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2020년부터 암호화폐(가상화폐)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플랫폼 경쟁력에 힘입어 페이스북 리브라와 맞붙을 대항마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2018년 조수용(왼쪽)·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디지털 자산 관리 지갑 ‘클립’을 내년 상반기 국내에서 출시한다. 카카오톡 내 더보기 탭에 탑재하는 방식이다. 클립은 블록체인 플랫폼인 ‘클레이튼’ 기술이 적용된 암호화폐 지갑이다. 카카오 자체 암호화폐 ‘클레이’는 물론 70여 개 서비스 파트너사가 클레이튼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한 암호화폐 등을 보관할 수 있다. 내년 말에는 클립에 파트너사의 게임 아이템이나 콘텐츠 등을 구매하고 보관·거래하는 기능을 추가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이용 가능하도록 클립 자체 애플리케이션(앱)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와 유사한 형태로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본다. 리브라는 블록체인 기반 송금 및 지급 결제용 암호화폐다. 페이스북은 달러 유로화 파운드 엔화 등 주요 법정화폐와 연동해 리브라를 발행하고, 이를 담을 디지털 지갑 ‘칼리브라’를 내년 하반기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페이스북에서 리브라를 구입해 칼리브라에 보관해 두다가 환전·송금하거나 법정화폐로 현금화하고, 비트코인 등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도 할 수 있다. 우버 보다폰 코인베이스 등 리브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21개 회원사의 서비스와 상품도 이용 가능한 방식이다.
클레이도 궁극적인 사업 모델은 클립에 보관해 환전·송금하거나 이커머스 등 카톡 연계 서비스를 이용 가능한 방식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클레이튼을 공동 운영하는 거버넌스 카운슬(네트워크 운영위원회)에는 LG전자 넷마블 필리핀유니온뱅크 GS홈쇼핑 등 27개 글로벌사가 참여 중이고, 서비스 파트너사도 70여 개에 달하는 만큼 이들 서비스와 상품도 이용 가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리브라 프로젝트에 미국 기반의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면 클레이튼은 아시아권 대기업 위주”라며 “IT·금융이 발전한 선진 국가를 중심으로 인근 국가들이 결합한 형태의 권역별 디지털 금융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아시아 중심의 클레이튼 연합은 북미 중심 리브라 연합의 대항마로 성장할 것“이라며 “카카오가 내년 상반기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한 이유는 시장 선점 기회를 리브라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인 듯하다”라고 봤다.
카카오의 암호화폐 서비스를 시작으로 디지털 금융시장의 성장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기존에도 티몬을 중심으로 CU 야놀자 배달의민족 등이 모인 ‘테라 얼라이언스’가 블록체인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를 운영하는 등 블록체인 결제 서비스가 존재했으나 사용자 유입이 많지 않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5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카카오 플랫폼은 고객 기반이 탄탄하고 연결 가능한 서비스가 많아 사용자 확대에 유리한 만큼 카카오 클레이를 이용한 결제시장이 열린다면 디지털 자산 거래가 대중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제3세계 국가나 저임금 노동자, 저신용자 등 소외계층에 금융 편의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도 기대되는 효과다.
정책적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카카오의 클립을 서울시 제로페이와 결합하면 정책적 성과가 커질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온다. 현재는 제로페이를 이용하려면 전용 앱에 접속한 뒤 QR(큐알)코드를 스캔해 직접 결제 금액을 입력하거나 본인의 QR코드를 보여주고 스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번거롭다. 서울시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의 호응도가 낮은 이유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겸 부산 블록체인특구 운영위원은 “카카오 결제시스템에 제로페이를 탑재하면 카톡을 보내듯 송금·거래가 가능한 손쉬운 방식”이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결제가 간편해 제로페이 대중화에 훨씬 효과적이다”고 주장했다.
카카오가 2020년 암호화폐 지갑 클립을 출시하는 등 사업을 본격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업계에서는 다양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2018년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가 카카오의 다양한 사업영역, 핵심가치, 미래비전 등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그러나 디지털 자산 시장이 활성화하면 일부 대기업이 전체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카카오나 페이스북처럼 금융과 결합한 거대 플랫폼 기업이 제조와 유통, 금융 등을 모두 잠식해 독과점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디지털 자산 시스템에서는 개인의 금융·신용정보나 구매 이력, 서비스 이용내역 등 사적인 정보가 기록될 텐데 해킹 등으로 외부 유출되거나 불법 거래 등 악용될 수 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개인정보와 디지털 자산이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관리되는지 철저히 검증하고 명확한 피해 책임 소재와 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최화인 위원은 “개인정보와 디지털 자산이 네트워크 내 안전하게 관리되고, 이용정보를 데이터화해서 거래하는 데 있어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금융 성장의 핵심 관건은 기술보다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 역량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술 결함과 규제의 불명확성 등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해킹이나 내부 모럴해저드에 의한 도난, 이커머스 등 암호화폐로 결합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제공이나 환불이 안 되는 오류 발생 등 다양한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국가마다 암호화폐 등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제가 다르거나 명확하지 않아 국가 간 소송과 분쟁 소지도 크다.
최 위원은 “오프라인상의 법적 이슈들이 정비되지 않아 국경을 넘나드는 디지털 결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디지털 자산에 관해 아직 세계에서 공인된 글로벌 규제 인프라가 없기에 과세를 비롯한 다양한 법적 분쟁 시 관련 국가 간 합의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암호화폐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클립을 이용한 다양한 사업유형이 우리나라 규제당국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페이스북도 리브라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 의회의 반대와 금융기관들의 불신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카카오가 국내가 아닌 싱가포르를 법인으로 그라운드X를 설립하고, 지난 9~10월 클레이를 업비트 싱가포르와 업비트 인도네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최초 상장한 이유도 우리 정부의 부정적 기조가 작용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네이버도 2018년 7월 싱가포르에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를 오픈하고 그해 10월부터 자체 암호화폐 ‘링크’를 발행하는 등 해외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카카오의 암호화폐 서비스는 한국 유저들이 이용하기에 제약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상반기 카톡 클립을 국내에서 출시한다고 해도, 암호화폐 관련 규제 이슈가 해결되지 않아 암호화폐 클레이와 결합한 결제 서비스는 시행하지 않을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유저들은 클레이 구매가 가능하지만 국내 유저들은 불가능한 것이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규제기관의 입장은 더욱 강경한 만큼 카카오도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를 국내가 아닌 일본 싱가포르 등 암호화폐에 개방적이고 관련 제도가 선진화된 국가에서 먼저 출시하지 않겠느냐”고 관측했다. 그라운드X 측은 “클레이튼이 글로벌 플랫폼을 지향하고 70여 개 파트너사들과 27개 기업들이 모인 거버넌스 카운슬에 해외 기업들이 많기에 클레이의 해외 거래소 상장을 선택했다”면서도 “당분간 한국에 상장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