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한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은 “비례대표나 지역구 선택 등은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면서도 “아버지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10일 민화협 사무실에서 만난 김 상임의장. 사진=최준필 기자
―올해 민화협은 무슨 일을 했나.
“2019년 북측과 여러 사업을 하기로 했었다. 예를 들어 대학생 국토종단대장정을 북한 땅에 들어가 북한 대학생과 함께하기로 했었다. 평양에서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종합적으로 토론하는 심포지엄을 갖기로도 했었다. 그런데 6월 말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심으로 사업을 했다. 북한도 아쉬운 게 미국과의 관계, 한국과의 관계가 답답하고 불만스러운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는 정부가 교류가 안 될 때도 민간 교류는 숨통을 터놓고 훗날을 기약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면적으로 문을 닫고 있어 안타깝고 그런 점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현재는 대북사업 길이 막혀 있지만 곧 다시 교류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
―민간 교류도 완전히 막혀 있는 상황인가.
“민화협이 주도해 시민사회에서 금강산, 개성공단 재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금강산 방문단을 꾸준히 보내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노력을 하겠다고 북한에 전달했다. 하지만 답이 없다. 전면적 재개가 아니라면 방문할 필요조차 없다라는 건 잘못된 태도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차근차근 남북이 협력을 해서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 번에 전부 되돌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북측도 노력을 해줘야 한다.
―(언제쯤)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는지.
“북미 간에 상황이 좋지 않지만 결국은 양측도 판이 완전히 깨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새로운 합의가 나올 수 있고 그때 되면 다시 교류가 시작되리라 생각한다. 그게 내년 3월 혹은 4월쯤이 되리라 본다.”
김홍걸 민화협 의장은 내년 3월쯤 민간 교류가 재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의 금강산 관광 시설을 부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냉정한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다. 그게 우리나라에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은 조건 따지지 않고 통 크게 내놨는데 지금은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확하게 받을 건 다 받겠다는 생각이 크다. 중국 연수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북한 관료들의 이해도 높아졌다. 과거처럼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통일론, 민족끼리를 내세워서 통할 상대가 아니다.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북한에도 통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어떻게 평가하나.
“인내심을 갖고 북한을 상대한 점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2018년과 달리 2019년은 우리의 역할이 달라졌다. 2018년에는 북미 간 만남 조성 역할만 해도 평가 받을 만했지만 이제는 거기에 그쳐선 안 되고 양측의 합의를 유도해낼 수 있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협상할 카드, 중재안을 내지 않고 무조건 상대만을 설득해오라는 미국과 북한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도 뭔가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관광은 유엔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수준에서 재개를 해야 한다’고 나갔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미 관계가 꼬이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고, 잘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구경꾼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DJ는 일본과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했던 대통령이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나.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 정부만큼 주변국 외교를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당시와 상황이 너무 달라 불가항력인 점이 있다. 미국은 동맹 입장을 고려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있고, 일본 정치는 예전과 달리 최소한의 품위도 없어졌다. 과거 일본은 불만이 있더라도 물밑으로 전해 왔고 노골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경우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완전히 다르다. 만약 수출규제 경우도 과거 일본이었다면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겠지만 아베 총리는 측근 몇 사람과만 상의하고 저지른 일 같다.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적극적인 외교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 어쩔 수 없었지만 DJ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썼던 것은 잘못’이라고 한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우리 경제가 무너질 뻔한 아주 급한 위기에서 성과는 냈지만 부작용이 상당했다. 그때 부작용이 아직도 저성장, 청년실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쉽게 하지 못하는 부분도 IMF 체제 부작용이다. 그렇다고 다시 고도성장 시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제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심을 두고 복지에 중점을 둔 경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현재와 같은 저성장 경제 위기를 뚫고 나갈 길이 있다면 북방경제 개척밖에 없다. 단순히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차원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그 길로 가야 한다고 본다.”
―최근 ‘DJ가 정치할 때는 비난도 선을 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무슨 뜻인가.
“좋게 보면 민주화가 됐다고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각 정당 지도부가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 그러니 상대 당 지도부와 만나도 합의 자체가 쉽지 않고 합의에 이른다 하더라도 이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뽑을 때는 절차적 정당성이 있어야 하지만 선출되고 나서는 그 사람들에게 권한과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정치 문제를 자꾸 정치로 풀지 않고 검찰에 고발해 검찰 칼날에 정치인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은 일은 그만해야 한다. 양측이 선을 넘지 않는 신사협정을 통해 정치권 내부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약속을 해야 한다.”
김홍걸 민화협 의장은 내년 총선에서 호남은 민주당이 선택받으리라 봤다. 사진=최준필 기자
―DJ라면 문재인 정부에 어떤 조언을 했을 것 같나.
“만약 살아 계셨다면 외교의 중요성, 특히 주변국 외교 중요성을 강조하셨을 것 같다. 항상 하셨던 말씀이 국내 정치는 실패해도 회복할 기회가 올 수 있지만 외교는 한 번 실패하면 다시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외교는 잘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또 DJ는 국가와 국민의 먼 미래를 바라보는 큰 정치를 하셨다. 문재인 정부 개혁 정책이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을 두고 핵심 지지층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우리 기득권을 일부 내놓더라도 같이 개혁 작업에 동참할 수 있는 세력을 한 사람이라도 만들라는 노력을 하시라고 할 것 같다.”
―2019년은 DJ 서거 10주기였다.
“10주기를 맞아서 지금까지 추모 사업은 고인을 추억하는 과거 지향적이었다. 앞으로는 미래 지향적으로 김대중 철학과 사상을 한 단계 발전시켜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방안을 찾는 게 새로운 추모 사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행사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2년간 민화협을 통해 많은 경험과 준비를 했다. 이를 통해 DJ 햇볕정책을 계승해서 남북 교류나 주변국 관계 개선 노력도 하고 싶다.”
―2020년 총선 출마를 한다고 들었다.
“당연히 당원의 입장으로는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다음 국회에서는 못 다한 개혁 작업을 완수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 당의 선택에 맡길 뿐이다. 다만 DJ 정치 철학이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제2, 제3의 김대중이 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2016년 호남의 선택은 국민의당이었다. 2020년은 어떻게 전망하나.
“2016년에는 민주당이 과연 집권할 준비가 돼 있는지 대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그 이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모두가 알다시피 안철수 전 의원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당시 민주당에서 청산 대상이었던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옷만 갈아입고 마치 참신한 인물인 것처럼 유권자를 속였지만 이제는 유권자들이 다 알게 됐다. 국민의당도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눠져 있고 2016년 외쳤던 구호도 유효하지 않다. 민주당이 당 지지도만 믿고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큰 변화가 있으리라 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