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포지션 수상자를 포함해 사랑의골든글러브와 페어플레이상까지 골든글러브 수상자 12명의 면면이 가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골든글러브 투표 유효표는 총 347표였다. 정규시즌 MVP와 최우수 신인선수를 뽑을 때보다 투표인단이 4배 가까이 많다. 올 시즌 KBO 리그를 담당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야구 중계 담당 PD,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미디어 관계자들이 각자 한 표씩 행사했다. 후보 수는 많았지만 이변이나 깜짝 수상은 없었다. 예견했던 선수들이 넉넉한 표 차로 황금장갑을 가져갔다. “내가 투표한 그대로 수상자가 나왔다”는 관계자들이 올해 유독 많았다.
#“메이저리그로 갑니다” 린드블럼의 5년 작별인사
린드블럼은 지난해에도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였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골든글러브를 2년 연속 수상한 선수는 1루수 부문 에릭 테임즈(전 NC·2015∼2016년)에 이어 린드블럼이 두 번째다. 린드블럼은 올해 다승(20승) 승률(0.870) 탈삼진(189개) 1위를 차지하고 정규시즌 MVP까지 휩쓴 뒤 골든글러브를 받고 KBO 리그 마지막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린드블럼은 이제 밀워키와 입단 계약을 하고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한다. 두산과는 아름답게 이별을 했다.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직접 날아와 시상식에 참석하는 성의를 보인 린드블럼은 “내가 프로 생활을 12년 동안 했는데 5시즌을 한국에서 보냈다.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며 “한국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국 사람’이다. 두산과 롯데뿐 아니라 모든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또 “나는 한국에서 뛰면서 더 강한 투수가 됐다. 그동안 나를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며 “언젠가 한국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외야수부문 수상자 이정후는 수상 소감과 함께 감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 김성훈을 추모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키움은 4명의 주전 선수가 황금장갑을 받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한 아쉬움을 달랬다. 박병호는 올 시즌 개인 통산 5번째 홈런왕(33개)에 등극하면서 5번째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끼었고, 타점왕(113개)에 오른 샌즈도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가져갔다. 무엇보다 국가대표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젊은 유격수 김하성과 외야수 이정후는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받아 한국 야구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음을 입증했다. 김하성은 무려 94%에 해당하는 325표를 받아 올해 최다 득표자가 됐고, 최다안타 2위에 오른 이정후는 격전지로 꼽힌 외야수 부문에서 가장 많은 315표를 획득했다. 둘 다 지난해 군사훈련으로 데뷔 첫 골든글러브를 직접 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맛봤지만 올해는 차례로 단상에 올라 감격을 누렸다.
특히 김하성은 시상식이 끝난 뒤 “내년 시즌이 끝나면 해외 진출 자격(7년)을 얻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 구단과 이미 합의도 마쳤다”는 결심을 전격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내가 잘해야 해외 진출을 추진할 수 있다”며 “올해와 비슷한 성적을 내선 힘들다는 게 전제조건이다. 장타력을 보강해 더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이정후는 공식 수상소감에서 지난 11월 세상을 떠난 친구 고 김성훈을 추모했다. 김민호 KIA 코치의 아들이기도 한 한화 투수 김성훈은 불의의 사고로 21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야구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관련기사 “하늘에서 꿈 펼치길…” 고 김성훈, 김민호 코치 애끓는 부자 이야기). 이종범 LG 코치의 아들이라 야구인 2세의 마음을 서로 헤아리며 김성훈과 우정을 나눴던 이정후는 “이 영광을 내 친구 성훈이와 함께 나누겠다”고 했다. 이정후의 소감이 끝난 뒤 시상식장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양의지에게 ‘5번째 수상’이 의미 있던 이유
35년 만의 포수 타격왕에 오른 NC 양의지는 통산 5번째 골든글러브를 받아 강민호(삼성)와 함께 현역 포수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총 316표를 얻어 김하성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최다 득표 수상자여서 2년 연속 달성을 노렸지만, 두산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 포수 박세혁이 18표를 가져가면서 1위를 김하성에게 넘겨줬다.
