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의 언론 대응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 뒤 검찰 고위직 관계자의 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과정에서 시작된 검찰 개혁에서 기존 언론 공보 시스템을 완전히 손봤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수사를 지휘하던 차장검사가 언론 대응도 함께 담당하며, 언론의 취재 관련 흐름을 확인해주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전담 공보관이 언론 대응을 담당한다.
문제는 ‘전담 공보관’을 수사와 관계없는 인권 감독관들이 맡다보니 “수사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답변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소환 통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주요 혐의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자연스레 수사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검찰이 언론보다 ‘앞질러’ 간 정도가 엄청 많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특히 굵직한 사건이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검찰 수사가 언론 보도보다 ‘2주일은 앞서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중앙지검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잇따르는 비공개 소환…언론과 공생 끝?
검찰은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최근 비공개 소환 조사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비리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 과정에 김 지사가 이름을 올렸기 때문인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김경수 지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과거 유재수 전 부시장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김 지사,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천경득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과 금융위 인사를 논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김 지사를 상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뒤늦게 알려졌다. 참고인 신분이라고 하지만, 김 지사를 소환할 만큼 확인해야 할 사실 관계가 정리가 됐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이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이기도 했다.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과 이인걸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장 등을 조사한 것 역시 4~5일 뒤에나 알려졌다. 검찰이 이인걸 전 감찰반장과 전직 특감반원들을 불러 조사한 것은 11월 20일. 하지만 검찰은 5일 뒤에야 이들의 소환 소식을 언론에 알렸다.
이는 검찰이 12월부터 시행한 피의사실공표 제한에 따른 조치 때문이다. 공공연히 전화를 안 받거나 “말씀드릴 수 없다. 죄송하다”는 얘기가 당연해지고 있다. 기존에 공보를 대응하던 차장검사들은 전화를 받지 않은 뒤 “죄송하다. 공보관에게 대응하시라”고 하고, 새로 대응을 맡게 된 공보관들은 “아는 게 없다”고 선을 긋는 방식이다.
박근혜 정부 적폐 수사 당시 청와대 관련 인물들은 참고인들까지도 모두 공개 소환 했지만, 이제는 경남도지사나 청와대 비서관과 같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수사 여부도 뒤늦게 알려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일주일에 2~3차례 진행되던 정례 브리핑마저 없어지면서, 더더욱 검찰 수사는 언론이 확인하기 힘든 영역이 됐다.
검찰 관계자는 “예전이었다면 어느 정도 혐의를 추려주고, 언론에 소환할 일정도 미리 가닥을 줬을 것”이라며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 아예 언론 접촉을 제한하면서 이제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정도로 가름마(검찰이 수사 방향에 대해서 언론에 큰 틀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말)를 타주는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 속도가 언론이 보도를 따라오는 것보다 한참 앞서 가고 있다”고 풀이했다.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다리는 취재진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추미애 장관 오기 전 몸 사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청와대로 향하고 있는 울산지방경찰청 발 하명수사 의혹에 대해 검찰은 수사 동력을 얻기 위한 피의사실 설명을 서슴지 않았다. 몇몇 언론에 울산지검이 이첩한 사건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올 정도로 관계자들의 혐의가 공개됐다. 검찰 내에서 “대검찰청이 대놓고 수사 동력을 얻으려고 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대검찰청이 계획한 수사 구조를 그대로 인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시점과 맞물려, 대검찰청마저도 수사 진행상황을 거의 오픈해주지 않기 시작했다. 초반 수사 동력을 얻기 위해 일부 흘렸다면 추미애 후보자가 지명되면서, 더더욱 신중해지고 있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차장검사로 언론 대응을 담당했던 검찰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로 첫 번째에 걸리는 검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상당하다”며 “추미애 장관 후보자가 임명되면 2월에 인사를 해서 이번 수사 라인업을 해체한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느냐. 대검찰청도 어느 정도 수사 동력을 확보한 만큼 더 의식하고 조심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관련기사 “검찰 분위기 싸해” 청와대 향한 ‘윤의 검’ 추미애 ‘인사 칼’로 막나).
재경지역의 한 간부급 검사 역시 “이제 언론이 전화하면 정말 잘 알던 기자가 아니면 녹취가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원칙론적으로 ‘말해줄 수 없다’는 얘기만 한다”며 “피의사실 공표가 문제도 분명 있었던 만큼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인사 막아야 한다” 내부 논리 생성 중
“수사팀이 인사 때 다치면 어떻게 하나. 너무 분위기가 안 좋다.” 그 정도로 추미애 장관 후보자 임명은 큰 변수다.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처음 내놓은 반응이 인사 불이익일 정도다. 조국 전 장관 등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팀이 인사 불이익을 받을 것을 모두가 우려한다.
자연스레 검찰 내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 ‘인사 규정’을 찾고 있다. 수사팀을 해체할 수 없는, 명분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때 만들어진 검사 인사 규정이 거꾸로 검사들에게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총 21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규정의 제1조는 ‘검사 인사의 기본 원칙과 절차를 정함으로써 인사 관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적혀 있다.
특히 제12조의 필수보직기간은 가장 자주 거론되는 조항이다.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필수보직기간은 공무원이 다른 직위로 전보되기 전까지 현 직위에서 근무해야 하는 최소 기간을 의미한다. 해당 조항에서 지방검찰청의 차장, 부장검사의 필수보직기간은 1년, 평검사는 2년으로 명시돼 있는데 올해 8월 임명된 주요 수사팀 간부들은 2020년 8월까지는 의무적으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지휘 중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와 반부패수사2부 부장, 그리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와 공공수사2부장검사,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와 형사6부장검사가 2020년 2월 인사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명분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장 이상은 언제든 인사가 가능하다는 점과 직제 변경으로 수사팀을 와해할 수 있다는 변칙적인 방법은 여전히 변수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사장 자리가 빈 곳이 있어서 수사를 지휘 중인 대검 간부들이 원포인트 방식으로 흔들릴 수 있어도 수사팀을 지키면 연속성은 확보할 수 있다”면서도 “아예 직제를 바꿔버리면 필수 보직 기간을 지키지 않아도 될 여지가 있어 청와대 겨냥 수사팀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통한 수사팀 통제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