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가 기업공개를 앞두고 동남아 시장에 진출, 성공 가능성에 업계 시선이 엇갈린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현대카드 사옥. 사진=박은숙 기자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지난 11월 말 IPO 주간사로 NH투자증권과 시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선정했다. 한국투자증권도 공동주간사로 참여한다. 현대카드는 앞서 지난 10월 초 국내외 증권사에 유가증권시장 상장 주간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 요청서를 보내 상장을 본격화했다. 시장에서는 현대카드의 IPO가 이르면 내년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불투명해졌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더 유리한 IPO 가격에 도달하기 위해 상장을 2021년까지 늦추기를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FT 인터뷰에서 “우리는 2020년 말 이전까지 IPO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꼭 2020년 말에 (IPO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오너가 직접 상장 연기 의사를 내비친 만큼 앞서 추진했던 상장 작업이 흔들릴 가능성이 짙어졌다.
정 부회장이 이같이 밝힌 까닭은 현대카드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재무적투자자(FI)들이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탓이다.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지분율 9.99%)와 싱가포르투자청(9%), 알프인베스트파트너스(5%) 등은 GE캐피탈이 보유한 현대카드 지분을 2017년 3766억 원에 사들였다. 당시 FI들이 산정한 현대카드의 기업 가치는 1조 5000억~1조 6000억 원 수준으로, 이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공모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내 카드 시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정부의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카드론 증가율을 연 7% 이내로 제한하는 대출총량 규제, 여신전문금융업법상 과도한 마케팅과 부가서비스 금지 등 여러 규제로 카드사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사업 확장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핀테크 업체와 유통업체 등이 간편 결제 시장에 뛰어들면서 기존 고객을 점점 빼앗기고 있다. 카드사들의 상황이 앞으로 좋아지리란 보장도 없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투자자들의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지금 상장해봐야 FI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정태영 부회장은 국내 카드시장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동남아 시장 개척과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을 활용한 서비스를 내세운다. 현대카드는 지난 10월 베트남 현지의 중견 소비자금융사 커뮤니티파이낸스의 지분 절반을 490억 원에 인수했다. 내년 상반기 합작법인 설립 등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우선 마이크로파이낸스 위주로 사업을 한 뒤 추후 신용카드와 할부금융 등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며 “베트남 진출에 집중한 뒤 다른 동남아 시장들도 검토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소비 내역과 생활방식, 취향 등을 분석해 제공하는 개인 맞춤형 마케팅 서비스도 개발 중이다. 정 부회장은 FT에 “새로운 시스템에서 처리되는 수천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사용해 고객마다 맞춤형 혜택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현대카드가 기업공개를 앞두고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현대캐피탈 건물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시장에서는 현대카드의 이 같은 전략이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앞서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우리카드 등이 동남아시장에 진출해 이미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카드가 후발주자로서 경쟁에 뛰어들면 오히려 국내 카드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기 투자비용이 큰 만큼 시장에 자리 잡기 전까지 적자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앞서 진출한 카드사들도 진출 초기에는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드업도 장치사업이기에 단말기와 같은 인프라 구축과 가맹점 확보 등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며 “여기에 더해 동남아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 우리나라 여전(여신전문금융)업계간 경쟁이 치열해져 손실이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정부 차원의 디지털 전환 정책으로 카드 수요가 많은 카자흐스탄이나 국내 자동차 대기업들이 진출한 폴란드 등 새로운 시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실제 해외 첫 시장으로 카자흐스탄을 택한 신한카드의 현지 법인은 출범 당해인 2014년 400만 원의 손실을 냈지만 이듬해 흑자전환 이후 계속 흑자를 이어갔다. 올 3분기 8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동남아 시장은 그 특성상 수익성이 낮다는 점도 숙제다. 경제 성장률이 빠르고 금융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성장 여력은 크지만 소비 방식이 현금 위주여서 카드사의 수익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동남아는 금융소외계층이 많고 신용을 중시하는 불교문화 영향으로 연체율이 낮다는 점 등에서 카드사들이 수익은 내겠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 전반적인 실적 개선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기반 맞춤형 서비스도 반향을 일으키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한 카드사가 이미 많아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민환 교수는 “이미 대부분 카드사 등 금융권에서 AI나 빅데이터를 통한 맞춤형 개인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며 “AI 서비스 구축만으론 큰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
현대카드는 현대·기아차 계열사를 활용한 결합상품 등 시너지가 날 수 있고, 현지에 법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지 여신전문금융사(여전사)를 인수하는 방식이어서 초기 투자비용과 리스크가 줄어들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신한카드가 베트남 현지 중견 여전사를 인수해 올해 출범시킨 신한베트남파이낸스가 올 3분기 기준 123억 원의 흑자를 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카드는 현지법인의 절반을 인수해 50 대 50 조인트 벤처 방식으로 베트남에 진출하는 만큼 기존 현지법인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다면 좋은 결과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베트남 진출은 IPO를 위해서라기보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금융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있기에 잠재력을 보고 뛰어든 것”이라며 “베트남의 경우 먼저 진출한 카드사들이 많지 않고 진출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출혈경쟁을 논하긴 이르다”고 반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