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SK, 현대차...파격과 안정 속 전략적 인사
올해 국내 5대그룹 정기 임원 인사의 방향성은 누구도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다. 예년과 비슷한 시점에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내용은 가늠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룹 사정에 따라 다르더라도 통상 윤곽 정도는 미리 드러나는데, 이번엔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신호탄은 지난 11월 말 LG그룹이 쐈다. 구광모 회장 체제가 들어선 뒤 두 번째 정기 인사였다. 이번 LG그룹 인사는 ‘파격’으로 요약된다. LG를 글로벌 가전 1위에 올린 LG전자의 주역이자, 상징이었던 조성진 부회장이 물러났다. LG생활건강과 LG전자에선 차세대 리더 육성 강화책에 따라 30대 여성 상무들이 깜짝 발탁됐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특히 LG생활건강 신임 상무는 오너가 출신이 아닌 임원 가운데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 새롭게 임원이 된 106명 가운데 20%가 45세 이하고, 전체 승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로봇 사업 관련 인사였다. 구광모 회장이 그리는 ‘미래 LG’의 밑그림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그 뒤를 이었다. SK그룹은 예정대로 지난 12월 5일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최태원 회장이 올해 7월 상무, 전무, 부사장과 같은 임원 직급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후 단행된 첫 인사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관심이 쏠렸던 그룹 핵심 계열사 사장단(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장동현 SK주식회사 사장)은 모두 유임됐다.
대신 수펙스(SUPEX, Super Excellent Level)추구협의회에 변화를 줬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 현안을 논의하는 의사결정기구다. 7개의 위원회로 구성돼 16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구성원으로 활동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을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에너지·화학위원회 위원장에 새로 임명했고,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에 장동현 SK(주) 사장을 발탁했다. 협의회 협약사(관계사) 가운데 SK C&C, SK브로드밴드, SK머티리얼즈, SK루브리컨츠 등 4곳에는 50대 새 CEO(최고경영자)를 선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
그룹 컨트롤타워인 SK(주)에서 승진 임원이 지난해 9명에서 올해 16명으로 늘었다는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승진 임원이 각각 절반 이상씩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CEO를 비롯한 ‘C레벨’ 임원을 그대로 두면서 중심을 잡고, 각 계열사 사업부장 등 임원을 대거 교체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 관계자도 “인사 규모 자체는 예년보다 대폭 줄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크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12월 5일 주요 계열사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사장 1명, 부사장 5명, 전무 1명 등 총 7명의 승진 인사로 예년보다 작은 규모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대규모 정기 임원인사 연중 수시인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해 9월부터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변화를 줬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하언태 사장의 승진이다. 그는 최근 2년 연속 승진했다. 2017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지난 2018년 1월 울산공장장으로 임명됐고, 올해 사장에 올랐다. 울산공장은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자동차 공장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최근 국내 공장을 선진시장 거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허 사장이 현대차그룹의 완성차 생산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7월 남양연구소장을 새로 교체했다. 연구소와 공장의 수장을 모두 교체하면서 향후 자율주행과 모빌리티, 수소전기차 등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인사 앞둔 삼성·롯데...변화일까 안정일까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은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2010년 이후부터 12월 첫째 주 전후로 인사가 단행됐는데, 올해는 다소 미뤄지고 있다. 다만 오는 12월 16일부터 ‘2019년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가 열리고, 이 자리에서 내년 사업 계획 구상과 전략 수립이 이뤄지는 만큼 늦더라도 12월 둘째 주 전에는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김기남 부회장과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3인 공동 대표 체제가 유임될지 여부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부문장 변경 등의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세 명의 임원 모두 삼성전자 전체 실적을 이끌고 있는 만큼 내년까지 공동대표 체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더 높다. 한편에서는 내년에도 이 체제가 이어진다면 3년 연속으로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는 점을 들어 변화를 예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전체 임원 승진 규모도 소폭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주요 임원이 연루된 국정농단 뇌물사건 파기 환송심이 이번 인사의 주요 변수로 거론되고 있는데, 재판이 인사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롯데그룹은 12월 중순에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지난해 롯데그룹 지주사 체제가 시작된 이후 사실상 ‘뉴 롯데’를 향한 첫 인사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출장길에서 복귀한 이후 지난 12월 3일 첫 임원회의를 열었는데, 경영진 인사 구상은 이 회의를 전후로 윤곽이 드러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선 특히 유통 부문에서 대폭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인사를 단행한 경쟁 그룹인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세대교체를 했던 만큼 롯데그룹도 비슷할 것이라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은 모두 새 수장을 임명했다. 롯데백화점 대표까지 교체되면 처음으로 국내 빅3 백화점 대표가 이번에 모두 바뀌게 된다. 그동안 온라인 매장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합하는 전략을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다 젊은 임원이 발탁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