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에피소드가 뜨면 바로바로 SNS에 공유되며 화제에 오르는가 하면 온갖 지상파 방송국의 인기 게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채널 개설 7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을 넘겼으며, 이제 심지어 연말연시용 에세이 다이어리가 예약판매 3시간 만에 1만 부 판매고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간 온갖 곳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운 사례가 없었던 게 아니건만, 펭수의 인기는 근래 유례없을 만큼 연일 상종가다.
#EBS, 유튜버 캐릭터를 유튜브에 싣다
사실 펭수가 지금처럼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게 첫 등장 때부터는 아니었다. 올 4월 등장한 펭수가 범국민적 화제에 오른 기폭제가 된 건 9월 방영된 ‘이육대(EBS 아이돌 육상대회)’였다.
이육대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MBC의 명절 간판 프로그램인 아육대(아이돌 육상대회)의 콘셉트를 차용한 특집이었다. 이육대에서는 애 없는 어른들에게야 어떨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인기 만점인 번개맨이나 뚝딱이, 짜잔 형, 뿡뿡이 그리고 ‘보니하니’의 감초 캐릭터 당당맨과 수구수구당당, 먹니 같은 EBS 캐릭터들이 총 출동해 인간팀과 비인간 팀으로 나뉘어 아육대의 포맷을 고스란히 활용한 경기를 펼쳤다. 오랜 시간 잘 구축해 온 캐릭터들을 십분 활용한 이육대는 그야말로 큰 화제를 일으켰고, 펭수는 EBS 주 시청자층을 넘어 전 세대용 캐릭터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한데 이 이육대가 화제를 모은 건 EBS 본방이 아니다. 평일 오후 6시 시간대인 ‘보니하니’의 한 꼭지로 방영되는 ‘자이언트 펭TV’의 이육대 특집을 제 시간에 본방으로 챙겨볼 수 있었던 사람은 EBS 주 시청층인 유아·아동 정도다. 그리고 펭수가 현재 누리게 된 인기의 대부분은 아이와 그 양육자들만으로 형성된 게 아니다. 주제가에서부터 드러나지만 펭수는 뽀로로를 넘어설 만큼 잘나가는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남극에서 한국으로 헤엄쳐 온 펭귄이다. ‘자이언트 펭TV’는 ‘유튜브 스타를 꿈꾸는 캐릭터’를 지상파인 EBS만이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거의 동시기에 노출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육대가 화제를 모은 것도 본방이 아닌 유튜브에서 전 세대 사람들에게 공유된 덕이 컸다. 커뮤니티 등지에서 ‘뚝딱좌’라는 별명(?)까지 붙은 1994년산 뚝딱이의 꼰대짓이 명실공히 EBS를 보고 자라 어른이 된 세대들에게 개그로 다가온 덕도 있겠지만, 이런 관심이 펭수라는 독특한 주연에게 연결된 것이 주효했다. 관심도를 반영하듯, 이육대 편 조회수는 230만여 회로 ‘자이언트 펭TV’ 채널에 올라온 다른 영상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화제 포인트를 파악한 EBS는 이제 아예 펭수 캐릭터를 MBC, SBS, KBS 등 타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에도 출연시키며 아예 방송국의 경계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타 지상파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었던 EBS 입장에서는 유튜브 활용이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할 법했다.
#펭수는 지금 시대 대중이 원하는 걸 주는 중
시쳇말로 콘텐츠는 노출이 반 이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노출된 다음이다. 노출도를 납득할 만한 품질과 이야기(서사)가 받쳐 줘야 ‘인정’ 받기 때문이다.
펭수는 그런 점에서 가장 까다로운 대중들을 납득시킬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210cm라는 덩치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던 설정 상 과거부터 시작해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관종(관심종자)’, 소속사 사장이나 장관에게도 존칭 생략하고 들이댈 수 있는 기개(?), 그 덩치에도 노래면 노래 랩이면 랩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는 엔터테이너 기질과 이를 오롯이 뒷받침하는 연기자의 능력,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거나 타자화하지 않겠다는 방향성까지 여러모로 지금 시대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명색이 ‘교육방송’ 캐릭터이면서도 계도적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사회 구성원 다수가 작정하고 내려놓으려는 듯 보이는 보편타당성을 굳건히 끌어안는다. 여기에 이용자가 자기 나름대로 맥락을 재조립하고 재생산하기 용이한 형태를 띤 ‘짤방’ 내지는 ‘밈(meme)’형 장면과 자막을 작정하고 붙여놓는 제작진의 감각이 뒤섞여 호응을 부추긴다. 아예 공유하라고 떡밥을 마구 뿌려놓는 셈이니, 유튜브로 흥한 캐릭터의 특성을 제작진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셈이다.
분명한 건 노출과 설정 어느 쪽이든 서로 받쳐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캐릭터를 인지하지도, 살아 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캐릭터가 흥하려면 우연과도 같은 발화점도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설득력이 없으면 그저 젖은 성냥일 뿐이다. 펭수는 이 발화점과 설득력이 맞아떨어진 지점에서부터 폭발력을 얻어냈다. 표지에 펭수가 나온 문제집을 학교 다 졸업한 어른들까지 굿즈(관련 상품)라면서 구입하는 모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단순히 귀엽고 예쁘다기엔 무리가 있는 삼백안 거구 펭귄이 이런 인기를 얻는 까닭은 지금 이 시점 대중이 필요로 하고 잃고 싶어 하지 않는 걸 대중이 가장 많이 쓰고 또 좋아하는 방식으로 주고 있기 때문일 터다. 즉 시대정신과 시대 트렌드에 고루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당분간 펭수의 고르고 넓은 인기는 무난하게 계속될 듯하다. 만화를 비롯해 캐릭터 표현을 이용하는 대중 예술 전반에도 공부할 거리를 던져 주는 대목이다.
딱 하나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면 펭수의 대물림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육대에서 뚝딱이가 꼰대로 자리매김한 대사인 “짜잔아, 너 몇 대더라~?”는 EBS 캐릭터가 대물림되는 존재임을 명확하게 말해준다. 이는 실제 인물이 분장을 하고 나오는 번개맨조차 예외가 아니다. 한데 펭수 캐릭터는 잘 짜인 아동극과 대부분 전문 성우의 후시 녹음을 통해 구현되는 여타 EBS 캐릭터와 달리 그야말로 연기자의 기민한 애드리브와 가무 실력, 직접 발화가 맞물려 만들어낸 유튜버에 가깝다.
말인즉 펭수는 콩트 속 캐릭터가 아니라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캐릭터고, 프로그램이 있어 캐릭터가 있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있어 프로그램이 있다. 펭수는 펭수일 뿐 그 누구도 아니며 성별 구분도 필요 없다는 방향성은 실로 훌륭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해당 연기자가 연기하지 않는 펭수를 상상하기 어렵다. 캐릭터의 영속성을 위해선 대물림이 필요할 테지만, 과연 가능할까.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서 되레 벌써부터 괜히 걱정이 든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