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KT가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KT 차기회장 후보 9명을 확정했다. KT 내부후보로는 구현모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 이동면 미래플랫폼사업부문장(사장), 박윤영 기업사업부문장(부사장)이 올랐다. KT 출신으로는 임헌문 전 매스총괄 사장, 김태호 전 KT IT기획실장(전 서울교통공사 사장), 최두환 전 KT종합기술원장(포스코ICT 사내이사), 표현명 전 텔레콤&컨버전스 부문 사장이, 장관 출신으로는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름을 올렸다. 한 명의 후보는 실명 비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윤종록 전 KT R&D 부문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날 이사회를 두고 잡음이 나오고 있다. 정관 및 규정에 맞지 않는 절차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KT는 지난해 정관 변경을 통해 황창규 회장 이후 차기 회장 선출 방식을 2단계에서 4단계로 강화했다. 우선 지배구조위에서 회장 후보를 고르고 회장후보심사위에서 심사를 진행, 이사회에서 최종 대상자를 선정해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한 것. 각 단계별로 선정과 심사, 후보 확정, 최종 승인의 권한을 나눈 것이 핵심이다. KT 측은 매번 회장 선임과 관련해 낙하산 논란 등이 불거지자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KT 이사회 산하 지배구조위는 지난 4월부터 사내 후보군에 대한 검증작업을 시작, 11월 초 외부 후보 공모접수를 진행했다. 지배구조위에 올라간 차기 회장 후보는 총 37명(사외 후보 30명, 사내 후보 7명)이었다. 지배구조위의 규정에 따르면 ‘위원회 권한’은 ‘회장 후보자군 조사 및 후보 심사대상자 선정‘이다. 따라서 지배구조위는 37명 후보에 대한 심층 검토 및 심사를 거쳐 후보자군을 압축·선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실제 이날 이사회는 지배구조위 이후 진행될 사외이사 8명 전원과 사내이사 1명이 참여하는 회장후보심사위를 구성하고, 지배구조위가 선정한 후보를 보고받는 자리였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이날 이사회에서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회장후보심사위에 참여한 A 이사는 최근 지인에게 “이날 회장후보심사위 회의에서 일부 이사들이 특정 후보에 대해 자격요건을 문제 삼으며 표결을 요구, 무기명 비밀투표를 진행해 특정 후보를 탈락시켰다. 투표에서 기권표들이 많이 나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자격요건은 이미 지배구조위원회 심사에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후보에 올랐다. 해당 후보가 투표를 통해 탈락해 후보군에 공석이 생기자, 이날 회장후보심사위는 이미 떨어진 다른 후보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우 규정에 따른 지배구조위의 심사 대상 후보 선정 권한을 회장후보심사위가 침해한 셈이다.
반면 B 이사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B 이사는 “표결을 통해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며 “지배구조위에서 9명을 올렸고, 이사회에서 승인된 최종 후보 9명의 명단은 같다”고 강조했다.
지배구조위에서 심사 대상 후보를 명확하게 선정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C 이사는 “지배구조위에서 9명 안팎의 대략적인 명단을 만들었다. 후보를 몇 명으로 해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다른 D 이사는 ‘지배구조위원회에서 9명 후보를 올렸고, 이사회가 그 9명으로 확정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따로 할 말 없다. 회장 인선과 관련된 것은 김종구 후보심사위원장에 문의하라”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KT 화재 원인 규명 및 방지대책에 대한 청문회’에 출석한 황창규 KT 회장. 사진=박은숙 기자
이보다 앞서 KT 회장 선임 절차는 지배구조위원회 과정에서도 KT 경영진이 내부적으로 특정후보를 배제하려는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 된 바 있다(관련기사 [단독] KT 법무실, 특정 회장 후보 ‘결격 의견서’ 제출 논란). KT 법무실이 지배구조위원회에 ‘한 후보가 결격 사유로 회장 자격이 없다’는 법률검토 내용이 담긴 법률검토의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의견서는 KT 법무실이 국내 굴지의 대형 법무법인 세 곳에 의뢰해 받은 의견서로, 지배구조위가 법무실에 요청한 것이 아니라 KT 법무실이 자체적으로 대형 법무법인들에 의뢰해 받았다. 또한 지원한 모든 후보가 대상이 아니라 특정 후보만을 지목해 법률 검토를 받았다. 이에 황창규 회장 및 경영진이 회장 선임 절차에 관여해 특정 후보를 배제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KT 새노조는 잇따라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대로 법적조치 등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이러한 논란이 사실이라면 이사회의 권한을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다. 정치권과 경영진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차기 회장을 뽑겠다는 다짐을 이사회 스스로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