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시선은 선발투수들 중 류현진, 매디슨 범가너, 댈러스 카이클 등에게 향하고 있다. 최근 MLB.com은 FA 톱3(LA 에인절스와 7년 2억 45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앤서니 랜던 포함)의 계약이 성사된 이후 계약 가능성이 높은 FA들로 조시 도날드슨(3루수), 매디슨 범가너, 그리고 류현진을 꼽았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미네소타 트윈스, LA 다저스, LA 에인절스, 텍사스 레인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이 류현진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미국 진출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류현진은 국내에서 각종 행사에 참가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현재 ‘류현진 타임’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은 실제 어느 정도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갖고 류현진의 FA 협상을 살펴봤다.
12월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관하는 ‘스포츠 인권 선서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류현진은 홍보대사 위촉을 받아 자리에 참석했다. 자연스레 많은 이들로부터 거취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류현진은 이번에도 “정말 아는 게 없다. 나도 계약을 빨리 마치길 바란다”는 내용의 반복된 대답만 내놓았다.
류현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윈터 미팅이 열리는 동안 FA 톱3로 꼽힌 선수들의 대형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보라스가 이번 FA 시장에서 터뜨린 대형 계약은 총 4건. 마이크 무스타카스의 계약 기간 4년, 6400만 달러를 시작으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게릿 콜, 앤서니 랜던 등 2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3건이나 달성했다.
보라스는 윈터 미팅을 찾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류현진 정도의 선수는 관심을 갖는 구단들이 알아서 연락해 온다”고 말할 정도로 류현진의 계약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13일 연락이 닿은 보라스코퍼레이션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알려진 대로 여러 팀이 류현진에게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하면서 “선수의 의견과 제시받은 조건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본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게릿 콜 등이 윈터 미팅 기간에 FA 계약을 발표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사전에 많은 논의를 거친 덕분이다. 즉 그들의 FA 협상을 윈터 미팅 기간에 시작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류현진은 이제 협상에 들어갔다. 구단의 제안을 받는다고 해서 바로 계약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시간을 갖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류현진의 행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에이전트, 현지 기자 등 전문가들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사진=연합뉴스
취재한 바에 의하면 류현진에게 단순히 관심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영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팀은 서부와 중부 지역의 두 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라스코퍼레이션 관계자는 구체적인 구단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영입 후보군에 꼽히는 팀들을 상대로 예상한다면 LA 다저스, LA 에인절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LA 에인절스는 게릿 콜을 놓고 뉴욕 양키스와 머니게임에서 패하며 ‘에이스’ 수급에 실패했다. 아트 모레노 구단주는 야수 최대어인 앤서니 랜던을 7년 2억 4500만 달러에 계약할 정도로 대대적인 투자를 천명했지만 게릿 콜이라는 중요한 퍼즐 조각을 놓쳐 다른 FA 선수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4년 이후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에인절스는 2020시즌 ‘가을야구’ 도전을 위해 전력 보강에 나서고 있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에인절스행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그동안 에인절스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연고지인 LA는 류현진한테도 익숙한 환경이고, 에인절스에서는 류현진이 1선발로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계약 기간이다. 류현진 측에서는 4년 이상의 계약을 원할 것이 분명한데 에인절스가 그 조건을 충족시켜줄지 모르겠다. 선발 투수를 영입하려는 팀들이 많은 만큼 류현진의 몸값은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스캇 보라스가 협상의 대가라 더욱 기대감을 높이는 것 같다.”
현지 언론도 류현진의 에인절스 입단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ESPN은 지난 10일, 에인절스가 류현진과 댈러스 카이클을 영입하고 포수 마틴 말도나도와 계약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쉬운 전력 강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류현진과 댈러스 카이클을 영입할 경우 신인 지명권을 손해보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재미있는 건 류현진과 카이클의 관계다. 류현진은 어깨(2015년)와 팔꿈치(2016년) 수술 이후에 직구의 힘과 스피드가 떨어졌을 때 2017년 왼손 투수 댈러스 카이클의 컷패스트볼(커터) 영상을 보고 자신의 특급 무기로 장착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선수가 한 팀에서 뛴다면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고, 류현진이 에인절스에 입단한다면 같은 지구에 있는 추신수와 맞대결이 가능해진다.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는 초특급 FA 선수들한테 ‘물을 먹었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입장이다. 다저스는 게릿 콜, 레인저스는 앤서니 랜던 영입에 참전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섰다. 해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하는 다저스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선발 투수 한 명을 더 보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현재 매디슨 범가너와 류현진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라고 알려진 가운데 다저스는 지난 12일 우완 투수 블레이크 트라이넨과 1년 1000만 달러(약 119억 원)에 계약한 사실이 알려졌다. 올 시즌 FA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다저스를 향한 팬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LA 다저스 전문 매체 ‘다저스네이션’은 SNS를 통해 ‘최고의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에 대한 설문을 진행 중이다. 다저스네이션 운영자인 클린트 파실라스는 ‘정치적인 면을 생각하지 말고 팔과 숫자들만 보라. 어떤 부분이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에 도움이 될 것 같나’라고 글을 올렸는데 류현진과 매디슨 범가너를 놓고 13일 현재 투표한 1667명 중 65%가 류현진과 재계약을 꼽았다.
앤서니 랜던 영입전에서 패한 텍사스 레인저스 존 대니얼스 단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댈러스모닝뉴스’에 따르면 레인저스가 랜던 측에 보장 기간 6년에 옵션 1년을 추가한 계약을 제시했지만 랜던은 이를 거절하고 7년을 보장한 LA 에인절스를 택했다는 것. 랜던 영입에 실패한 레인저스로서는 다시 류현진 영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랜던 영입전이 벌어지기 전인 지난 7일, 레인저스가 조던 라일스와 2년 16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류현진에 대한 관심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취재 결과 레인저스는 여전히 류현진 영입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메이저리그를 취재하고 있는 현지 기자 중 한 명은 일요신문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왔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류현진 영입에 발을 뺐다는 보도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레인저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여전히 레인저스가 류현진 영입을 위해 에이전트와 접촉하고 있다고 하더라. 레인저스가 어떤 선택을 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앞의 보라스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뉴욕 양키스가 게릿 콜과 계약한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어느 팀이 더 열정적으로 협상에 뛰어드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선수를 원하는 팀이라면 ‘우리가 얼마 줄 테니 오고 싶으면 올래?’라고 말하지 않는다. ‘뭘 원해? 얼마면 돼?’ 식으로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그래야 계약서 사인으로 이뤄진다. 류현진의 FA 계약은 물이 끓고 있는 중이다. 지금 상태로는 좀 더 끓어오르길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