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금품 수수 의혹에 휘말리며 고향 선배인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처지가 난감해졌다. 사진=박은숙 기자
유재수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에 등장한 것은 2017년 7월, 최종구 전 위원장이 취임 후 단행한 첫 국장급 인사에서다. 유 전 부시장은 당시 금융정책국장으로 발탁됐는데, 이는 금융위 업무를 총괄하는 요직이며 상임위원 사무처장 부위원장 등 1급 승진을 위한 관문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행정고시 선배들이 유 전 부시장의 후임으로 배정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유 전 부시장은 행시 35회 출신이다. 때문에 유 전 부시장과 최 전 위원장의 관계가 보통 돈독한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유재수 전 부시장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최종구 전 위원장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에 재직하던 당시 그가 자산운용사에서 대가성 금품을 받았다는 비위 사실이 드러났고,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이 2017년 10월 유 전 부시장을 불러 조사한 것이다. 그러나 유 전 부시장은 감찰 도중인 11월 3일부터 휴가를 내고 70여 일 동안 돌연 잠적했다.
통상적으로 감찰 기관은 감찰 대상이 잠적하면 대상자의 파면이나 수사를 의뢰하지만, 유 전 부시장은 보직해임만 됐고 금융위에 사표를 냈다. 사표는 수리됐고 명예퇴직금까지 받고 퇴직했다. 특감반도 감찰을 더 진행하지 않았고, 금융위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최종구 전 위원장이 내부 감사와 징계가 아닌 사표 수리로 사태를 마무리한 것을 두고 그의 비위를 알고도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최 전 위원장은 유 전 부시장의 비위 의혹과 관련해 검찰조사까지 받게 됐다. 검찰은 지난 12월 5일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 중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최 전 위원장은 조사 직후 출국해 현재 미주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은 한때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 물망에도 올랐는데 고향 후배(유 전 부시장)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며 “심지어 21대 총선 출마까지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검찰 수사까지 받으면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구 전 위원장은 고향인 강원 강릉이나 거주지인 서울 송파구에서 출마설이 돌았지만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은 상태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부당한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명예회복과 방어권을 위해 총선 출마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지난 11월 22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서울동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재수 전 부시장과 홍남기 부총리의 인연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부시장은 홍 부총리와 같은 고향인 강원 춘천 출신에다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다. 유 전 부시장이 춘천고 55회, 홍 부총리가 51회 졸업생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1월 11일 “내년 총선 출마계획이 없다”며 출마설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총선 차출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홍 부총리가 여권으로부터 그의 고향인 강원 춘천지역 출마를 요청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춘천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홍 부총리와 춘천을 지역구로 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을 두고 최근 여론조사가 진행됐다는 얘기도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공천을 받기가 쉽진 않을 것”이라며 “홍 부총리가 유 전 부시장과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이 이미 다 알려진 상황에서 민주당이 공격당할 수 있는 원인을 가진 사람에게 무리하게 공천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유재수 의혹’을 둘러싸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기재부의 불안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김 차관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이 있었던 2017년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검찰은 김 차관을 상대로 청와대 감찰 사실을 통보받고도 금융위 차원의 자체 감사나 징계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표만 수리한 이유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진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는 “이들은 강원 출신 인맥을 자랑하며 유대관계를 형성했는데, 결국 유재수 한 사람으로 괜히 곤란해졌다”며 “총선 출마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는 큰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강원 출신 금융 수장들이 약진하고 있었는데 유재수의 등장으로 난처해졌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