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월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어쩌다 광흥창팀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정권 초 광흥창팀은 노무현 정부 금강팀을 능가하는 핵심 참모 그룹으로 부상했다. 광흥창팀은 19대 대선 당시 서울시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고 문 대통령을 도운 참모진을 일컫는다. 여권 관계자는 “여의도 인근은 임대료가 높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찾아가 둥지를 튼 것이 광흥창팀 시초”라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개국공신인 금강팀은 여의도 금강빌딩에 사무를 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실무를 맡았다.
광흥창팀은 청와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필두로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삼각편대를 형성했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을 비롯해 이진석 정책조정비서관, 오종식 연설기획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자문위원,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광흥창팀 핵심 멤버다. 13명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입성을 못 한 이는 2명(양정철 안영배)뿐이다.
1기 참모진 때도 13명 중 10명이 청와대에 들어갔다. 여권 내부에서는 “광흥창팀을 BH(청와대)에 옮겨놓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금강팀 멤버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염동연 전 열린우리당 의원, 당시 30대였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보다 중량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광흥창팀의 삼각편대부터 금이 가고 있다. 임종석 전 실장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임 전 실장이 뒤로 빠지는 순간, 권력형 비리 의혹의 광풍은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에선 문 대통령 복심인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커넥션 고리에 걸려 있다.
유 전 부시장은 윤 실장과 김경수 경남도지사, 천경득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수시로 텔레그램을 통해 금융위원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유 전 부시장은 금융권 ‘친문 실세’로 통했다. 한때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역구인 서울 구로을 출마설이 돌았던 윤 실장은 이번 사태로 사실상 총선 출마도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불출마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재수 전 부시장의 뒷배가 ‘3철’ 좌장으로 불리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말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 사진=최준필 기자
우리들병원 1400억 원 특혜 대출 의혹에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엮여있다. 이 병원 소유주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이상호 회장이다. 그는 대출 과정에서 천주교 큰손으로 불리는 신 아무개 씨와 연대보증 관계를 맺지만,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빠졌다. 빚을 모두 지게 된 신 씨는 서류 위조 등을 문제 삼았지만,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를 내사 종결 처리했다. 양 원장은 내사 종결 처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양 원장 측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지만, 친문계가 입은 내상은 작지 않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에선 광흥창팀 핵심 멤버가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커넥션 고리는 문 대통령 발목을 잡고 있다. 김기현 전 시장 관련 비리 의혹을 최초로 청와대에 제보한 이는 송철호 울산시장 측근인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송 시장과 문 대통령은 ‘30년 지기’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은 11월 22일 2심에서도 유죄(징역 1년, 집행유예 2년)를 선고받았다. 노 전 대통령 후원자인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충청북도 한 골프장에 2010년 8월~2017년 5월까지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급여 명목으로 2억 2900만 원을 받은 혐의다.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은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 끝내 불명예 퇴진했다.
집권 후반기 레임덕은 일종의 숙명과도 같다. 5년 단임제 특성상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 측근 비리나 인사 실패, 당·청 갈등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권의 내리막길을 재촉한다. 문 대통령도 내년이면 임기 4년 차를 맞는다. 조기 대선 탓에 문 대통령 잔여 임기가 절반가량이 남았지만, 문제는 레임덕 징조가 벌써부터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 ‘조국 사태’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자유한국당이 3대 친문 농단으로 규정한 ‘청와대 하명수사·유재수 감찰 무마·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은 권력형 게이트 빗장을 여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검찰 조사 과정에서 촉발, 사실상 레임덕 입구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내부 기강 해이가 하명수사 의혹을 정국의 메가톤급 이슈로 띄웠다는 얘기다. 박형철 비서관은 “조국 전 장관이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을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유재수 감찰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조 전 장관이 중단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검찰에 가서 사실을 인정했다면 권력누수 현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월 3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집권 4년 차는 ‘마의 고개’로 통한다. 이 국면을 넘지 못한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레임덕의 길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 막을 연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집권 4년 차에 측근이었던 장학로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기업 17곳에서 총 27억여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타격을 입었다.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은 대형 방산 비리인 ‘율곡비리’에 연루됐다. 이 전 장관은 무기 로비스트인 린다 김과 ‘몸 로비’ 공방을 벌인 주인공이다. YS는 임기 말 차남 현철 씨의 한보 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정권마저 내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집권 4년 차 때 ‘진승현 이용호 정현준’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정권 몰락을 자초했다. DJ 아들 홍업·홍걸 씨도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홍삼 트리오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인 2006년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로 홍역을 치렀다. 검찰은 이듬해 2월 6개월간의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구속기소 45명을 포함, 총 153명을 사법 처리했다. 검찰이 범죄수익 환수 조치를 한 금액만 1377억 원에 달했다.
