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금호아시아나그룹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인 HDC는 최근 금호산업에 ‘주식매매계약 관련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원인은 금호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구주 6868만 8063주(31.05%)다. 금호산업은 우선협상대상자가 HDC로 정해지기 전부터 구주 가격 인상을 요구해왔다.
반면 HDC는 구주에 대해 ‘3000억 원 초반 이상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HDC-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본입찰 매각가로 2조 5000억 원가량을 써냈는데, 금호산업에게 돌아가는 구주 가격은 3200억 원 수준으로 책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당 4660원 정도다.
이는 아시아나항공 본입찰일이었던 지난 7일 종가 5600원으로 환산한 금호산업 보유 구주 시장가치 3847억 원보다 낮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물론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통매각되는 아시아나IDT, 에어부산 등 자회사에 대한 가치 역시 책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금호산업의 주장이다.
하지만 3200억 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5000원대 초반이지만, 이는 매각 발표 효과가 이어진 것”이라며 “매각 발표 전까지만 해도 주가는 3000원대 중반~4000원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다. 4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2748억 원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도 HDC가 제시한 가격이 맞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올해 초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박삼구 회장이 매각 결정을 내린 4월 15일을 기점으로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3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은 부채 9조 7680억 원에 자본 1조 2096억 원 규모로, 부채비율이 807.6%에 달한다. HDC 입장에서는 인수자금을 최대한 아시아나항공에 수혈해 재무구조 안정을 꾀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오는 12일로 예정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이 연기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시간이 갈수록 수세에 몰리는 것은 금호산업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올해 안에 이뤄지지 않으면 채권단은 지난 4월 인수한 5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면 매각 주도권은 금호산업이 아닌 채권단이 갖게 된다. 이 때문에 HDC와 금호산업 사이의 구주 가격 협상이 이미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양측의 가격 조율은 끝났고, 현재 SPA 문구와 조건 조절 중”이라며 “금호산업이나 박삼구 전 회장이 구주 가격 인상을 위해 끝까지 버틸 협상력이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구주가격 협상은 주식매매계약의 일부다. 주주매매계약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안에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전시된 비행기와 아시아나항공 깃발. 사진=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과 2008년 각각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재계순위 7위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워크아웃과 ‘금호가 형제의 난’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해 금호타이어에 이어 아시아나항공까지 떠나보내게 됐다. 현재 재계 순위도 60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제 사실상 그룹 내에 남은 계열사는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정도다.
하지만 남은 회사도 상황도 여의치가 않다. 금호고속은 내년 3월말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대출 1300억 원을 비롯해 차입금이 3700억 원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산업 건설부문은 최근 건설업황 속에서도 공항 건설 기술 등을 앞세워 수주 호재를 맞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HDC로 넘어가고 사세가 줄어들면서 브랜드 파워가 줄어 시너지 및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고도 여전히 차입금 상환 등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금호산업 건설부문이나 금호고속 중 하나를 또 매물로 내놓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조만간 금호산업 건설부문이나 금호고속 중 하나는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금호고속은 그룹의 모태이자 호남기업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반면 건설부문은 상장사이기 때문에 매각에 용이하지만 건설부문은 사업의 크기가 커 추후 사세를 확장하기 쉽다. 박삼구 전 회장 입장에서는 어느 회사를 남길지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산업 건설과 금호고속 중 또 다시 계열사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정몽규-박찬구 회동, 금호석유 신주발행 유상증자 참여?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인 HDC현대산업개발(HDC)의 정몽규 회장이 인수 본계약을 앞두고 2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정몽규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지난 11월 25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정 회장의 요청으로 추진된 이번 만남은 임직원 배석 없이 일대일로 이뤄졌다. 박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지분 11.12%(2459만 3400주)를 보유해 금호산업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몽규 회장이 박찬구 회장에게 신주발행 유상증자 참여 등 협조 요청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2조 원이 넘는 신주를 발행하면, 금호석유 지분율은 5%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에 증자 참여를 포함해 형 박삼구 전 회장과 대립각을 세운 금호석유를 아군으로 공동전선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다만 금호석유 관계자는 “신주발행 유상증자 참여 등 요구는 없었다”며 “정 회장이 예비 1대 주주로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박 회장도 HDC가 인수하게 돼 기쁘다고 화답하는 등 덕담이 오갔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시아나항공 주식과 관련해 전혀 고심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