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는 진작 조 회장의 연임을 점쳐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 회장 취임 후 신한금융의 실적이 상승한 건 사실”이라며 “최근 국내 금융업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회장을 교체하는 것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한금융지주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로 추천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용병 회장 취임 전인 2016년 신한금융의 영업이익은 3조 1086억 원이었지만 취임 후인 2017년 영업이익은 3조 8287억 원, 2018년에는 4조 4994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 1~3분기에도 4조 1375억 원을 거둬 이 추세라면 2018년보다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회장 후보에 오른 5명의 면면을 봐도 조용병 회장의 연임이 확실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5명의 후보는 조 회장과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민정기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이다. 현 회장이 후보에 오른 이상 전현직 사장인 나머지 4명은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변수는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조용병 회장은 현재 채용비리와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으며 2020년 1월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일 금융감독원은 “신한금융 사외이사들에게 지배구조와 관련된 법적 리스크가 그룹의 경영안정성 및 신인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5일 윤석헌 금감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사·자산운용사 CEO(최고경영자) 간담회’에 참석한 후 “법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며 “신한금융 이사회나 주주의 의사결정권과 권한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의 언질에도 조용병 회장은 연임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조 회장은 13일 오전 회추위 면접을 앞두고 “3년간 회장직을 맡으면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원점에서 준비해 회추위 위원들에게 잘 설명하겠다”며 “(법적 리스크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겠다”고 전했다. 이만우 신한금융 회추위원장도 “(법적 리스크에 대해) 회추위가 소집됐을 때부터 충분히 고려했다”며 “지난해 이사회를 통해 비상계획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도 살펴봤다”고 전했다.
회추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조용병 회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향후 금융당국과 마찰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2017년 말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CEO와 가까운 사람들로 CEO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 연임에 유리하게 했다는 논란이 있었다”며 당시 연임을 노리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한 바 있다. 하지만 KB금융과 하나금융 이사회 역시 윤 회장과 김 회장의 연임을 강행했다.
신한금융 회추위는 13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을 차기 신한금융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에 있는 신한금융 본사. 사진=연합뉴스
비슷한 시기 금감원은 11개 시중은행을 상대로 금융권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특별 현장 검사에 착수했고, 2018년 2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채용 비리에 연루돼 2018년 3월 불명예 퇴진했다. 최 전 원장의 채용 비리 정보를 하나금융이 퍼뜨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동안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최 전 원장 사임 직후 금감원은 하나금융과 하나은행에 특별검사단 20명을 투입해 검사 대상과 기간 제한이 없는 고강도 감사에 들어갔다. 당시 최종구 전 위원장은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최흥식 전 원장에 대한) 제보가 하나은행 내부가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다만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난 2월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당시 하나은행장)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 행장 3연임을 노리던 함 부회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5분 만에 금융사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는 조직”이라며 “금융사 입장에서 금감원의 입장을 거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윤종규 회장과 김정태 회장이 채용 비리와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금감원이 연임을 막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여론이 흘러나와 여론을 의식한 금융당국이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용병 회장의 법적 리스크 이슈가 불거지자 한때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이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위성호 행장은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라 전 회장은 2010년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과 경영권을 놓고 고소·고발전을 펼친 일명 ‘신한사태’의 장본인이다. 라 전 회장과 신 전 사장은 결국 회사를 떠났지만 이후 신한금융 내에서는 라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조용병 회장 취임 후 라 전 회장 측근들은 대부분 퇴임했다. 위 전 행장도 2018년 말 신한금융 인사에서 교체가 결정돼 물러났다. 당시 위 전 행장은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스럽고, 왜 임기 중간에 인사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나한테 전화를 한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는 인사라고 한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회장은 “최근 경기 전망이 어려워 세대교체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라 전 회장 측 인물로 알려진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도 동반 퇴진해 뒷말이 무성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