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원내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의원들은 강석호(3선) 유기준(4선) 심재철(5선) 윤상현(3선) 의원 등이다. 모두 강력한 대여 투쟁을 천명했지만 각각 내부 셈법은 다르다. 협상에 적극 의지를 보이는 ‘비둘기파’가 있는 반면, 더욱 강성으로 나설 것을 예고한 ‘매파’도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발걸음을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12월 4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 모두발언을 위해 연단에 선 나경원 원내대표는 결국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소리의 힘은 없었다. 그는 내년 총선까지 유임 의지를 밝혔으나 황교안 대표에 의해 사실상 ‘불신임’을 당했다. 의총 분위기는 긴장감이 흘렀다. 의원들 대표인 원내대표를 당대표가 이렇게 좌지우지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황 대표가 ‘원외 인사’라는 점을 들어 불쾌한 반응을 감추지 않는 의원도 있었다.
나 원내대표 임기는 12월 10일까지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국회의원 잔여 임기가 6개월 이하면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임기 연장을 할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있는 만큼 나 원내대표 유임 가능성이 점쳐졌다. 나 원내대표 본인도 12월 2일 의원들에게 의총 소집 문자를 보내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3일 황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나 원내대표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런 결정에 설왕설래했다. 황교안 대표 측은 재신임 의총소집을 ‘부의’할 수 있는 권한은 최고위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 사이에선 의원들의 최고 의결기구는 ‘의총’이라며, 황 대표가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급기야 4일 내부 충돌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 청와대 앞에서 열린 당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앞서 정진석 의원(4선)은 박완수 사무총장 등 지도부를 향해 “정치 20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고성을 질렀다. 오후 열린 의총에서는 김태흠 의원(재선)이 “참으로 유감스럽고 개탄스럽다”며 “최고위의 결정이 너무나 황당하다”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여러 논란에도 단식 농성 후 복귀해 ‘쇄신 드라이브’를 내건 황 대표의 결정에 일단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의원들의 반발 기류가 일지만 나 원내대표가 결국 ‘승복’한 부분도 자리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 같은 의사를 밝힌 저녁, 비서들과 식사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황교안 대표가 나경원 원내대표 교체에 나선 이유는 그간 서로 간의 여러 불협화음도 있었으나 최근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자 대거 교체로 인한 쇄신 동력을 이어가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특히 교착 상태에 빠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협상에서 반전을 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협상 능력은 황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 늘 도마 위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강력한 투쟁을 내세우면서도 물밑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황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나 원내대표에게 싸울 땐 싸우더라도 여당과 얘기를 이룰 만한 수많은 채널을 확보해놔야 한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며 “4선 의원이나 돼서 그게 안 되는 것을 보고 패스트트랙 협상이 공회전할 것이라 봤다”고 귀띔했다.
통상 여당과 야당 원내대표는 대외적으로 싸울 땐 싸우더라도 수많은 물밑 교류를 통해 이견을 좁혀가는 것이 전례였다. 원내대표를 지낸 한국당 중진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 설득하느라 도시락 싸들고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며 “나 원내대표가 그 부분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월 4일 국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난 뒤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마침 이날 본회의는 199개의 안건이 올라온 상태였다. 한국당은 모든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걸었다. 의원 1명당 부여된 시간은 4시간이다. 소속 의원이 108명인만큼 단순 계산으로 법안 1건에 최대 432시간의 토론이 가능하다. 199건의 법안을 모두 토론할 시 8만 5968시간이 흐른다. 정기국회 종료일은 12월 10일로, 패스트트랙 저지에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의 이러한 구상은 곧바로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민생법안을 볼모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관심이 쏠렸던 ‘민식이법’이 이날 본회의 상정이 예정됐지만, 결국 필리버스터로 인한 본회의 파행으로 무산된 부분이 뼈아팠다. 나 원내대표는 민식이법은 필리버스터를 걸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민식이법은 당시 법제사법위원회를 막 통과했고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던 터라,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가 일반 여론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당내 지적이 잇따랐다.
필리버스터는 범여권의 패스트트랙 관철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한국당에게 ‘인천상륙작전’에 버금가는 반전 카드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무리수라는 반응도 나왔다. 나 원내대표가 ‘전쟁 중 장수는 바꾸지 않는다’라는 점을 노려, 수많은 법안을 필리버스터로 일단 걸어놨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결국 나경원 원내대표가 물러남에 따라 향후 대여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나 원내대표 유임 불가 사태를 겪은 후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대응 전략은 일단 붕 뜬 상태다. 필리버스터의 경우에도 취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차기 원내대표 출사표는 강석호(3선) 유기준(4선) 심재철(5선) 윤상현(3선) 의원이 던진 상태다. 나 원내대표가 이끌던 원내지도부가 ‘강경일변도’로 일관했다는 점을 지적하듯, 새로운 주자들은 ‘협상’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장 협상파에 가까운 인물은 강석호 의원이 꼽힌다. 그는 출마 선언에서 “반대와 투쟁이 야당의 특권일 수는 있지만 야당의 진정한 무기는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협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 방식에 있어 패스트트랙을 다 막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내주고 선거법은 막자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재철 의원의 경우 ‘반협상파’로 분류된다. 공수처는 결사반대지만 선거법에선 타협을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50(지역구)+50(비례)’ 정도면 크게 타격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유기준 의원의 경우 양보보다는 한국당 주도의 협상을 해야 한다는 강경파에 속한다는 평이 나온다. 그는 현재 한국당을 제외한 범여권의 ‘4+1’ 구도를 다른 야당을 설득해 ‘3+2’나 ‘2+3’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그는 연동형 비례제와 공수처 모두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그간 노련한 협상 능력을 보여준 만큼 여당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당내 시각이 제기된다.
한국당의 다른 중진 의원은 “협상 국면에서 제1야당이 장수를 교체한 만큼 여당도 좀 더 유연한 협상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