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은 지난 2018 시즌 타율 0.334 44홈런 133타점을 기록하며 MVP, 골든글러브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2019 시즌의 기록 하락은 메이저리그 진출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사진=박정훈 기자
김재환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5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김재환의 행보에 야구인들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두산의 발표에 의하면 김재환은 프리미어12를 마친 후 구단 측에 도전 의사를 전했고, 두산은 고민을 거듭하다 4일 최종적으로 김재환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신청에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두산의 김태룡 단장은 일요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프리미어12 대회 마치고 구단에서 선수와 만났는데 이미 마음은 태평양을 건너 가 있는 상태였다. 선수의 의지를 꺾어봤자 속앓이만 할 것이고, 구단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보내주기로 결론내린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보내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김태룡 단장은 단, 조건을 달았다고 덧붙였다. “두산의 4번타자인데 헐값에는 안 된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맞는 대우를 받고 가야 출전 기회 등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김재환의 연봉은 7억 3000만 원. 2018시즌 타율 0.334에 44홈런 133타점으로 MVP를 수상했던 그는 2019시즌 타율 0.283 15홈런 91타점을 기록했다. 김 단장은 정확한 액수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구단과 선수가 서로 납득할 만한 몸값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환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프리미어12에서 활약하며 FA 등록일수를 채워 포스팅에 도전할 수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김재환이 외형상으로는 ‘갑자기’ 미국행 선언을 하게 된 배경에는 프리미어12의 활약이 존재한다. 2016년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 잡은 김재환은 원래대로라면 2022시즌을 마치고서야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12 대회에서 대표팀이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덕분에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FA 등록일수 60일이 인정되면서 김재환은 포스팅을 통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7시즌을 채울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같은 시기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행을 노리는 김광현과 달리 김재환의 현실은 녹록지 않은 편이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A 씨는 김재환 행보와 관련해서 “정말 뜬금없는 소식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시즌 내내 김재환 관련해서는 ‘카더라’라는 소식도 없었다. 전혀 체크하지 않았던 선수라 어제(5일)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반응은 다른 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MVP까지 수상한 거포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의 포스팅 시스템 공시는 선수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A 씨는 김재환의 스윙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적응만 잘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올 시즌 부상 등으로 이전 시즌보다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무난히 적응하고 꾸준히 출전 기회를 보장받는다면 홈런 15개에서 20개는 칠 수 있을 것이다. 단, 지난 시즌 44개의 홈런에서 올해 홈런이 15개로 줄어든 부분은 선수한테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다.”
A 씨는 김재환이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예상했다. 김재환한테 관심이 있는 팀이 나타날 경우 계약 기간 2~3년의 스플릿 계약이 현실적인 제안이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재환의 에이전트사인 스포티즌은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스포티즌의 한 관계자는 김재환의 미국 진출을 돕는 현지 에이전트로 ‘CAA Sports’를 소개하면서 “앞으로 CAA Sports가 30일간 메이저리그 전 구단과 협상을 벌인다”라고 설명했다. CAA Sports는 2017년 오타니의 MLB 포스팅 과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올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과 버스터 포지(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
스포티즌 관계자는 김재환의 미국 진출과 관련해서 “그동안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재환 선수의 꿈이 메이저리그 도전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계속 준비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가려면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대표팀 활약 덕분에 7시즌을 채우게 됐고, 이로 인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두산 김태룡 단장을 찾아가 허락을 구했다. 최종 허락을 받기까지 김 단장을 세 차례 정도 만났다. 결국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대해 김재환 선수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스포티즌 관계자는 국내 여론과 메이저리그에서 보는 김재환에 대한 시각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한 반응들이다. 분명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김재환 선수가 내년에 간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다. 어차피 부딪혀야 할 벽이라면 일찍 부딪히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스포티즌 관계자는 미국의 유명 에이전트사인 ‘CAA Sports’사가 아무런 대책 없이 김재환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AA는 김재환 선수와의 에이전트 계약을 앞두고 선수의 경기 영상을 다양한 각도로 분석했다. 그들의 반응은 스윙 메커니즘이 오타니보다 더 좋다는 평가였다. 그로 인해 김재환 선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만약 CAA 측에서 가능성이 없다면 굳이 리스크를 안고 김재환 선수와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로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 일부 스카우트들이 김재환의 스플릿 계약을 거론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 관계자는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스플릿 계약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그건 선수도, 구단도 원하지 않는 부분이다. 지금은 자세한 이야기를 전할 수 없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결과로 말씀드리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