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우승 트로피의 향방은 리그 최종일에 결정되며 그 짜릿함을 더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절묘한 리그 종료일 일정
“이번 시즌 K리그는 작가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시나리오가 근사하고 멋졌다.”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시상식장에서 한 시즌 총평이다. 시즌 최종전을 전후로 K리그를 구성하는 선수단, 팬, 관계자, 미디어 등 다양한 이들이 한입으로 외친 말이기도 했다. 2019 시즌 K리그는 리그 최종일까지 최하위를 제외하고 정해진 것이 없었다. K리그는 정규리그 이후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KBO리그 등 다른 종목과 달리 리그 성적만으로 순위를 가린다. 이에 리그 일정이 종료되기도 전에 우승팀이나 다른 순위가 미리 확정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올 시즌엔 근래 보기 드문 순위경쟁이 펼쳐지면서 끝까지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다이렉트 강등이 결정되는 최하위를 제외하면 우승, 준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걸린 3위,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11위 등이 리그 마지막 날 극적으로 결정됐다.
특히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우승 경쟁은 백미였다. 2라운드를 남겨둔 상황, 각축을 벌이던 전북과 울산이 맞대결을 펼쳤다. 울산이 앞선 상황서 승리한다면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양팀은 무승부를 거뒀지만 울산으로선 나쁠 것이 없었다. 이미 승점이 앞서 있었기에 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면 자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전북으로선 무조건 승리를 해놓고 울산의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현장 취재기자들은 마지막 행선지로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기존 우승 트로피에 가품을 별도로 제작해 전북과 울산 양쪽에서 우승 행사를 준비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날인 지난 1일, 가장 극적인 우승 장면이 연출됐다. 전북이 1-0 승리를 거둔 반면 울산은 1-4로 패하며 순위가 뒤집어졌다. 승점은 79점으로 동률, 다득점을 우선시하는 규정에 따라 전북이 1골 차이(72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팀의 1부리그 잔류를 극적으로 성공시킨 유상철 감독에겐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는 약속이 남아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약속 지키겠다”는 유상철
시즌 말미인 10월부터 K리그를 울린 이름은 ‘유상철’이었다. 지난 5월 인천에 부임한 유상철 감독은 시즌 내내 하위권에서 강등을 피하기 위한 생존 경쟁을 펼쳐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건강 이상설’이 돌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은 그의 안색이 유난히 좋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 큰 병에 걸린 사실을 밝혔다.
그럼에도 인천 팬들에게 편지를 남기며 “인천의 K리그1 잔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여러분들이 인천을 믿고 응원해주듯이 저도 끝까지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리그 최종일, 경남과 사투를 벌여 잔류가 확정되는 리그 10위를 지켜냈다. 자신이 언급한 첫 번째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그러나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는 팀이 잔류를 확정지은 다음날인 2일 시상식에 참석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치료를 받을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MVP로 선정된 김보경은 품격 있는 수상 소감으로 울산팬들의 쓰린 마음을 어루만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개인상도 결과를 알 수 없는 각축을 벌였다. 득점왕 타가트(수원)는 2위 주니오(울산)를 1골 차이로 따돌렸고 도움왕 문선민(전북)은 세징야(대구)와 10도움으로 같았으나 적은 경기 수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보경(울산)과 완델손(포항)은 9도움으로 끝까지 이들의 뒤를 쫓았다.
시상식 당일인 지난 2일 발표된 주요 개인상도 예측 불허였다. 특히 최고의 감독에게 주는 감독상은 우승 감독 모라이스 감독(전북)과 막판 집중력을 보인 김기동 감독(포항)이 최종점수 2.89점 차이로 수상 여부가 갈렸다. 모라이스 감독이 선수들에게는 표를 덜 받았지만 감독들의 더 많은 지지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두 감독의 미디어 득표 차이는 단 1표였다.
최우수선수상(MVP) 경쟁은 4파전으로 펼쳐졌다. 기록만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김보경이 13골 9도움, 문선민이 10골 10도움, 세징야가 15득점 10도움, 완델손이 15골 9도움으로 대동소이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MVP는 김보경이 받았다. 김보경은 감독·선수·미디어의 지지를 고루 받으며 트로피를 차지했다. 경기장 내에서의 존재감, 승부를 가져오는 결정력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보경은 “감독님(김도훈)이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모두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울산의 구성원들은 기억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마지막 한 경기로 모든 것을 실패했다고 말한다. 실패로만 생각하면 정말 실패가 된다. 올해 얻은 것을 가지고 내년을 준비하면 울산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는 소감으로 울산 팬들의 쓰린 마음을 달랬다.
김보경은 리그 전체의 MVP로서 “이 상을 나만 누리거나 울산 선수들끼리 나누기보다 K리그 전체와 나누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전북 대구 서울 등 경쟁 팀들의 강력함을 칭찬하며 “올해 K리그가 정말 재미있었고 이곳에서 뛰면서 행복했다. 모든 팀들이 잘하고 있기에 내년엔 어떨지 기대된다. 나도 더 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승컵에 이어 감독상을 거머쥔 모라이스 감독은 수상 소감을 전하며 “팬들은 재미있었겠지만 현장에 있는 감독과 선수들은 하루하루 피 말리는 경쟁 속에 살아야 했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그렇게 치열했던 시즌은 끝이 났다. 팬들은 “내년은 어떨지 기대된다”는 김보경의 말처럼 벌써 2020시즌을 기다린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6년 전 악몽 되풀이…끈질긴 ‘동해안 더비’ 인연 시즌 내내 전북과 15회 이상 1, 2위 다툼을 벌여온 울산은 리그 종료일 패배에 눈물을 흘렸다. 패배를 안긴 상대가 포항이기에 아픔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K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울산과 포항은 다시 한 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갔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동해안 더비’로 명명되는 울산과 포항은 오랜 기간 특별한 역사를 만들어온 라이벌 관계다. 홈 경기장이 직선거리로 50km가량 떨어진 양 팀은 1998년부터 묘한 감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펼쳐진 플레이오프에서 아직까지 회자되는 골키퍼 김병지의 결승골이 터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후 김병지가 울산에서 포항으로 이적을 했고 그를 보낸 울산이 한동안 포항에 승리하지 못하면서 스토리가 쌓여갔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이들은 2013년 또 한 번 큰 사건을 남겼다. 리그 최종전에서 만난 이들은 울산이 1위, 포항이 2위로 우승경쟁을 하고 있었다. 마치 결승전과 같은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할 수 있던 울산이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허용하며 포항에 우승컵을 내줬다. 이번 시즌 울산은 포항 앞에 또 다시 무릎을 꿇으며 우승을 눈앞에서 날렸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울산이었지만 이 같은 평가는 ‘라이벌’이란 이름 앞에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 승부였다. 김상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