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대개 자신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알리기 원한다. 홍보를 위해 때로는 대중적인 브랜드와 상품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윤 추구나 정치적 목적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전문가들은 저작권자의 권리가 침해받을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에서 유명 캐릭터 등 저작물을 무단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 ‘라이언’이 그려진 플래카드와 ‘라이언 특공대’. 사진=류여해 수원대 법학과 겸임교수 페이스북
류여해 수원대 법학과 겸임교수(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는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 라이언과 함께 정치활동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 교수가 정치권에서 라이언을 처음 이용한 것은 2017년이다. 홍준표 당시 당대표와 마찰을 빚어온 류 교수는 당협위원장 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며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당시 류 교수는 손에 라이언 캐릭터의 인형을 쥐고 다녔다.
류 교수는 “오늘 이 아이(인형)가 왜 왔는지 아느냐. 저는 혼자이기 때문”이라며 “라이언 인형은 곰같이 생겼지만 사실 갈기가 없는 사자 인형으로 저도 곰처럼 가만히 있었지만 정의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린다”라고 결의를 보여줬다. 류 교수는 정치 활동 시기 내내 라이언 인형과 함께했고, 류 교수의 SNS에도 라이언 인형의 사진이 점점 더 자주 등장했다.
이후 류여해 교수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라이언과 함께하고 있다. 류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채널 ‘류여해TV’ 등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 집행 정지’를 주장하면서 라이언을 활용한다. 류 교수와 같은 정치 성향의 활동가들이 모인 모임 ‘라이언 부대 특공대’는 플래카드와 명함, 홍보물 등에 라이언 캐릭터를 넣는다. 라이언 캐릭터 옆에는 ‘탄핵은 무효다. 박근혜 대통령 형집행정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러나 류 교수는 이 캐릭터를 사용하는 데 카카오프렌즈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카카오프렌즈 측은 “류 교수가 캐릭터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며 “앞으로 이를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교수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는 “오히려 저와 저희 특공대원들이 라이언 인형을 구매하고 홍보하니 카카오프렌즈도 좋은 것 아니겠느냐”며 “수익성이 없으니 문제될 것도 없다”고 말했다. 류 교수의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정준길 변호사 역시 “라이언이 들어간 물건을 배포하거나 영리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수익성과 깊은 관련이 없다. 문화체육부 저작권정책과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저작물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는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류 교수는 “이것은 정치인 박 전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인간, 국민, 여성, 개인 박근혜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돼서 구속 수감된다 할지라도 저는 그의 인권을 위해 같은 행동을 할 것이기에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다”라고 밝혔다.
류여해 교수가 한국당에서 제명돼 현재 당적이 없다는 점, ‘라이언 특공대’ 역시 정당법에 따라 등록된 정당이 아니라는 점 등을 미뤄볼 때 정치 운동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절차와 그 정당성에는 정치적 견해가 엇갈리는 만큼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다.
EBS의 캐릭터 ‘펭수’와 합성된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홍보물. 사진=정은혜 의원 공식 페이스북
정치권에서 인기 캐릭터를 이용하는 경우는 또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EBS의 캐릭터 ‘펭수’와 이를 본딴 일명 ‘짝퉁펭수’가 정치권이나 행정부의 홍보에 소환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11월 18일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식 페이스북에는 정 의원과 펭수의 합성 사진이 올라왔다. ‘수험생 여러분, 국회에서 밥 한 끼 해요’라는 내용의 홍보물로 이 이미지 역시 EBS 측의 동의 없이 제작된 것이다. EBS 측은 “EBS가 허가하지 않은 저작권 및 초상권 침해 사례가 많다”며 “제보를 받겠다”고 대응에 나섰다.
합성 사진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해석은 더욱 복잡하다. 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류여해 교수가 라이언을 이용한 것은 저작재산권 문제지만, 정은혜 의원의 펭수 합성 사진은 저작인격권과 관련 있다. 저작권법 13조(동일성유지권)에 따라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갖는다.
즉, 펭수의 모습이 온전히 유지되지 않고 훼손되면 문제의 소지가 있고, 저작권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원저작물을 변형한 ‘2차적 저작물’은 2차적 작성자에게 저작권한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 펭수의 합성은 원저작자의 동의 여부와 동일성 유지의 정도에 따라 논란이 될 수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TV홍카콜라’의 상표권 침해 문제다. 홍카콜라는 자신의 이름과 코카콜라의 합성어인데, 홍 전 대표가 이를 원작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코카콜라 측은 “홍카콜라 사이트 자체는 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 공간”이라며 “홍카콜라의 문제는 기업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인데, 경쟁 업체도 아니고 제품에 활용한 것도 아닌 일종의 패러디여서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고 양보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인사청문회 후보자의 ‘논문 표절’ 문제만 터지면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만큼 이런 상황에선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채 교수는 “만약 저작물을 사용한 정치인이 부정적 인상을 받고 있다면 해당 저작물도 부정적 여파에 휩싸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