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K리그 시상식에 참석한 발렌티노스는 “한국영, 오늘 완전 이탈리아 스타일이다”라며 꼬집어 말했다. 사진=김상래 기자
지난 3년간 강원 FC 중앙수비수로 활약한 발렌티노스는 그런 면에서 특별한 선수였다. 스스로를 ‘강릉 사람’이라고 칭하는 그는 남다른 친화력으로 팀에 녹아들었다. 강원 동료들도 그를 “발렌티노스는 거의 한국인처럼 행동한다”며 치켜세웠다. 팬들의 각별한 애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발렌티노스를 지난 2일 K리그 시상식 현장에서 만났다. 시즌 일정을 마치고 참석한 시상식, 친분이 있는 다른 팀 외국인 선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좋은 시즌을 보내고 이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어서 기쁘다. 좋은 동료들이 함께하고 이렇게 분위기도 근사하지 않나”라며 웃었다.
유니폼이나 트레이닝복이 차림이 아닌 동료들을 보며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김지현, 이현식 같은 친구들의 저런 모습을 처음본다. 믹스(울산)도 오늘 멋지다”면서 “한국영 좀 봐라. 이탈리아 스타일이다. 정말 멋지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한 시즌을 치른 소감을 물었다. 발렌티노스는 “정말 놀라운 한 해였다. 우리는 매 게임 최선을 다했고 좋은 성적을 냈다. 행복한 시즌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병수볼’로 불린 강원의 축구에 대해서도 “팀의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그는 “강원은 더 나아질 수 있는 팀이고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선수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포항을 상대로한 대역전극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골을 넣기도 했다. 사진=강원 FC 페이스북
그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두가지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발렌티노스의 기억 속에는 큰 화제를 모았던 포항을 상대로 한 5-4 역전 경기와 유벤투스와의 친선경기였다. 그는 포항전에서 추격골을 넣으며 팀의 대역전극에 기여했다. 유벤투스를 상대로는 K리그를 대표해 나선 바 있다.
그는 0-4로 뒤지다 경기를 뒤집어냈던 포항전에 대해 “내가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아도 영원히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런 경기를 해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유벤투스전을 이야기하면서는 당시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그 경기는 정말 ‘미쳤다(crazy)’고 말할 수 있다. 유벤투스가 한 시간 늦게 경기장에 도착하면서 우리 K리그 팀만 경기장에 나가서 워밍업을 했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6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경기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한국에서 경험하는 최고의 순간이야!’라고 외쳤다.”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의 열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한국은 불행하게도 그렇게 경기장에 많은 관중이 들어차지는 않는다”면서 “그런데 한국 축구의 아이콘과 같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렇게 만원 관중이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상대가 유벤투스였기에 감격은 더했다.
“그리고 유벤투스가 어떤 팀인가. 만주키치, 이과인 등 ‘빅 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아, 부폰(부폰의 이름을 말할 때 그는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호흡을 길게 내뱉었다.)도 있다. 그들은 최고(top)다.”
유벤투스전 이외에도 늘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한국팬들이 이정도로 대단할 줄은 전에는 몰랐다”면서 “작년과 올해, 그들은 나와 우리 팀을 정말 열심히 응원해줬다.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고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으면 꼭 이를 지나치지 않고 “슈퍼스타”라며 사진을 찍는 등 장난을 걸어오곤 했다.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발렌티노스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팬들과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 관중석으로 달려와 유니폼을 벗어주기도 하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는 편이다.
“모든 축구선수들에게 팬들의 사랑은 전부나 다름 없다. 팬이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선수들은 언제나 싸인을 해주고 팬들과 사진을 찍고 소통하려 한다. 왜냐하면 팬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우리를 보러 와주는 사람들이다. 큰 사랑을 주기에 우리도 보답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지난 3년간 활약해왔지만 소속팀이었던 강원과는 작별을 해야 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팀은 나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정말로 그 결정을 존중한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어 “강원에서의 지난 3년은 놀라운 시간들이었다. 나는 김병수 감독과 모든 동료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팀이 성장을 거듭해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3년 동안 대단한 여정을 보내왔다. 팀과 선수들 모두 3년 동안 성장했다. 강원은 승격 팀에서 이제는 K리그1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떠나고 남고는 중요하지 않다. 발렌티노스나 그 어떤 누가 떠나더라도 강원은 강원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원과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지만 한국 무대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은 듯 했다. “다음 시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년에도 한국에서 뛰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게 현재 내 유일한 목표다(It‘s one target I have.)”라고 강조했다.
시상식 다음날인 3일이면 사이프러스로 출국이 예정돼있는 발렌티노스였다. 그럼에도 그는 밝은 표정과 담담한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남겼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음 행선지는 아직 모른다. 단지 나는 한국에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와 내 아내는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보자.”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