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강간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 남성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행위는 있는데 죄명이 없다” 원룸 사는 여자는 두렵다
2019년 5월 28일 ‘신림동 강간미수 CCTV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번졌다. 영상 속에는 30대 남성 조 아무개 씨가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피해 여성의 집 앞까지 쫓아온 조 씨는 여성의 집 안까지 들어가려 했다. 여성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손을 뻗어 현관문을 잡으려고 하는가 하면 눈앞에서 닫힌 문의 손잡이를 잡고 흔드는 등 계속해서 문을 열려는 시도를 했다.
위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0여 분간 문 앞을 서성이던 조 씨는 “떨어뜨리고 간 물건이 있다”며 초인종을 눌러 피해 여성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했다. 그럼에도 여성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현장을 떠난 척 벽 기둥 한쪽에 몸을 숨겼다가 다시 문 앞으로 돌아와 동태를 살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바닥과 도어록 부근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도 CCTV에 포착됐다. 특히 조 씨는 2012년에도 술에 취한 여성을 뒤따라가 추행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조 씨를 주거침입과 강간미수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10월 조 씨의 행위에 대해 주거침입은 맞지만 성범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간의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의도가 있다고 해도 직접 행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재판부의 결정에 검찰은 12월 항소심에서 “강간 미수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성추행 등 성범죄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는 사이 비슷한 사건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10월 현직 경찰관이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 집으로 끌고 들어간 뒤 추행을 시도하려다 체포됐고 대전에서는 한 20대 직장인이 여고생의 집에 침입하기 위해 현관문 비밀번호를 수차례 누르다 검거됐다. 그러나 이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현행법상 이러한 행위를 규정할 수 있는 죄명이 없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행위는 존재하나 죄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신림동 사건처럼 성범죄가 목적으로 추정되는 사건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우리나라에는 없다”며 이른바 ‘스토킹방지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했다. 스토킹방지법안은 2005년부터 총 10차례 발의되었으나 임기만료를 이유로 번번이 폐기된 바 있다. 가장 최근 발의된 법안은 2018년 3월 추혜선 정의당 의원 외 10인이 발의한 ‘스토킹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케어 사태 이후에도…반려동물은 여전히 물건
2019년 1월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에 대한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있었다. 동물 수백 마리를 구조한 뒤 안락사를 시키면서도 이 사실을 후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케어는 후원금으로 운영해오는 동물보호단체였다. 여기에 유기견을 직접 안락사시켜 대학 실험용으로 보내기도 했다는 사실이 비즈한국 취재결과 밝혀졌다. 믿었던 동물보호단체 대표의 두 얼굴에 후원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의 충격도 컸다.
의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박 대표가 후원금 가운데 일부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의 유영재 대표는 2019년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박 대표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박 대표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모금액 약 2억 원을 당초 목적과 달리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박 대표는 충북 충주시에 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하면서도 이를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은 채 약 2년간 운영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최근 불법유기동물보호소 운영에 대해 박 대표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케어 사태가 벌어진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소송전은 케어 사건과 무관한 일반 시민과 박 대표의 소송이다. 언론 보도가 늘면서 일부 네티즌이 박 대표의 행위에 대해 악성 댓글을 남겼고 박 대표가 이를 모아 고소한 것이다. 케어로 촉발된 안락사 논란이 본질과는 달리 박 대표와 네티즌의 법정 싸움으로 변질된 셈이다.
박 대표를 상대로 집단 맞고소를 준비 중인 법무법인 이보 관계자는 “박 대표의 변호인에 따르면 약 2000명의 네티즌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인에 가까운 후원단체의 대표에 대한 비판 취지의 글은 무죄라는 판례가 있어 이를 토대로 맞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작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앞서 검찰은 박 대표에 대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피해 결과와 정도 등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수백 마리의 동물이 죽었으나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므로 불법적인 요소는 없었다는 것이다.
‘경의선 고양이 살해’, ‘BJ의 반려견 학대’ 등 케어 사태 이후에도 동물학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도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꾸준히 발의하고 있으나 대다수의 개정안이 여전히 계류 중에 있다. 한 동물보호단체 종사자는 “외국에서는 반려동물을 혼자 두는 것만으로도 동물학대로 본다. 수차례 학대를 한 소유자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제한하는 등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학대에 대한 범위를 넓히고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뜨면 학교 행정은 올스톱…학교 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와 만난다
2019년 6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천 집단학교폭력 및 유사강간’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피해자의 누나라고 밝힌 글쓴이는 “동생이 2년 전부터 동급생으로부터 수시로 심한 집단폭행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가해자들이 동생의) 항문에 소주병을 꽂고 칫솔을 꽂고 피가 나니 무리 지어 재미있다고 웃었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먹여 자는 사람의 발가락 사이에 휴지를 꽂아 불을 붙여 발등에 화상을 생기게 해 지울 수 없는 흉터를 생기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커지자 충북교육청은 진상 규명에 나섰다.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글쓴이의 말은 일부 사실로 밝혀졌다. 가해자는 6~7명으로 이 가운데 2명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가해자로 지목된 고교생을 위주로 조사에 착수했다. 김병우 충북도교육감도 “안타깝고, 민망하고,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6개월여가 지난 현재, 사건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및 진행 상황을 밝힐 수 없다. 다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은 내부 방침 상 가해자 징계 여부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경찰조사가 먼저 시작되면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유보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학교 생활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 학폭위 개최는 일시적으로 중단되기 때문에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 대한 행정 절차도 유보된다. 그러나 필요 시 절차에 따라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분리 조치를 실시할 수 있다”고만 밝혔다.
