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극한 대립으로 혼란에 빠진 한국 정치를 두고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농담처럼 한 이야기였지만 ‘뼈’가 있었다. 정치권 원로로 꼽히는 정 전 대표는 최근 제3지대 신당 움직임의 구심적 역할을 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일요신문은 12월 3일 그를 만나 다양한 현안과 관련해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일요신문이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와 3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박은숙 기자
―제3지대 창당에 관여하는 것으로 들었다.
“민주평화당에서 탈당한 건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떠나 있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러 국회의원들 요청으로 제3지대 신당 창당에 도움을 주고 있다. (3지대) 당 대표나 의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을 만들더라도 참여를 할 생각도 별로 없다. 워낙 얘기가 안 되고 불화만 있는데 내가 하는 말은 그래도 다들 어려워하더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고등학교 후배,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친구,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후배여서 중간에서 조율을 해주고 있을 뿐이다.”
―주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나.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이 많다. 새로운 지도자가 제3지대 신당을 만들면 분명 지지해줄 국민들이 많다고 본다. 신당의 새 얼굴이 될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이야기를 했다. 홍 회장으로부터 ‘좋은 인물들을 소개해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승낙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는 안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새로운 지도자감을 물색해 국회의원들과 라운드 테이블에서 만나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늦어도 1월말까지 먼저 구심점을 형성해야 한다. 빠듯하지만 할 수 있다고 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당제 등을 위해서 해야 한다. 다만 선거법이라 여야 간에 타협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통과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타협을 하려는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하다 안 돼서 국민들이 ‘저 정도 고집 부리면 어쩔 수 없다’고 할 때까지 협상을 지속해야 한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는 낙제점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낙제점으로 추락 중이다. 이미 대통령의 권력누수, 레임덕은 시작됐다고 본다. 특히 균형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북한과의 화해 및 비핵화 노력은 좋으나 안보 문제, 동북아 전체 외교 문제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균형 있는 남북 정책이 필요하다. 인사도 운동권, 진보 인사 등용도 좋지만 보수 인사라도 능력 있는 사람은 활용해야 한다. 적폐 청산 노력도 인정하지만 국민 전체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과의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일본과 빠른 시일 안에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아베 일본 총리의 성급한 경제 규제가 발단이 된 건 맞다. 일본도 독일처럼 한국에 흔쾌한 사과와 반성의 모습이 결여됐다. 다만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자국 기업 재산이 압류까지 되면 어느 나라나 발끈할 수밖에 없다. 한일협정으로 인해 배상과 보상 문제는 끝났다고 보고 우리 정부가 그 돈을 부담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한일 기업과 양국 국민 기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양국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문희상안’이 가장 낫다고 본다.”
―이낙연 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갔다 왔다.
“그때 이 총리가 일을 잘 풀었다고 알고 있다. 이 총리는 2003년 내가 민주당 대표일 때 대변인을 한 뒤 비서실장을 맡았다. 서울대 법대 8년 후배로 학교를 같이 다니기도 해 잘 알고 있다. 이 총리는 잘하고 있고 능력 있다. 다만 총리는 이제 물러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내려오기 전 마지막으로 비록 쓴소리라도 문재인 정부 잘 못하고 있는 점은 지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낙연 총리가 잘 성장해서, 대선 출마했을 때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총리는 민주당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나는 어느 정당에도 얽매여 있지 않다. 새로운 제3지대 정당은 신당 창당에 도움을 줄 뿐, 당 대표나 의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정치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임명직이나 선출직 등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이 총리를 돕기 위해서 민주당도 갈 수 있다. 이 총리는 중도, 개혁적 이미지가 있고 국회의원 도지사 국무총리까지 커리어를 잘 쌓아 왔다. 가장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고 본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에게 현 정치 상황에 대한 문제와 해결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박은숙 기자
―제3지대 정당이 출범한다면 어느 정도 성적표를 예상하는지.
“2016년 비례대표 선거 1등을 국민의당이 했다. 내년 선거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뽑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신당이 근사하게 잘 나온다는 전제하에 이번에도 그 정도 성적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윤석열 검찰총장 등판설이 나돈다. 2016년 ‘안철수 현상’과 비유되기도 하는데.
“현직 검찰총장인데도 여의도에 온통 윤석열 이야기다. ‘윤석열 나오면 찍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 난 국민적 요청이라고 본다. 윤 총장은 법과대 약 20년 후배로 가깝다. 총장 되기 전에는 가끔 소주도 마셨다.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의혹 사건 외압 폭로로 대구로 좌천됐을 때 가끔 서울로 불러 막걸리도 마시곤 했다.”
―가까이서 본 윤석열은 어떤 사람인가.
“윤석열 보면 세상 일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법고시를 9년 동안 떨어져서 검찰에서 검사장만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검찰총장까지 됐다. 2016년 외압 폭로 이후 좌천됐을 때 권은희 의원 케이스처럼 비례대표 영입 제안이 갔다. 그때 윤 총장이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내가 이걸 지금 받으면 지금까지 한 내 행동이 국회의원 하기 위해서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좌천까지 된 마당에 누구나 꿈꾸는 국회의원을 거절하는 걸 보고 ‘윤석열이 보통 아니구나, 물건이구나’ 생각했다.”
―이 총리와 윤 총장이 대선에 나란히 출마하면 누굴 지지할 것인가.
“아버지, 어머니 출마하면 누구 찍을래 같은 말이다. 재미는 있지만 상상 안 하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윤석열이 대선에 안 나온다고 본다. 대통령은 실력뿐만 아니라 운이 좋아야 한다.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이다.”
―마지막으로 건강 비결이 궁금하다.
“낙천적으로 산다. 아버지가 8선을 했고, 내가 5선을 했고 집권당 대표까지 하고, 아들까지 의원을 했다. 이만한 축복도 없다.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21번 체포되는 독립운동 하고 어머니가 당시 어려운 여성들 위한 무료 법률 상담을 해서 민족을 위해 산 게 자식들이 잘된 것 같다. 열심히 걸어 다니면서 국민들이 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한 달에 최소 네 번 교도소 강연 등 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