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은 지난 5년간 팀을 이끌어온 포체티노와 결별하고 무리뉴와 손을 잡았다. 사진=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포체티노 감독은 토트넘 부임 이후 프리미어리그 4위권 진입에도 어려움을 겪던 팀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구단으로 만들어냈다. 부임 첫 시즌을 제외하면 매 시즌 4위 이내에 드는 성과를 냈다. 현재 팀을 이끄는 크리스티안 에릭센, 손흥민, 해리 케인, 델레 알리 등은 포체티노가 스타로 만든 선수들이다.
하지만 토트넘의 태평성대도 5년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이들은 불과 6개월 전의 성공이 무색하게 부진을 겪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 에버튼, 왓포드, 브라이튼 등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며 강팀으로서 면모를 잃은 듯 보였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 2-7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결국 토트넘 구단은 칼을 빼들었다. 포체티노를 내보낸다는 발표가 나고 하루 만에 무리뉴를 데려왔다고 밝혔다. 사전에 준비가 된 듯한 모양새였다.
#‘스페셜 원’ 무리뉴 선택한 토트넘 속내는
토트넘은 선수 이적에 수천억 원이 오가는 현대 축구 트렌드와 달리 ‘짠돌이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2018-2019시즌 20골 10도움을 기록한 손흥민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5골 4도움을 기록한 제시 린가드의 주급 차이는 단 4만 파운드로 알려졌다. 주급 체계가 낮을 뿐 아니라 이적료 지출에도 인색함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토트넘은 무리뉴의 연봉으로 1500만 파운드(약 228억 원)를 책정했다. 확실한 목표와 함께 그를 데려왔고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목표는 ‘우승’이다.
감독으로서 성과와 스타성을 겸비한 무리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사진=연합뉴스
포체티노가 팀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으로 만들었지만 토트넘은 우승에 굶주린 팀이다. 이들은 2007-2008시즌 이후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그마저도 가장 낮게 평가되는 리그컵이었다. 토트넘의 마지막 FA컵 우승은 1991년, UEFA컵(유로파리그의 전신)은 1984년, 프리미어리그는 196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는 무리뉴 감독이 태어나기도 전이다.
무리뉴가 어떤 감독인가. ‘스페셜 원’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 온 인물이다. 그는 감독으로 부임했던 모든 팀(포르투,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가 들어 올린 트로피 개수가 토트넘 구단 역사에서 따낸 트로피보다 더 많을 정도다. 우승이 필요한 구단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감독이다.
하지만 무리뉴도 실패를 모르고 지내온 감독은 아니다. 그는 2015-2016시즌 첼시, 2018-2019시즌 맨유에서 불명예스럽게 퇴단하며 ‘예전 같지 않은 것 아니냐’는 평을 듣기도 했다. 명예회복이 필요했던 무리뉴 감독과 우승이 필요한 토트넘이 손을 맞잡은 것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부임 이후 2주, 무엇이 달라졌나
무리뉴 감독은 부임 이후 3경기(리그 2경기, 챔스 1경기)에서 3연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냈다. 리그 2연승으로 순위도 중위권에서 6위(4일 오후 기준)까지 끌어 올렸다. 고전하던 토트넘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손흥민과 케인이 이끄는 공격진은 프리미어리그 경쟁자들과 견주어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토트넘은 올 시즌 수비에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에 무리뉴 감독은 ‘비대칭 전술’을 꺼내 들었다. 공격은 준수하지만 수비적인 면에서 불안감을 보이는 우측 풀백 세르주 오리에를 과감하게 전진시켰고 반대편에 위치하는 풀백은 공격 가담을 자제시켰다. 양 풀백이 모두 무리하게 공격에 가담하기보다 강점을 살리고 약점은 최소화하는 선택을 했다. 공격수와 흡사하게 움직이는 오리에는 3경기 1골 2도움으로 기대에 화답하고 있다.
무리뉴에게 칭찬을 받은 볼보이는 선수단과 함께 식사를 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사진=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토트넘의 대외적인 이미지도 변모하고 있다. 토트넘은 막대한 자금으로 이적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수많은 트로피를 차지한 역사를 가진 팀이 아니기에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첼시, 맨유 등과 비교하면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팀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감독이 팀에 부임하면서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산되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부임 첫 기자회견에서 “나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토트넘의 지난 시즌 챔스 결승 패배와 관련된 질문에는 “나는 결승전에서 진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는 농담으로 ‘스페셜 원’이라는 별명만큼이나 특별한 화술을 뽐냈다.
무리뉴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밖으로 나간 공을 빠르게 토트넘 선수에게 전달한 볼보이를 두고 공개적으로 칭찬을 했다. 이에 볼보이가 큰 화제가 됐고 토트넘 선수단과 볼보이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칭찬과 함께 “나도 훌륭한 볼보이였다”는 유쾌한 자기자랑은 덤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손흥민과 벌써 사랑에 빠졌다”는 말로 국내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사진=토트넘 홋스퍼 페이스북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거리에 떨어진 토트넘이 국내에서 ‘국민구단’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슈퍼스타 손흥민의 입단이 결정적이었다. 팀의 수장이 교체되며 자연스레 손흥민과 새 감독 무리뉴의 궁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무리뉴 체제에서 첫 경기를 치르기 전부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무리뉴 감독의 전술 성향과 손흥민의 플레이 스타일이 잘 어우러질 것이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뉴 감독은 커리어 내내 단단한 수비를 우선으로 하고 날카로운 역습을 주무기로 삼아왔다. 손흥민도 밀집수비를 펼치는 상대보다 속도를 살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상황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손흥민은 첫 경기부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리뉴의 토트넘 첫 골 주인공으로 등극하며 활발하게 공격을 이끌었다. 3경기 모두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뉴 감독은 구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아시아축구연맹 올해의 국제선수상을 수상한 손흥민에 대해 “수상을 축하한다”며 “내가 여기(토트넘)에 온 지 10일, 12일쯤 됐나? 나는 벌써 손흥민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