한편 학교 폭력 가해자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9월 경기도 수원에서는 중학생 무리가 초등학생 한 명을 코피가 터질 때까지 집단 폭행해 경찰에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소년법을 개정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취학아동 성폭력,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19년 하반기 전국 부모를 분노케 한 사건은 ‘성남 어린이집 성폭력 의혹’ 사건이다. 사건은 경기도 지역의 온라인 맘카페에서 시작됐다. 본인을 피해자의 부모라고 밝힌 글쓴이는 “11월 4일 다섯 살 딸과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갑내기 남자아이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딸의 바지를 벗기고 항문과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어린이집에도 해당 사실을 알렸으나 아이의 고통을 무시하고 무마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을 키운 건 사건에 대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었다. 박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남 어린이집 사건의 해결방법을 묻는 질문에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어른들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박 장관의 발언에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보건복지부는 당일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문제는 사건 발생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동 전문가는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잘못된 성교육 및 성인지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2월 17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동 간 성폭력은 심심치 않게 발생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그간 아동을 순수한 존재로만 규정해두고 성교육을 등한시했다는 점도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대처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쉬쉬하거나 둘 중 누군가 기관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내가 피해자” 2019년 뒤흔든 잔혹 살인 셋 2019년 한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살인사건 3건이 있다. ‘진주 아파트 방화’ 안인득, ‘한강 몸통 시신’ 장대호, ‘전남편 토막 살해’ 고유정 사건이다. 불을 내고 도망가는 사람을 흉기로 찌르거나, 시신을 토막 내고 완벽하게 유기하는 등 치밀하고 잔혹한 범행 수법이 동원됐다. 사회 아래층에서 불만을 쌓아오던 범인들이 동기가 불분명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은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인명 경시 흉악범죄를 막기 위해선 엄중한 처벌과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인득은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 불을 낸 뒤 화염을 피해 도망가는 주민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5명이 죽고 6명이 심하게 다쳤다. 11명은 화재로 인한 상해를 입었다. 평소 악감정을 갖고 있던 주민들을 상대로 목, 가슴 등 급소만 노려 범행을 저질렀고, 칼과 휘발유를 사전에 구입해 범행을 도모했다고 전해진다. 안인득은 자신의 범죄 행위에 당당했다. 안인득은 범행 다음 날인 4월 18일 범행 동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피해자 유가족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억울하다. 10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불이익을 당해왔다. 이러다 보면 화가 날 대로 났다. 억울한 사람들 조사 좀 해 달라”고 주장했다. 안인득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장대호는 8월 8일 자신이 일하던 모텔 투숙객을 살해했다. 손님이 방에서 자는 틈에 마스터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둔기로 내리쳤다고 알려졌다. 시신 처리 방법은 경악스러웠다. 장대호는 시신을 나흘 동안 방치하다가 8월 12일 새벽 시신을 토막 낸 뒤 전지자전거를 이용해 한강에 유기했다. 팔다리와 얼굴이 없는 몸통 부분이 물 위로 떠올라 주민에게 발견되면서 사건이 드러났다. 장대호의 태도도 안인득과 마찬가지였다.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언론 앞에 선 그는 피해자에게 “다음 생에 또 그러면 너 또 죽는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항소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고유정은 5월 18일 전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바다에 버리는 등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엔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도 추가됐다. 고유정은 인터넷 검색으로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고유정은 경찰에 체포될 당시 “왜요? 그런 적 없는데, 제가 당했는데”라고 말했다. 1심 공판에서도 범행은 인정하면서도 전남편이 성폭행하려고 해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안인득과 장대호는 사회 밑바닥에서 오랜 세월 불만을 느끼며 피해망상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닮았다. 긴 시간 내재한 불만이 한순간 흉악 범죄로 표출된 것이다. 안인득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지 못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칠 정도였다. 범행 당시엔 무직이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68회에 걸쳐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장대호는 20여 년간 노래방, 안마방, 모텔 등 임시직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장대호 동료에 따르면 그는 ‘PC방 살인사건’ 김성수를 옹호하고, “언제든 맞설 준비가 돼 있다”며 손님들을 향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이 억울하다고 자수하기 전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며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쌓여왔던 사회를 향한 불만과 피해의식에 기인한 반사회적 범죄로 보인다. 앞으로 이런 괴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선 사회 안전망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고유정이나 장대호처럼 시신을 훼손하는 인명 경시 범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처벌을 강화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