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 노래 가운데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삽입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라면과 구공탄’은 가수를 꿈꾸던 마이콜이 둘리, 도우너와 함께 ‘핵폭탄과 유도탄들’이라는 그룹명으로 경연 무대에 올라 부른 곡이다. 한데 느닷없이 인종 차별 논란에 휘말린 까닭이 무얼까 하면, 마이콜이란 캐릭터 자체가 흑인을 희화화한 캐릭터인데 그걸 흑인 혼혈인 한현민에게 맡기면 어쩌냐는 주장이다.
#마이콜은 흑인의 특징을 희화화한 캐릭터?
사실 ‘아기공룡 둘리’의 원작자인 김수정 작가는 애장판 서면 인터뷰에서 마이콜이 혼혈 아닐까 싶은데 탄생 배경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마이콜은 흑인이 아닌데요?”라고 답하고 있다. 혼혈이냐 묻는 질문에 관한 작가의 단답이었으니, 마이콜은 흑인도 흑인 혼혈도 아닌 그냥 피부가 다소 까무잡잡하고 마(馬) 씨 성을 지닌 한국 남성 ‘이콜’인 셈이다.
마이콜의 모델에 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막상 작중에서 전축으로 음악 감상을 즐기던 고길동을 소음으로 놀라게 한 첫 노래는 연재 당시 최고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잭슨의 노래 ‘스릴러(Thriller)’다. 작가 또한 마이콜의 이름을 지을 때 “마이클 잭슨을 흉내 냈다”고 밝힌 만큼 마이콜을 이야기하며 마이클 잭슨을 아주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겠다. 이를 반영하듯 마이콜이 첫 등장하는 장면에선 마이콜 본인이 아예 마이클 잭슨을 같은 종씨라 지칭하며 종씨만큼 유명해질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사실 마이콜이 흑인의 특징을 희화화했다기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 흑백 만화였던 원작에서 마이콜의 얼굴에는 음영을 표현하는 망점 하나 붙어 있지 않다. 처음부터 흑인의 특징이라고 부각하려 했다면 뭐라도 붙였을 테지만 작가는 그러하지 않았고, 또한 한국 사람 마이콜을 흑인처럼, 또는 그가 종씨라 우기는(또는 멋대로 착각하는) 마이클 잭슨처럼 보이기 위해 ‘분장’하게끔 시키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작중에서 마이콜은 마이클 잭슨만이 아니라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던 이선희, 전영록의 노래들을 엉터리 같은 솜씨나마 줄기차게 불러대며 언젠가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즉 캐릭터 자체로만 놓고 보면 흑인의 특징‘만’을 부각해 만들었다기보다는 그 시기 인기 가수라고 하면 떠오를 법한 요소들을 적당히 따다 썼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겠다.
‘아기공룡 둘리’의 주연들은 멸종한 공룡(둘리), 불시착한 외계인(도우너), 서커스 천막을 탈출한 아프리카산 타조(또치)에 고길동의 처남네가 상의도 없이 떠맡겨 오랜 시간 엄마 아빠 없이 지내야 하는 조카 아기(희동이)까지 하나같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떨어져 서 있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에도 식인종 같은 묘사가 담겼다는 점은 누구라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캐릭터 자체만 놓고 보자면 오해라면 오해겠지만, 그럼에도 마이콜을 둘러싼 논란은 여러 시사점을 낳는다. 흑인 아닌 인종이 흑인 흉내를 내는 ‘블랙 페이스(Black Face)’를 비롯해 흑인 희화화에서 우리나라 사회 자체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왕년에 인기를 끌었던 시커먼스 같은 TV 코미디 코너는 그야말로 흑인 희화화의 결정판이었고, 수년 전 국내 담배 회사가 내놓은 ‘아프리카’라는 담배 브랜드는 아프리카인을 원숭이로 묘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마이콜과 얽힌 흑인 희화화 이슈 또한 이번만이 아니다. 2012년엔 마이콜 캐릭터를 패러디한다고 얼굴을 새까맣게 칠하고 나온 여성 코미디언 둘이 논란이 되어 해당 방송분이 온라인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원래 그렇게 생긴 한국인’이었던 마이콜을 따라한다며 굳이 흑인 분장을 일부러 과도하게 하고 나온 셈이었으니, 이 경우야말로 흑인들에게 큰 실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브랜드 광고와 얽힌 논란도 이런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2017년 SNL코리아 시즌9에서는 걸그룹 에이핑크가 ‘둘리’ 캐릭터들로 분한 가운데 멤버인 보미가 마이콜로 분장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는 굳이 피부를 완전히 새까맣게 칠하지 않고 캐릭터의 형태만을 본뜸으로써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마이콜이라는 캐릭터를 흑인 희화화로 오해했는가와는 별개로, 우리보다 더 진한 피부색을 지닌 인종들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만화도 이 논란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우리네 1970~1980년대 명랑만화들에서는 아프리카에 사는 원주민들을 식인종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주연급 대부분이 사회가 정상이라 규정하는 범주에서 떨어져 있어 ‘비주류 변두리 인생들의 삶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 ‘둘리’조차 막상 식인종 묘사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안의 혐오와 차별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차별과 혐오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으며, 시대가 그랬다는 말로 넘어가기엔 분명 사회 구성원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겨왔음을 뒤늦게라도 인지해야만 한다. 차별과 혐오는 하나를 향해서만 진행되는 경우가 없고, 자기 인식 상 ‘아래’라 상정한 대상을 향해서라면 의식도 없이 전개된다. 인순이로 시작해 하인스 워드, 한현민으로 이어지는 혼혈 유명인들의 사례가 점차 흑인 혼혈을 향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역할을 하고 있지만, 흑인이 아닌 동남아 쪽 혼혈들을 대하는 시선은 또 어떠할까.
임해연 작가의 2010년 만화 ‘호랑님의 식탁’에는 농촌 혼인 이민자 2세 ‘준당’이 고구마 서리를 하려던 친구들을 말리다 “잡종”이라며 욕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고구마밭 주인은 다짜고짜 범인으로 혼혈아를 지목하며 이민자인 엄마까지 심하게 모독하지만 막상 서리를 주동한 건 밭 주인집 아들이었다. 주인공 중 하나의 법적조치 운운에 겁먹은 밭 주인의 읍소로 상황이 끝나긴 하지만, 작품이 나오던 시기 즈음 준당이가 나이를 먹었으면 지금 딱 한현민 씨 정도다. 인종은 다르나 결국 만화 안팎에서 이들이 겪은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그나마 ‘호랑님의 식탁’ 정도의 비판적 묘사가 만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게 2010년대 즈음이니,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차별과 혐오는 비단 인종을 향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여성, 성소수자(LGBTQ) 차별 이슈는 어떤가. 노키즈존 같은 유아·아동 혐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또 어떤가. 우리는 지금, 그간 아무렇게나 생각했던 수많은 지점에 관해 똑바로 바라볼 것을 요구받는 시대에 서 있다. 심정적으로 불편할지언정 고개를 돌려선 안 될 것이고, 그건 대중문화의 하나인 만화 또한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번 흑인 희화화 논란 역시 대중문화 속의 묘사에 일말의 경계심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단 점에서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겠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