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일 오후 4시 40분쯤 대구 달서구 송현동 주택가의 한 빌라에서 80대 노인 A 씨(80)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온몸에 자상을 입고 손에는 방어흔을 남긴 채 사망했다. 방어흔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공격을 인식하고 칼이나 총 등의 흉기를 막을 때 생기는 흔적으로 타살임을 증명하는 중요 단서가 된다. 경찰은 1일과 2일 사이 A 씨가 타인에 의해 사망했다고 보고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경찰은 A 씨의 거주지 주변 CCTV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A 씨의 친딸 B 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건 당일 A 씨의 집에서 나오는 장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로 추정되는 사람은 1일 해당 빌라에 와서 하루를 머문 뒤 2일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B 씨가 빌라 인근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량에 탔다가 다시 내리는 모습도 CCTV에 찍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지방경찰청 전경. 사진=연합뉴스
A 씨가 살던 곳은 전형적인 주택가였다. 80m 떨어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어 사람들의 왕래도 잦았다. 그러나 A 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민들은 A 씨를 ‘이웃과 왕래 없이 살던 조용한 할머니’로 기억하고 있었다. 인근 문구점 주인은 “할머니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지금까지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혼자 살았던 것으로 아는데 자주 인사를 나누는 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교회나 경로당조차 나가지 않았다. A 씨가 살던 빌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로당 회장은 “무료한 노인들이 대개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동네 노인들 이름은 거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A 씨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서 ‘A 씨에 대해 아느냐’는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지자체에서도 A 씨의 행적을 찾은 것이다.
5일 방문한 A 씨의 자택. 초인종에는 지난달보다 수도 사용량이 많다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사진=최희주 기자
A 씨가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풍족한 편에 가까웠다. 일부 언론에서 A 씨의 자택을 원룸으로 보도했으나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빌라는 원룸이 아닌 방 3칸짜리 연립주택으로 4인 가족이 거주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크기라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도 아니었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해당 주소에 신고된 전입자는 할머니 한 분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외에 다른 수급 대상자는 아니었다. 복지혜택이나 일자리 등 상담을 받은 이력도 없어 지자체 모니터링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금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A 씨를 알고 있는 소수의 이웃은 오히려 모녀간 재산 문제로 인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A 씨가 가지고 있던 집 등 부동산 재산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A 씨는 과거 시세 3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A 씨가 사망하지 않은 시점에서 자녀와 이에 대한 지분 거래를 한 바 있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할머니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곳은 대구에서는 나름 값이 나가는 브랜드 아파트다. 할아버지와 공동명의로 소유했는데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지분 절반이 자녀에게 상속됐다. 주목할 점은 상속된 지분을 할머니가 시세에 맞지 않는 금액에 다시 샀다는 점이다. 꼭 부모자식 사이가 아니더라도 급한 돈이 필요할 때 집을 담보로 주로 쓰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A 씨는 해당 아파트를 처분하고 그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지금의 빌라로 이사 와 줄곧 혼자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동산 거래 등을 두고 재산 분쟁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한편 경찰은 B 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하고 구체적인 살해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B 씨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한편 CCTV 속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나온 증거물을 토대로 영장을 청구했으며 계속해서 살해 동기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구=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