 ‘묻지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제약·바이오주에 공매도가 집중돼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공매도는 주가가 내릴 것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투자기법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공매도 물량을 다시 사서 갚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통상 공매도 기법이 하락에 ‘베팅’하는 만큼 한쪽에 집중되면 주가에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 임상 3상에 도전했던 앞서의 업체들의 경우 결과 발표 시점을 앞두고 공매도 하루 변동폭이 10~20%에 달하는 등 전형적인 투기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공매도가 전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오히려 공매도가 특정 종목의 적정 가격으로 조정해주는 순기능도 있다는 의견도 있어 바이오 시장 공매도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올해 기대를 모았던 업체들이 임상 3상에서 실패하고, 기대감도 다소 가라앉은 만큼 앞으로는 투자 성향도 바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투자자들의 접근 방식도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고평가된 기업 가치들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의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시장은 ‘실패’를 말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지만 글로벌 기업들도 성공하는 일이 드물다”며 “현실적인 투자가 이뤄질 여건은 갖춰진 만큼 앞으로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