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요한 감독(35)이 청년 정치인을 다룬 영화 ‘비례대표(가칭)’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서핑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쥔 충무로 예비 스타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 영화 신예 발굴 프로젝트 S#1(씬 원) 아카데미 1기로 선정돼 내년 2월까지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일요신문은 심 감독과 청년 정치인의 만남을 주선해 청년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
[일요신문]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이 인터뷰에서 내년 제21대 총선 ‘출마 불가’ 입장을 전했다. 그의 의사와는 무관한 결정이다. 내년 총선을 기준으로 나이가 만 24세 363일인 탓이다. 한국에서 선거에 나가려면 만 25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는 “피선거권 나이 제한 때문에 20대 절반이 선거에 나설 수 없는데 청년 정치를 이야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우리가 하고 있는 선거권 연령 하향 운동에는 피선거권도 포함돼 있다. 반드시 바꿔야 할 문제”라고 화답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정당 대표 청년 정치인이 심요한 감독을 만났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청년 정치인과 심요한 감독이 만났다. 사진=박은숙 기자
2일 차이로 선거에 나갈 수 없지만 강민진 대변인은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는 “꼭 나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나서 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적절성을 따져 출마할 수 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자신이 없다. 지역 주민을 대변해야 하는데 살아온 이력과 정체성이 소수자적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운동을 하다가 당직을 맡게 돼서 삶 전체가 정치”라는 강민진 대변인. 사진=박은숙 기자
굳이 국회의원 배지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한다. 그는 “나는 사실 사회운동을 하다가 당직을 맡게 돼서 삶 전체가 정치다.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제도권 정치가 아니더라도 이런 일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혜성처럼 나타난 정치 신예다. 중학생 시절 느꼈던 불합리함은 ‘운동’ 시작의 계기가 됐다. 강민진 대변인은 “중학교에 입학하니 머리를 잘라야 했다. 초록색 교복에 가방 색, 신발 색까지 규정됐다. 이런 학교를 어떻게 다니나 싶었다. 게다가 매시간 체벌이 있었다. 몸이 아픈 걸 떠나 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 주권이 없는 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신문에서 본 ‘탈학교’라는 개념을 알게 된 뒤 자퇴를 하고 학원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치렀다. 부모 반대가 심했지만 “죽을 것 같다”는 주문은 결국 먹혔다. 친구의 추천으로 진보신당에 가입했고 성정치위원회 활동을 하다 2015년 정의당 당원이 됐다. 2017년부터 18세 선거권 운동에 주력했던 그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을 펼쳐가는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에게 대변인직 제안을 받았다.
애초 청년 할당으로 대변인이 됐다. 하지만 바로 ‘청년’이란 글자를 떼어냈다. 수식어 ‘청년’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청년으로 대한 까닭이었다. 그는 “50대 정치인에게는 모든 이슈 다 물어보고 질문하면서 청년 정치인에겐 청년 문제만 묻는다. 이런 사회는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식어 ‘청년’을 뺐다”고 했다.
신지예 위원장에게도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우리 선거 캠프에 와서는 나보고 ‘후보 어디 있느냐’고 하길래 ‘그게 나’라고 하니까 ‘이렇게 어리냐’고 했다. 캠프에서 차 따르는 경리 취급을 했다. 토론회에 나가면 후보자인데도 어르신 대우와 달랐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선거 기간에 ‘후보’라는 머리띠를 아예 머리에 차고 다녔다”고 말했다.
신지예 위원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한판 붙은 적 있지만 강민진 대변인은 그런 경험이 없다. 나이가 어린 까닭이다.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 연령은 만 25세 이상으로 제한된다. 이 제한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005년 “대의기관의 전문성 확보, 국회의원의 고양된 대의활동능력 및 정치적 인식능력에 대한 요구,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과정과 직·간접 경험을 쌓는데 소요되는 기간, 성실한 납세 및 병역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강민진 대변인은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남자는 군대 다녀오고 대학 나오면 그 정도 나이가 된다. 아마 그런 생각으로 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법 기획자가 생각한 군대 및 대학 졸업생 남성의 수준이 그 정도 같다”고 꼬집었다.
이 문제는 신지예 위원장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2018년 3월 22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와 청소년 여럿이 국회 정문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을 촉구하는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시민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민주 시민은 만들어진다. 청소년의 정당 활동과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지금 국회 너무 늙고 낡았다. 50대 이상이 83%다. 청소년 참정권만 보장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던 그였다.
나이뿐 아니다. 청년에게 정치란 구조적으로도 매우 가혹하다. 강민진 대변인은 “선거 구조 자체가 문제다. 선거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청년이 기탁금 5000만 원을 어떻게 내나. 당내 경선만 해도 기탁금과 특별당비를 내야 한다. 청년은 빚지겠다는 마음 안 먹으면 선거 못 나간다”고 말했다.
