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을 진행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 사진=고성준 기자·연합뉴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4일 서울가정법원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이혼 맞소송 소장을 제출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5년 12월 세계일보에 편지를 보내 내연녀와 혼외자의 존재를 알렸다. 당시 최 회장의 편지에는 부인 노소영 관장과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새 사람을 만나 혼외자까지 낳았다는 고백이 담겼다.
그럼에도 노 관장이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밝히자 최 회장은 2017년 7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해 11월 조정 절차를 밟았지만, 양측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지난해 2월 조정 불성립 결정을 내리고, 정식 소송 절차에 돌입했다. 이 소송 역시 2년 가까이 네 차례 변론기일이 열렸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태원 회장이 편지를 공개하기 한참 전부터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들은 최 회장의 불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2014년 7월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를 찾은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작성한 메모에는 최태원 회장의 내연녀가 언급돼 있다. 국정농단 수사 당시 이 전 비서실장은 이 같은 내용을 ‘연희동’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 연희동은 노소영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국정농단 봉인해제 2탄] 이병기 전 실장, 이재만에 “당신이 여기에 왜 들어와. 나가”).
노 관장이 맞소송을 통해 이혼 의사를 밝힌 것은 최 회장이 공식적으로 이혼을 요구한 지 4년여 만이고,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5개월여 만이다. 이번 맞소송은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과의 이혼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노 관장은 지난 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내 지난 세월은 가정을 만들고 이루고 또 지키려고 애쓴 시간이었다. 힘들고 치욕적인 시간을 보낼 때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기다렸다”며 “그러나 이제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됐다. 그 사이 큰딸도 결혼하여 잘 살고 있고 막내도 대학을 졸업했다. 이제는 남편이 저토록 간절히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 관장은 이어 “지난 30년은 내가 믿는 가정을 위해 아낌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정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제 그 ‘가정’을 좀 더 큰 공동체로 확대하고 싶다. 남은 여생은 사회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헌신하겠다”고 덧붙였다.
노소영 관장은 이번 소장을 통해 최 회장에 이혼을 청구하며, 위자료 3억 원과 별도로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그룹 지주회사 SK(주) 주식 1297만 5427주(18.44%)의 42.29%를 자신의 몫으로 청구했다. 주식수로는 548만 7327주, 소송을 제기한 4일 종가(25만 3500원) 기준으로 1조 3800억 원이 넘는다.
노 관장은 현재 SK(주) 주식 8616주(0.01%)를 갖고 있다. 노 관장의 청구대로 지분분할이 이뤄질 경우 노 관장은 지분 7.8%를 확보해 SK(주)의 2대주주에 올라선다. 반면 최태원 회장은 지분이 18.44%에서 10.64%로 감소하지만,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의 SK그룹 본사. 사진=일요신문DB
따라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시점인 1988년 이후 노 관장과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소영 관장이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에 도움을 줬다고 알려진 기업은 SK텔레콤이다. SK가 노태우 정부에서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맞다. 하지만 특혜설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했고, 이후 김영상 정부에서 한국통신 민영화 진행과정에서 SK가 공개입찰로 주식을 매입했다”며 “현재로서는 노소영 부녀가 SK텔레콤 탄생과 성장에 기여한 점을 입증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귀띔했다.
반면 청구한 주식수만큼은 아니더라도 노소영 관장이 충분히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혼전문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리)는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도를 자세히 입증할 필요는 없다. 최근 법원 판례는 가정주부의 내조 기여도도 인정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이 노 관장에게 혼인기간 중 형성되거나 증가한 재산 중 20~30%로 인정해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 이혼소송 역사상 최대 금액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 관장이 최 회장에 대해 반소를 제기하면서, 두 사람의 이혼소송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1심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 측이 합의조정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인철 변호사는 “최 회장은 그동안 빨리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길 원했다. 노 관장 역시 이혼을 결심한 이상 불필요하게 시간 끌 이유가 없다”며 “재판이 아닌 합의조정을 하게 되면 노 관장이 얼마나 재산분할을 받았는지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노소영 관장이 재산분할을 통해 SK(주) 지분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향후 최 회장 자녀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부부는 최윤정·민정·인근 씨 1남 2녀를 두고 있다. 최 회장과 그의 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 사이에도 딸이 있다. 또 김희영 이사장과 전 남편 사이에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추후 노 관장의 자녀들과 김 이사장 자녀들 사이에 SK그룹 경영권을 두고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노 관장 입장에서는 이혼소송 과정에서 미리 SK(주) 지분을 확보해 자녀들의 경영권 확보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귀띔했다.
한편 이혼소송의 관계자들은 이번 맞소송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의 사적인 영역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줄였다. 최태원 회장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원 관계자 역시 “최 회장 측에서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맞소송에 대해 반응을 낼 계획도 현재는 없다”고 설명했다. 노소영 관장 측 법률대리인 역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