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1일 서울교통공사 출범식 모습.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1월 13일 ‘○○○ 전기집진기 기술보유 업체 모집’ 공모를 냈다. 전기집진기는 공기정화장치가 없는 지하 터널의 공기를 정화해 주는 기술이다. 지하철이 운행되며 발생하는 풍향과 풍속에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상당수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지하로 유입되는 공기를 정화해 터널에 공급해주는 등 공기 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지하철 미세먼지 관리계획 전체 사업비는 총 7500억 원이었으며 이 가운데 터널 내 전기집진기 설치에 관한 사업비는 918억 원이었다.
11월 22일 마감된 이 공모에는 A사와 B사 등 업체 두 곳이 참여했다. 7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11월 26일 서울교통공사 인재개발원 5층 기술회의실에서 A사, B사 순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예정된 날짜에도 심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애초 서울교통공사 기계처는 11월 27일까지 심사위원회 개최 결과를 발표한다고 했다. 결과는 11월 29일이 돼서야 나왔다. B사의 승리였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심사 기간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차 A사는 심사위원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한 심사위원에 따르면 이날 심사가 끝난 뒤 서울교통공사 기계처 담당자는 심사위원을 다시 심사장소로 불러들였다. 그런 뒤 정량평가가 포함된 재심사를 벌였다. 심사위원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 기계처 담당자는 다시 모인 평가위원에게 “채점이 잘못됐다”며 “2위 업체에는 ‘신기술 인증’이 있어 가산점을 줘야 한다”고 했다. 재평가 뒤 B사는 1위가 됐다.
A사는 서울교통공사 기계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11월 26일 전자우편으로 이유를 물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심의위원 평가는 정상적이었으나 합산오류가 발견됐다. 감사실 의견을 반영해 심사위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정하려고 재소집했다. 정량평가는 안 하기로 했었지만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포함했다. 내규에 따라 건설 신기술에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식의 답변을 보냈다.
서울교통공사는 A사와의 사전 상담 때 “정량평가는 진행하지 않고 정성평가인 기술 50점과 가격 50점으로만 평가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전 상담 때 말과 달리 정량평가로 가산점이 주어진 셈이었다. 당시 A사는 평가배점표를 요청했는데 서울교통공사 기계처는 제공하겠다고 한 말을 나중에 거둬들이며 평가배점표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량평가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게 A사 주장이었다.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르면 건설신기술은 가산점 2점이 부여된다. 다만 2인 이상 출원 시 점수는 출원자 수로 나눠서 인정한다. 재평가 과정에서 B사는 신기술로 가산점 2점을 받았다. 이 신기술은 B사와 다른 회사 2곳이 공동개발한 기술이라 1점만 인정돼야 한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는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설립된 지방공사라 서울시 특정기술 선정심사위원회 운영요령 및 가이드라인에 따라 2점을 인정했다. 여기에는 신기술 가산점을 출원자의 수로 나눠서 인정한다는 세부 항목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국토교통부 고시보다 세부 평가방법이 없는 서울시의 가이드라인을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렇게 공모를 두고 의혹이 불거지면서 최초 공모 공개 시점부터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기계처는 공모가 나오기 앞선 10월 21일 ‘○○○ 전기집진기 시범설치 수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울시 예산 편성이 당초 ‘○○○ 전기집진기’ 설치 사업으로 돼 있기에 A사는 공모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품명에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품만 참여 가능하다”고 일렀다.
‘○○○’은 사전에 나오는 형태소일 뿐 특정한 기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이란 단어를 고유명사로 인식했다.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제품이더라도 제품명에 ‘○○○’이란 형태소가 안 들어가면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재미난 건 이 공모에 1위를 한 B사의 특허 개발명이 ‘○○○ 전기집진기’였다는 점이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지하철 터널 내 환기시설에 대한 집진효율 개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터널 내 미세먼지 전기집진기’란 문구를 5월 ‘○○○ 전기집진기’로 바꿨다. 이 사업은 환경부 예산이 포함된 것으로 8월 27일 발표된 환경부의 ‘국고보조금 교부결정 통지서’를 살펴보면 ‘○○○’은 고유명사로 보기 힘들다.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둔 핀셋 공모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핀셋 공모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A사의 기술도 결국 인정해 이번 공모에 참여시켰다”고 해명했다. 또한 사전 상담에선 정량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한 뒤 진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B사 배후의 막강한 인맥이 B사 사업을 돕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 B사 지분 가운데 15.8%는 사모펀드 NV글로벌코리아메자닌이 보유하고 있다. NV글로벌코리아메자닌은 사모펀드 운용사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가 만든 블라인드 펀드다.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는 최근 여권 핵심 인사의 아들을 인턴으로 채용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B사 관계자는 “심사결과가 예정보다 이틀 더 소요된 이유는 심사위원이 신기술 가점에 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라며 “상대 쪽에서는 국토교통부 고시가 적용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교통공사의 특정 기술 선정 절차에 적용되는 규범은 서울시 조례 및 가이드라인다. 국토교통부 고시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국토교통부 고시 기준은 ‘건설기술용역업자 사업수행능력 세부평가기준’인데 이건 ‘입찰’로 건설기술용역을 발주할 때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 공모는 입찰에 앞선 ‘특정기술 공급업체 선정 공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최초 심사결과에서도 신기술 가산점 2점이 반영돼 있었다. 다만 심사위원들의 개별 점수들을 합산해서 인원수로 나눈 평균 점수에 가산점을 부여했어야 했는데 합산된 점수에 가산점을 더한 후에 인원수로 나누어 평균을 내는 계산 실수가 있었기에 바로잡은 것”이라며 “2019년 6월부터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던 특정기술 선정을 위한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신기술 가산점 2점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누구나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