이후 두 번의 보수 정권에서도 4년 차 증후군은 어김없이 정국을 뒤흔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친형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이 저축은행 사태에 연루, 측근발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이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 신조어를 만들어낸 정권 실세 중 실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차 때 ‘20대 총선 패배→국정농단 게이트’가 연달아 터지면서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맞았다. 독신이었던 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는 없었지만,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 씨 존재가 드러나면서 탄핵을 당했다.
문 대통령도 임기 4년 차 국면에서 21대 총선을 치른다.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서 총선까지 패배할 경우 레임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가 검찰과 전면전을 벌이며 벼랑 끝 승부를 펼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야권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에 대해 “민정수석실이 주도한 선거 개입으로 확인될 경우 부정 선거가 되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이른바 ‘35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며 “대통령 지지도가 35%를 밑돌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임기 반환점을 돈 직후 ‘조국 사태’ 이전으로 회복한 문 대통령 지지도 추세가 정국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간 원맨쇼를 펼쳤던 문 대통령마저 흔들린다면, 문턱에 진입한 레임덕이 출구를 찾을 때까지 여권 위기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
“대통령과 함께 임기 마칠 참모” 이정도 총무비서관에 시선 쏠리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마칠 참모.’ 청와대 집사인 이정도 총무비서관에 붙는 수식어다. 최근 문 대통령 측근들이 청와대발 권력형 비리 의혹에 줄줄이 엮이면서 이 비서관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을 비롯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무마 의혹 등에 연루되자, 청와대 참모진 원년 멤버 중 이 비서관 정도만 청와대에 남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비서관은 ‘윤건영 박형철’과 함께 청와대 심장부를 맡은 3인방으로 꼽혔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 복심 중 복심이다. 그는 지난 6·30 남북미 판문점 회동 당시 ‘그림자 조율사’ 역할을 맡았다.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국면에선 ‘정상회담 준비 종합상황실장’에 임명됐다. 앞서 같은 해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북 특사단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윤 실장은 ‘유재수 커넥션’의 연결고리로 등장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청와대 내 유일한 검찰 출신인 박 비서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국 지시’로 유재수 감찰을 중단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는 달리, 이 비서관은 흔한 구설에도 오르지 않았다. 문 대통령 신임도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감사원이 2003년 이후 처음 실시한 청와대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를 마무리했다. 문 대통령은 3인방 중 이 비서관을 가장 먼저(2017년 5월 11일) 임명했다. 박 비서관과 윤 실장은 같은 달 12일과 17일에 각각 인선했다. 이 비서관은 청와대 입성 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을 지냈다. 청와대 재정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 자리에 최측근 인사가 가는 관례를 깬 ‘파격 인사’였던 셈이다. 기재부 내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행정고시가 아닌 7급 공채 출신으로 기재부 국장까지 올랐다. 정부 한 관계자는 “기재부 출신이 경제수석실이 아닌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된 것 자체가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수난사의 무덤’으로 통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의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은 뇌물 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권력인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에 관여한 혐의로 수감 생활을 했다. 윤지상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