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12월 11일 오전, 수원지방검찰청이 ‘깜짝 공지’를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화성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검토하고 있던 사건은 단 한 건이다. 범인으로 검거돼 20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윤 아무개 씨가 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청구한 화성 8차 사건이다.
검찰은 이날 화성 8차 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일반 형사사건 재심과 관련해 브리핑을 연 것도 이례적인데, 그동안 거의 하지 않았던 재심사건 전반에 대한 조사까지 직접 하겠다는 얘기였다. 검찰은 형사6부(전준철 부장검사)를 중심으로 조사 전담팀도 꾸렸다. 수원지검 형사 6부는 올해 10월까지 검찰의 대표적 인지수사 부서인 특수부였다.
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 검사가 12월 11일 수원지검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사건은 경찰이 올해 9월부터 현재까지 수사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수사 과정에서 길목마다 검경이 충돌하고 있었던 만큼, 브리핑 전후로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옮겨 붙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검찰은 수사권 갈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직접 조사에 착수한 ‘공식적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윤 씨 변호인단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통해 진실 규명을 해달라”는 내용을 담아 의견서를 제출했고, 별도로 과거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국과수 감정과 관련해 직접 조사가 필요할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의 조사 내용과 과정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검경 갈등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먼저 윤 씨 변호인단이 공개한 수사촉구 의견서에는 검찰에 면밀한 진상 규명을 요청했지만 ‘공식적으로’ ‘전담 수사팀’을 만들어 ‘직접 조사’를 해달라는 취지는 담기지 않았다. 윤 씨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 역시 “검찰 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다른 재심 사건과 달리 직접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검찰이 발표한 수준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접 조사 이유인 과거 국과수 감정서 오류는 화살이 경찰로 향한다. 검찰은 윤 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체모 감정서가 조작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화성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가 동일인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감정 결과였는데, 이 내용이 허위로 작성됐다는 취지다.
당시 체모와 관련해 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능 동위원소 분석을 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국과수가 감정서를 썼다. 검찰은 이 점을 토대로 원자력연구원에 남아 있는 감정 자료를 확보해 과거 수사 기록과 비교했는데, 국과수 감정서에 적힌 비교 대상 시료와 수치가 모두 달랐던 점을 확인했다. 국과수와 경찰이 조작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검찰은 이 내용을 직접 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이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서 3개월 동안 수사를 해온 경찰은 화성 8차 사건과 관련해 중간발표까지 했지만 국과수 감정서와 관련한 내용은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기록 검토만으로도 발견이 가능했던 문제였던 만큼 경찰이 모르고 있었다면 당시는 물론 현재도 ‘부실 수사’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알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축소, 은폐 등의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일요신문 취재 결과, 검찰은 국과수와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들을 상대로 최근 경찰의 수사 과정과 수사관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사진=연합뉴스
고문과 가혹행위,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의심을 받는 과거 수사 경찰관들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는 점도 경찰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당시 경찰관들은 지난 12월 6일부터 이틀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여기서 “당시 (윤 씨) 머리를 몇 차례 때렸다” “잠을 재우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역시 그동안 과거 수사 경찰들과 접촉해 사실 관계를 확인했지만 유의미한 대답은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현재 여러 경로로 불만과 당혹스러움을 나타내고 있지만 공개적인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경찰 일각에선 ‘중복 수사’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검찰은 경찰 쪽으로부터 과거 사건 기록 외에 최근 수사 자료를 받지 못했고 윤 씨 역시 지난 12월 9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경찰 조사 때와는 다소 다른 질문들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시 수사 검사를 입건하기로 결정하면서 ‘반격’을 준비하는 모양새지만(관련기사 [단독] 경찰의 반격 “화성 8차사건 담당 검사 입건하겠다”), 검찰 역시 과거 검경 수사 라인 입건은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번 갈등의 핵심인 ‘화성 8차 사건 재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국과수 감정서 오류 발표와 수사 경찰의 가혹행위 사실과 관련한 진술을 받아내는 일에서 검찰이 한 발 앞서 있다.
검경 갈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대해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재심 절차를 보면, 법원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검토하기 전에 검찰의 의견서를 받는다. 검찰은 화성 사건이 국내 대표적인 미제사건이고, 이 가운데에서 8차 사건 재심이 중심이 된 상황인 만큼 의견서를 미루지 않고 올해 안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심 사유를 검토해 의견서를 내려면 사건 전반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데, 경찰이 자료를 모두 넘기지 않아 직접 조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료를 검찰에 넘길 수는 없었다”는 경찰의 해명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금까지는 화성 8차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화살이 경찰로 향해 왔지만, 검찰 역시 당시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윤 씨를 재판에 넘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과거 수사검사는 직접 현장검증을 지휘하는 등 수사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윤 씨 변호인단 역시 앞서의 수사촉구 의견서에서 당시 경찰 수사는 물론 수사 검사와 관련한 의혹도 명백히 밝혀달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국과수 오류 문제의 후폭풍도 직접 발표한 검찰이 감당해야 한다. 국과수 감정서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법원이 유무죄를 가리는 과정에서 참고하는 핵심 증거 가운데 하나다. 사법 시스템 근간을 뒤흔드는 발표가 될 수 있는 만큼 검찰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내야 할 책임이 있다.
윤 씨 측은 이번 화성 8차 사건 재심을 둘러싼 검경 갈등에 다소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윤 씨는 “현재 경찰은 여전히 믿는다. 진상 규명을 해주는 검찰도 고맙다”고 말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양쪽의 근본적인 목적은 재심을 돕는 것이다. 실제 진실이 보다 명백히 밝혀지기도 했다”며 “화성 8차 사건 재심은 검경과 재심청구인, 언론이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협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