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기 1국에서 한돌(AI)과 대결하는 이세돌(오른쪽). 사진=K바둑
인공지능이 둔 첫수는 소목. 두 점을 미리 깔았지만, 치석을 이용해 지키는 바둑은 세돌의 취향이 아니다. 초반부터 성문을 활짝 열고 전장으로 내달렸다. 한돌도 한치 물러섬이 없다. 칼바람이 일었던 우변 접전에서 한돌은 섬뜩한 수순으로 흑을 위협했다. 세돌도 대마 생사를 걸고 강하게 버텼다. 한 수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중앙 접전에서 세돌은 중앙 날일자 행마(흑78)로 크게 씌웠다. 한돌의 예상 착점에 없었던 수였다. 이후 한돌은 마치 축을 착각한 듯한 이상 행마를 보이더니 결국 장문으로 중앙 요석이 잡혔다.
대회 콘셉트가 인공지능과 치수고치기다. 사실 관전 포인트는 ‘인간이 석 점에서 버틸 수 있을까’였다. 그런데 이세돌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국에서 승리했다. 석 점과 호선의 갈림길에서 이세돌은 호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석 점 바둑은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현재 인간과 바둑AI 치수는 ‘두 점과 석 점 사이’라는 게 통설이다. 한국랭킹 상위권이 몰려있는 국가대표팀 선수들도 중국최강 인공지능 절예에게 두 점을 깔고 30판을 두면 대략 한두 판 정도 이기는 게 고작이다. 국내랭킹 3위 변상일 9단은 “한돌이 약한 게 아니다. 초반은 정말 잘 뒀다. 흑78은 중국 최강 인공지능 절예도 참고도에서 찾지 못한 수다. 자체로 멋진 수였다”고 감탄했다.
한돌서버에서 노트북으로 수순을 전달해 관계자가 대리착수했다. 사진=K바둑
1국은 한국국가대표팀 대부분이 한국기원 4층에 모여 함께 관전했다. 국가대표팀 조인선 코치는 “1국 초반을 인공지능을 상대로 안정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평소처럼 공격적인 스타일로 판을 짰다. 대부분 프로기사들이 진다고 예상하면서 지켜봤다. 한돌의 버그를 유도했다고 보긴 어렵다. 절예(세계최강 AI)도 40판에 한 번 정도는 쉬운 수읽기에서도 착오가 나온다. 대부분 초중반에 인간이 80%대로 떨어지면 이후 조금씩 따라잡혀 패하는 패턴이다. AI와 대결에선 5 대 5 승률이 되는 순간에 인간이 졌다고 봐야 한다. 이세돌이 중앙에서 끊어지지 않고 피할 방법이 있었는데 맞받아친 걸 보면 날일자 수(78)는 훨씬 이전부터 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돌은 NHN이 개발한 국산 AI 바둑프로그램이다. 2017년 12월 태어나 자가대국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계속해 왔다. 이번 대결에선 3.0버전으로 출전했다. 한돌 개발진은 한돌 3.0이 Elo레이팅(세계프로기사 기력을 점수화한 기력평가지표 중 하나)이 4500점을 넘는다고 추산한다. 박정환과 커제 등 최정상급 프로기사가 3600점대 후반, 예전 이세돌과 대결했던 알파고 Lee버전이 3739점이었다. 현재 이세돌에 Elo레이팅 점수는 3414점이다. 400점 이상 차이 나면 호선으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치수고치기 3번기 1국에서 이세돌이 두 점을 깔고 인공지능 한돌을 이겼다. 사진=K바둑
NHN 개발자는 “이런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명 프로기사를 상대로 접바둑 테스트도 거쳤다. 두 점에선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당황스럽다. 두 점 대국 외에도 석 점과 넉 점 바둑도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 머신러닝은 데이터가 많아야 하는데 접바둑 학습기간이 두 달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학습량 부족이 승부에 영향을 줬다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알파고 대국의 아자황처럼 이번 대국은 NHN서비스 IB 운영파트의 이화섭 대리(한국기원 연구생 1조 출신)가 한돌이 계산한 수를 대리 착점했다. 이세돌은 이번 대결에서 기본 대전료 1억 5000만 원을 받고 한 판 이길 때마다 5000만 원을 추가로 받았다. 세 판 모두 생각시간은 2시간, 초읽기 60초 3회로 진행했다.
신진서 9단은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정말 대단하다. 컴퓨터로 여러 인공지능을 함께 보면서 살피고 있었는데 78수는 대부분 AI가 예측하지 못한 수다. 사실 나도 못 보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냉정하게 임기응변할 수 있었겠지만, 한돌은 순간적으로 대책이 없다고 본 것 같다”는 감상이었다. 인공지능을 흔들어버린 신의 한 수를 보여준 이세돌은 국후 인터뷰에서 “이기고 기분 좋아야 하는데 조금 허무하다. 7월부터 공식 대국이 없어 5개월 정도는 바둑을 쉬었다. 이번 대결을 위해 접바둑 연습을 열흘 정도 했다”고 말했다.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돋보기] 인공지능 스나이퍼, 이세돌 치수고치기 3번기 1국(두 점 접바둑) ●이세돌 ○AI한돌 2019.12.18. 92수 흑불계승 총보 [총보] 장문에 걸린 AI 백35는 공격을 위한 디딤돌 마련이다. 백39도 날카로운 응수타진. 백63 모자씌움 한방도 호쾌하다. 이세돌이 초반 공격적으로 판을 짰지만, 담담하게 받아주던 한돌이 거꾸로 칼자루를 쥐었다. 흐름이 마음에 안 든 이세돌은 흑68로 끊어서 변화를 도모했다. 대마는 중앙진출로가 막혔지만, 역공을 노리는 전략이다. 변상일 9단은 “흑이 우변에서 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냥 살면 승률은 조금 떨어질 것 같다”고 말한다. 이후 한돌(AI)이 예측하지 못한 흑78수가 나왔다. 참고도1 [참고도1] 축을 착각? 장문을 못 봤나? 흑1이 실전 78수다. 백2를 둘 때는 인공지능이 A로 몰아가는 축을 착각했다는 말도 나왔다. 좌상귀 화점(세모표시)에 축머리가 대기하고 있다. 실전에선 이세돌이 흑15를 두자 한돌이 항복했다. 이후 16으로 나와도 흑17 장문이 기다리고 있어 요석이 빠져나갈 길이 없다. 미리 교환해둔 흑5, 백6이 빛을 발한다. 참고도2 [참고도2] 신진서라면 ‘빈삼각’ 인간이라면 빈삼각으로 나오는 수가 일감이다. 참고도2는 한승주 6단이 그린 예상 진행이다. 신진서 9단도 국후 감상에서 “빈삼각으로 나와야 했다”라고 말했다. 참고도3 [참고도3] 절예의 대응책 현역 최강 인공지능 ‘절예’는 백4로 붙이는 수를 제시했다. 흑은 중앙을 주고 대신 백 두 점(세모표시)을 제압하는 바꿔치기다. 승률은 조금 떨어져도 아직 긴 바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