양의지는 “상을 받기 전에 ‘올해도 받으면 민호 형과 현역 공동 1위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정말 자랑스럽고 내게는 정말 특별한 5번째 수상”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유가 있다. “프로 입단 초기에 나는 강민호 선배를 보고 자랐다. 대표팀에서 함께 뛰면서 실제로 민호 형에게 많이 배우기도 했다”며 “그런 선배와 최다 수상 공동 1위가 된 게 무척 기쁘다”고 설명했다.
또 앞선 4번의 골든글러브를 두산 소속으로 가져갔는데, 5번째는 처음으로 NC 유니폼을 입고 받았다는 점도 그에게는 특별하다. 양의지는 “이전까지 4차례 수상도 영광이지만, 5번째 수상도 내게는 감회가 남다르다”며 “새 팀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신 감독님과 코치님들, 선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또 “박세혁이 표를 받아서 최다 득표 경쟁에서 밀렸으니 내게는 기분 좋은 일”이라며 “내년엔 박세혁이 더 많은 표를 받을 것”이라고 덕담도 잊지 않았다.
다만 정작 마지막 순서로 발표된 양의지의 수상 소감이 지상파 TV 중계에는 방송되지 않아 빈축을 샀다. 방송사가 앞서 나온 연예인 시상자들의 ‘만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정규방송 시간이 모자랐고, 마지막 수상자 발표와 동시에 중계를 중단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TV로 직접 중계를 지켜보던 야구팬들은 양의지가 황금장갑을 받아 드는 장면조차 보지 못한 채 올해 골든글러브 시상식 시청을 마쳐야 했다.
#최정은 한대화의 기록을 깰 수 있을까
SK 최정은 통산 6번째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호명됐다. 최정은 김한수 전 삼성 감독과 역대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2위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부문 최다 수상 1위는 무려 8번이나 황금장갑을 낀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이다. 최정은 현재 이 기록 경신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후보다. NC 박민우는 2루수 부문에서 305표를 쓸어 가면서 2위인 한화 정은원(13표)을 크게 따돌리고 데뷔 7년 만에 첫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타격 3위(타율 0.344)에 오르고, 최다안타 7위(161개)를 달린 덕분이다.
KT 로하스와 두산 페르난데스 역시 첫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로하스는 지난해 좋은 성적을 내고도 국내 선수들의 인기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어 올해 수상이 더 뜻 깊다. 다만 둘은 시즌 종료 후 고국으로 떠난 관계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또 성실한 팬 서비스와 다양한 기부 활동을 펼친 SK 잠수함 투수 박종훈이 사랑의 골든글러브상을 가져갔고, 야구팬과 상대 선수를 존중하고 모범적인 경기 태도를 보인 LG 외야수 채은성은 페어플레이상을 안았다.
지난 9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19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두산 베어스 배영수가 골든포토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역 마지막 공으로 마지막 상을 받은 배영수
이 외에도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배영수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직접 확정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들며 기쁨을 표현하는 장면으로 한국스포츠사진기자회가 뽑은 골든포토상을 받았다. 현역 마지막 공을 던진 직후 모습으로 현역 마지막 상을 품에 안은 셈이다. 비록 본상은 아니었지만, 이 상을 받은 배영수의 감회가 남달랐던 이유다. 그는 “선수로 받는 마지막 상이다. 상을 주신 관계자들께 감사하다”며 “마지막으로 던질 기회를 주신 김태형 감독님께 감사하다. 야구선수 배영수를 위해 희생해준 아내도 고맙다”고 했다.
배영수는 2000년 삼성에 입단해 프로 무대를 밟은 뒤 20시즌 동안 뛰면서 총 499경기에서 138승 122패 3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4.46을 올렸다. 2004년에는 정규시즌 MVP에 오르면서 그 해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고, 내년부터 두산에서 코치로 새 출발을 한다. 투수 부문 후보는 아니었던 배영수가 시상식에서 누구보다 많이 주목받은 이유다.
배영수는 올해 한국시리즈 4차전 연장 10회말 1사 후 마운드에 올라 우승을 확정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올해 프로야구의 마지막 공이자 배영수의 현역 마지막 공. 그는 이 기회를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는 정말 행복한 야구선수였다”며 ‘올해의 골든포토’와 같은 행복한 표정으로 마지막 시상식을 마무리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