신지예 위원장도 거들었다. “공천제도도 문제다. 소수가 독점해 권력을 차지한다. 그 사람에게 줄 안 서면 청년은 못 살아남는다. 지역구로 가게 되면 지역 유지와 기존 국회의원이 연결돼 있다. 청년이 어떻게 버티겠나. 버티다 포기하고 만다. 다 감당하고 지역구 선거에 나가더라도 꼭 그런 말을 듣는다. ‘너네는 청년만 대변하잖아.’ 이건 매우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신지예 위원장은 “모두가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을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특별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힌 거다. 자유한국당이 이와 같은 엘리트 특권층을 만들어 냈다. 청년들과 깨어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당은 노쇠했다”는 신지예 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그는 이어 “박원순 시장은 진보주의자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인권조례 제정 요구를 받지 않았다. 성소수자 진영에서 시청을 점거하고 격렬한 시위를 했는데도 무시했다. 차별 금지법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주거권 운동에서도 장애 인권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버스 등 교통권 인정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안 지켜졌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박원순 시장도 내가 바라던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정치를 꿈꾸게 된 계기는 강민진 대변인과 비슷했다. 중학교 입학 뒤 잘라야 했던 머리카락 때문에 ‘노컷 운동 문화제’를 기획하는 등 두발 규제 폐지 및 청소년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는 쉬 변하지 않았다. 두발 규제를 학교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공문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민주주의가 안 지켜지는 걸 보고 일반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대안학교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일을 배웠다. 졸업 뒤 계속 사회운동과 사업을 벌였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건 월세였다. 그는 2014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오래된 주택을 손수 꾸민 뒤 다시 임대하는 ‘부흥주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얼마 안 돼 좌초 위기가 왔다. 재개발 탓이었다.
재개발로 평생 살던 터전에서 동네 어르신이 아무 힘 없이 쫓겨나는 거 보고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그는 “어르신 생활은 팍팍했다. 잘 오지 않는 아들, 딸의 존재 때문에 별다른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부양의무제 탓이었다. 이게 참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꽤 닮았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헷갈릴 법도 하다. 그러나 강민진 대변인은 “녹색당은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걸고 있지만 정의당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 정도가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신지예 위원장은 “중요한 건 정의당이 노쇠했다는 거다. 국회의원만 봐도 기존 정당과 얼마나 다를까 싶다. 정책적으로도 못하고 있다. 낙태죄가 헌법 불일치로 나왔는데 이정미 의원이 낸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보면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는 ”이정미 의원이 낸 개정안은 임신 중지를 완전 허용하지 않는다. 낙태 가능 시기를 정해놨다. 그 시기가 지나면 다섯 가지 정도 상황에서 낙태가 허용되는데 태아 건강 이상, 근친상간, 성폭력, 사회경제적 사유 등이다. 가난을 증명하면 애를 안 낳아도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이게 다 낙태죄 법안에 갇힌 생각“이라며 ”한국에선 낙태가 죄였기에 낙태 수술 방식 자체가 노후돼 있다. 지금 한국에서 하는 소파술은 선진국에서 이미 30년 전에 폐기된 수술 방식이다. 선진국은 임신 기간이 짧으면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 의약품을 쓴다. 이런 변화를 의대에서 어떻게 가르칠 건지 이야기해야 할 상황에서 정의당은 임신 중지 가능 기간이나 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지예 위원장은 비판의 날을 더 세웠다. 그는 ”원내에서 싸워야 할 정당이 저러고 있다. ‘배달 알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건가’라는 질문에 정의당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 ‘비정규직도 노조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정의당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민주노총 눈치를 보는 까닭이다. 민주노총이 안 받아주니까“라고 했다.
또 ”노동계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급여가 쥐어져야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해고된 이후 최소 2년은 기존 급여 70%를 실업급여로 줘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정의당이 말하는 노동법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없다. 정의당의 정규직·비정규직 프레임은 매우 낡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민진 대변인은 ”현재 비정규직 제도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 철저히 기업 입장이고 이윤 추구 목적이다. 정의당은 노동자가 일터의 주인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둔다. 노동자가 주주로 있는 기업을 세우거나 협동조합 등 여러 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하는 도중 내 의지와 상관없이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걸 인권 침해라고 본다. 그런 뜻이 모인 게 정의당“이라고 했다.
장군멍군을 놓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신지예 위원장(왼쪽)과 강민진 대변인. 사진=박은숙 기자
강민진 대변인이 마지막 수를 놓으며 장군을 불렀다. ”녹색당이 성장해서 국회의원도 배출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이 만약 두 정당을 두고 당원 가입을 고민한다면 그 사람에게 ‘당신 성향에 맞는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싶다면 정의당으로 오라’고 할 거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정당 가운데 그래도 가능성 있는 정의당을 택하란 거다.“
신지예 위원장은 멍군을 놨다. ”무언가를 가장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정치의 매력이자 힘이다. 우리가 힘 실어줘야 하는 게 정의당일까. 정의당이 사회를 전복시키고 판을 바꾸려는 꿈을 제시하는가. 정의당은 가능한 것만 꿈꾼다고 본다. 정치는 불가능한 걸 꿈꾸고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은 현존 정당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정당이 우리 녹색당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심요한 감독은 누구? 심요한 감독은 최근 충무로에서 주목 받는 영화감독이다. 1984년생인 그는 2011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형 광고 기획사에서 4년 정도 근무했다. 회사원 가운데 가장 자유분방한 광고업계도 그에게는 답답했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영화쟁이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으로 향했다. 11월 14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이기인 시의원을 인터뷰 하는 심요한 감독. 사진=이종현 기자 낭중지추, 그가 주머니를 뚫고 나온 건 2016년 일이었다. 그가 연출한 영화 ‘훌륭한 영화’가 2016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본선에 진출했다. 이듬해 서핑광인 그는 한국에서 생소한 서핑 영화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독립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독립영화지만 배우 손종학과 신재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씬 원 아카데미 1기에 발탁된 그는 현재 영화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내년 2월 완성될 이 시나리오는 그의 첫 상업영화 도전작이 될 예정이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