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손을 맞잡은 심재철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김재원 자유한국당 신임 정책위의장. 사진=박은숙 기자
12월 9일 오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에선 “김선동 의원(재선)이 원내대표로 선출될 것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경원 원내대표 유임을 반대한 황교안 대표 의중이 김 의원을 향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김 의원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 후보로 나선 김종석 의원(초선)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기고 선배라는 사실 또한 이를 뒷받침했다.
11월부터 초·재선 의원들이 입을 모아 중진 용퇴론을 부르짖었던 것도 재선인 김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5선 심재철 의원이 과연 과감한 인적 쇄신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뒤를 이었다. 이처럼 황심과 함께 쇄신 분위기까지 등에 업은 ‘김선동-김종석’ 조합의 운명은 12월 9일 아침까지만 해도 ‘해피 엔딩’으로 결론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부터 예상외 결과가 나왔다. 의원 106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심재철 의원이 38표, 김선동 강석호 의원이 각각 28표, 유기준 의원이 10표를 얻었다. 과반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없어 원내대표 선출은 결선 투표로 접어들었다.
심 의원이 1차 투표부터 선두를 달린 것과 관련해 한 자유한국당 3선 의원실 관계자는 “중진들이 위기감을 느껴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까지 재선 의원이 차지하게 되면, 중진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치명타 아닌가. 중진 용퇴론 목소리가 커진 것과 맞물려 당 수뇌부에서도 3선 이상 의원들을 배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재원 자유한국당 신임 정책위의장. 사진=박은숙 기자
투표가 진행되기 전 정책위의장 후보 김재원 의원의 연설이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김 의원은 투표에 앞선 연설에서 2017년 딸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했었다고 털어놨다.
김 의원은 “(자유한국당이) 혁신하고 쇄신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우리 당의 말을 존중한다.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우리는 야당 중 유일하게 여당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야당”이라고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김 의원 연설을 두고 “현 정권의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의원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했다’는 김 의원 연설 내용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했다.
결선투표에서 1위와 2위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결선투표 결과 심재철 의원은 106표 가운데 52표를 얻었다. 김선동 의원과 강석호 의원은 각각 27표를 받았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우리 당이 잘 싸우고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가기 위한 여러분의 미래에 대한 고심의 결단이 이렇게 모였다. 지금까지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저질러온 여러 이야기를 알고 있다. 늘 승리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우리에게 필요한 투쟁력과 협상력을 갖춘 훌륭한 분”이라고 말하며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 손을 맞잡았다.
선거가 끝난 뒤 당 안팎에선 “황교안 당대표 독주체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소속 재선 의원실 관계자는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의 존재 자체가 황교안 대표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자유한국당 당직자는 “단식 이후 당권 장악에 속도를 내던 황 대표가 원내대표 선출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 같다. 황 대표가 김선동 의원을 지지한다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돌았다”면서 “5선 베테랑 심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총선을 앞둔 중요한 상황에서 ‘정치 초보’ 황 대표의 독주체제 구축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당직자는 “당내에서 황 대표 리더십을 견제하려는 기류 역시 이번 의원총회에서 반영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내부적으론 문재인 정부의 저격수를 자처하고 나선 심재철 원내대표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전직 자유한국당 당직자는 “운동권 출신 심 원내대표는 정치권에서 합리적인 인사로 평가받는다”면서 “황교안 대표 독주체제를 견제하면서, 집권 여당에 대한 적극적인 대여 투쟁을 이어가기엔 적임자”라고 했다. 반면, 일각에선 여야 대치 정국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들린다.
정치평론가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심재철 원내대표가 투쟁가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전임자인 나경원 원내대표에 비해 공격수위가 더 높아질지 여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윤태곤 실장은 “황 대표가 다른 원내대표 후보들보다 심 원내대표를 끌고 당을 리드하는 것엔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심 원내대표가 중진 용퇴론을 반대하며, 중진들을 감싸 안을지 여부에도 물음표가 붙어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간 관계 설정 부분은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이란 얘기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