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여권 관계자는 양 원장과 이 전 수석이 친문 3대 권력형 비리 의혹에 휩싸인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현재 드러난 정황상 이들이 법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검찰은 지난 5월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인 ‘사문서 위조’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 전 수석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 국장이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부산으로 데려온 배후로 지목됐지만, 감찰무마 의혹에 깊숙이 개입한 연결고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 최측근 그룹인 이들이 권력형 비리 의혹에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정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의 개인적 진로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양 원장은 친문계 인사들이 꼽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임기 말 대통령과 함께할 ‘순장조’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친노(친노무현계) 한 관계자는 “양 원장이 임기 말 청와대로 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며 “오는 2022년 5월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짜는 권력 디자이너가 그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양 원장은 지난 9월 일찌감치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양 원장이 가진 브랜드 파워는 막강하다. 그는 문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이다. 나이 어린 참모진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문 대통령이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줄임말)’라고 애칭을 부르는 몇 안 되는 인사다. 양비가 민주연구원장으로 복귀한 직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의 비밀 독대 논란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의 갈등설 등도 양비가 가진 브랜드 파워의 한 단면이다.
군기반장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 양비의 강점이다. 양 원장은 한때 청와대 간판을 앞세워 총선에 출마하려는 전·현직 참모진이 40여 명에 달하자,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한 방송에서 양비 역할에 대해 “잔가지 등을 썰어내는 톱”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민주연구원 유튜브에서 ‘대권주자 감별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3연임 이후 계획’에 대해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하면 미래는 저절로 생긴다”고 답하자, 양 원장은 “문 대통령의 데자뷔”라고 치켜세웠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 사진=이종현 기자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우리들병원 소유주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이상호 회장이다. 우리들병원은 2012년 12월 산업은행으로부터 140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이 회장과 전처인 김수경 우리들리조트 회장이 천주교 주요 인사인 신 아무개 씨와 레스토랑 운영을 명목으로 신한은행과 260억 원의 연대보증을 선 것을 문제 삼았다. 이후 이 회장은 신 씨 동의 없이 연대보증에서 빠졌다. 이 과정에서 신한은행이 문서 위조를 통해 이 회장을 도왔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야권이 이를 친문의 금융농단으로 규정한 근거는 산업은행이 2012년 초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가 한 달 만에 철회한 이 회장에게 14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대출한 점이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감정가 950억 원짜리 건물을 담보로 1400억 원을 대출받았다”고 주장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도 “우리들병원이 산업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미 대출이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거들었다. 이에 산업은행 관계자는 “담보자산에는 부동산과 함께 5년간의 미래 수익을 포함한다”고 반박했다. 양 원장은 의혹을 제기한 심 원내대표를 향해 김현승 시인의 ‘양심의 금속성’을 인용하며 “여유와 관용의 마음에서 문예적 대응으로 끝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경고했다.
법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에 양 원장 등 정권 실세들이 얽혀 있는 것 자체가 문 대통령에 적잖은 부담이다. 신 씨는 양 원장은 물론, 정재호 민주당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관계는 그간 정치권 안팎에서 입방아에 올랐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인 윤규근 총경을 소개해준 이도 정 의원이라고 한다. 윤 총경은 관련 내용을 ‘백원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에게 보고한 인물로 지목된 이 사건의 연결고리다.
신 씨는 검찰이 ‘사문서 위조’ 사건을 5분간만 조사하고 불기소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정권 실세가 개입했다는 얘기다. 그간 침묵하던 신 씨는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루카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윗선으로 지목했다.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할 경우 양비의 입지는 한층 좁아질 전망이다.
이 전 수석은 양비보다 법적 논란에서 더 벗어나 있다. 그가 연루된 ‘유재수 감찰무마’의 칼끝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해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을 향하고 있다. 이 전 수석은 이들의 뒷배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감찰무마 의혹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금융권 친문 실세’로 불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을 지냈던 그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원회 핵심 보직인 금융정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위 국장 시절 업체들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7년 특별감찰에 나섰다.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감찰이 중단됐다. 직위 해제된 유 전 시장은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부활했다. 야권은 부산시 블록체인 특구 조성 의혹에도 유 전 시장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모든 판을 만든 게 이 전 수석이라는 것이다. 이 전 수석은 11월 25일 중국으로 돌연 출국했지만, 12월 초 다시 국내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 내부에선 이 전 수석 의혹에 대해 “짜고 맞추기식 공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도 “유 전 부시장이 민정수석실에서 감찰 받은 뒤 인사 조치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은 21대 총선의 격전지인 ‘PK(부산·울산·경남)’에 출격하려던 이 전 수석의 행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철의 마지막인 전해철 의원은 양 원장·이 전 수석과는 달리, 친문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무관하다. 애초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1순위 후임자로 떠오른 이면에도 ‘털릴 것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전해철 카드’가 수면 위로 부상했을 때만 해도 완곡한 거절을 했던 그는 “고심 중이다(10월 18일)→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겠다(11월 23일)” 등의 진전된 발언을 하며 법무부 장관 후보자직의 수락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국회를 찾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만난 10월 28일을 기점으로 기류는 서서히 변했다. 전 의원은 당시 문 대통령의 개각 속도조절을 언급하며 “유력하다고 했던 것은 조금 많이 없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 의원은 차기 경기도지사 출마 등의 플랜을 BH(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전 의원 개인의 정치적 꿈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직전 경기도지사 선거 당내 경선에서 전 의원은 친문계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36.80%의 득표율에 그치며 이재명 경기도지사(59.96%)에게 참패했다. 이들은 경선 과정 내내 충돌했다. 일각에선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전 의원은 ‘이재명 탄원서’를 제출하며 사법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11월 10일에는 이 지사 공관에서 만찬 회동을 하고 ‘민주당 원팀’을 강조했다. 차기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당분간 전략적 공생 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전 의원은 향후 3년 내 약한 고리인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