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차기 행장에 금융권 시선이 쏠린다.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관료 출신들이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거론되자 노조는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기업은행 노조·위원장 김형선)는 지난 11월 29일 “관치금융을 우려한 금융노조가 낙하산 인사 반대를 천명했음에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현재 후보군 모두 출신을 넘어 자질 면에서도 부적격 인사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관계자는 “차기 IBK기업은행장으로 거론되는 인사를 보면 대부분 기재부(기획재정부)나 금융위 출신”이라며 “IBK기업은행 설립 목적이 중소기업의 육성과 발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관료 출신을 행장으로 선임하려는 게 아니라 자리 나눠 먹기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른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 회장도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한국수출입은행장은 기재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역임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도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을 역임한 바 있고, 전임 수출입은행장인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기재부 관료 출신이기에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행장을 선임할 때부터 노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과 달리 최근 기업은행장은 대부분 내부 출신들이었다. 김도진 행장은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30년 이상 근무했고, 전임 권선주 행장도 1978년 입행해 약 40년을 기업은행에서만 일했다. 조준희 전 행장 역시 1980년 기업은행에 입행한 내부 출신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은 대부분 업무가 정책 금융이지만 기업은행은 시중은행으로서 위치도 공고하다”며 “기업은행장은 경영 능력이나 시중은행에서 필요한 능력이 중요시된다는 것이 다른 국책은행과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KDB산업은행이나 한국수출입은행과 달리 최근 IBK기업은행장들은 대부분 내부 출신이었다. IBK기업은행 본사 앞에 있는 깃발. 사진=박정훈 기자
기업은행에 낙하산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3년 말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이 기업은행장으로 거론됐고, 2016년 말에도 권선주 전 행장의 후임으로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하마평에 올랐다. 그때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측은 거세게 비판했다. 2016년 9월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낙하산 인사만 200명이 넘는다”며 “낙하산 인사와 성과 강요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로 이어졌고 금융산업과 금융소비자에게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노조는 “당시 야당 의원들이 지금은 청와대와 여당·국회의 핵심 인사가 됐지만 6년 전과 똑같은 현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동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갖고 있는 기업들의 지분을 생각하면 정부가 기업은행에 손을 뻗침으로서 국내 중소기업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논란이 거세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2013년 말 논란이 일자 해명자료를 통해 “행장 선임은 향후 관련법령 및 정관 등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으로 후임 행장 선임과 관련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2016년에도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기환 전 수석의 기업은행장 내정설에 대해 “정해진 바도 없고, 전혀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낙하산 논란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인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만 했다.
내부 출신 차기 행장 후보로는 시석중 IBK자산운용 사장,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 임상현 기업은행 전무 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도진 행장의 연임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금융권에서는 김 행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만큼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행장 선임 방식은 법에 명시가 돼 있어서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