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 유승민 인재영입위원장 등이 12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비전회의에서 신당명 ‘새로운보수당’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크리스마스 전에는 안철수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계 한 핵심 측근의 말이다. 유승민 의원을 주축으로 한 신당 창당이 속도를 내면서 안 전 의원도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최근 안철수계 권은희 의원은 안 전 의원을 직접 만나기 위해 미국행을 타진했으나, 안 전 의원 측이 “곧 메시지를 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메시지를 낸다면 주목할 점은 ‘안철수계 의원들을 향한 방향 제시’와 ‘본인의 거취’,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안철수계는 유승민계와 함께 바른미래당 당권파에 대항하고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혁신을위한비상행동’(변혁)을 형성해 활동해왔다. 안 전 의원 의중은 ‘손학규 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전해졌기에 여기까지는 순탄했다. 하지만 이후 변혁에서 신당 창당이 가시화되자 안철수계는 유승민계와의 동행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탈당과 신당 창당에 대해 안 전 의원의 어떤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철수계 의원은 7명 중 6명이 비례대표다. 8명 전원이 지역구 의원인 유승민계와 차이가 있다. 비례대표는 당에서 제명을 당해야만 탈당해도 의원직을 지킬 수 있다. 제명 요건은 의원총회에서 3분의 2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당장 탈당을 감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신당 추진 과정에서 유승민계와 안철수계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유승민계가 신당 창당 발기인 대회를 12월 8일로 못 박자, 안철수계 측은 “아직 안 전 의원에게 확답을 못 받았다”고 머뭇거렸다. 이에 유승민계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지적하며 설전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창당 발기인에 안철수계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행사에도 불참했다. 권은희 의원만 공동신당기획단장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발기인 대회에서도 창당준비위원장인 유승민계 하태경 의원이 “안 전 대표가 12월 중에는 합류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하자 이후 안철수의 ‘입’으로 불리는 최측근 김도식 전 비서실장이 “사실과 다르다. 변혁 신당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적도 없고, 그럴 여건도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만약 안 전 의원이 안철수계 의원들을 향해 “신당에 합류하라”는 메시지를 던질 경우, 이 같은 갈등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향후 유력한 시나리오는 창당 후 유승민계가 선도적으로 탈당하고, 안철수계가 후발 탈당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후발대 탈당 시기는 내년 1월 30일 이후로 점쳐진다. 국회의원 임기만료 전 120일 이내에 비례대표가 탈당하면 당에서 승계가 불가능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즉 손 대표 등 당권파 측에 승계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총선을 치르겠다는 계산이다.
안철수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반면 ‘신당 합류 불가’를 선언할 경우 유승민계-안철수계 ‘이별’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안철수계는 바른미래당에 잔류하며 당권파와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당권파 측에서도 호남계의 경우 유승민계가 탈당하면 손 대표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당을 탈바꿈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 대표 역시 11월 13일 “당내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제3지대를 열겠다”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사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손 대표가 물러날 경우 안 전 의원이 복귀할 공간이 생기는 등 ‘안철수 역할론’이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당 합류에 대한 결정은 ‘보수통합’ 여부와도 맞물린다. 유승민계는 12월 13일 신당 당명을 ‘새로운보수당’으로 확정하며, 비전으로 유승민 의원의 ‘보수재건 3원칙’을 포함시켰다. 보수재건 3원칙은 유 의원이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해 내세운 전제 조건으로 △탄핵의 강을 건너기 △개혁보수로 전환 △기존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짓기 등을 뜻한다. 즉 향후 한국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합리적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계는 당명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안철수계 한 의원은 “우리와 충분한 상의도 없이 덜컥 당명에 보수를 못 박아 버렸다”며 “안 전 의원이 합류할 여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라고 지적했다. 변혁은 당명을 대국민 공모로 진행했으나 막판 후보군을 놓고 ‘보수’를 넣어야 한다는 유승민계 한 의원의 강력한 주장이 관철된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미래당에서 겪은 노선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유승민계는 당명 중 ‘새로운’에 안 전 의원이 강조한 ‘새정치’ 의미가 담겼고, 당 비전에도 중도가 포함됐다며 안철수계를 향해 이해를 구하는 모습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도 안 전 의원이 신당에 합류한다면 보수통합에 상당한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의 당명과 정체성을 용인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류가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자리한다. 일단 안 전 의원 부인 김미경 교수나 호남계 지지층은 보수통합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안 전 의원의 정치적 판단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도 안 전 의원의 정책조직인 ‘마포팀’ 등과 소통을 한다는 전언도 흐른다. 김 교수의 경우 호남(전남 여수) 출신이기도 하다.
복귀 시점을 내년 총선 전으로 잡을 것인지, 후로 잡을 것인지도 관심이다. 총선 전에 복귀한다면 2016년 20대 총선을 3개월 앞두고 국민의당을 창당해 일으켰던 ‘돌풍’의 재현을 시도할 수도 있다. 총선을 ‘패싱’할 경우 대선을 앞두고 복귀 효과를 극대화하는 다른 포석을 연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도 복귀 여부에 관건이 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지형이 변하면 복귀 전략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다당제가 유리한 구도에선 신당을 이끌어 몸집을 키우는 방식으로 승부를 볼 것으로 관측된다.
안철수계 내에서도 안 전 의원 복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태다. 한 측근은 “총선 전엔 반드시 복귀하리라 본다. 그래야만 대선을 치를 동력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측근은 “이미 개혁보수 깃발을 세운 유승민계 주축 신당에 합류하기가 애매하고, 바른미래당에서도 손 대표가 쉽게 물러날 리도 만무하다. 차라리 복귀 시점을 늦춰 베일 속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 낫다”며 다른 의견을 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