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수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지 이스타홀딩스 대표(이상직 전 이스타항공그룹 회장의 딸)는 “국내외 항공시장의 경쟁력 강화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양사가 뜻을 같이하게 됐다”며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의 2대 주주로서 최대주주인 제주항공과 공동경영 체제로 항공산업 발전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애경그룹 계열 LCC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애경그룹은 대형항공사(FSC)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시도했지만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최근 FSC를 타다가 LCC로 옮기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고, 기존 FSC도 LCC화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인수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제주항공은 국내 LCC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국토부) 항공안전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46대,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23대다. 두 항공사의 항공기를 합치면 경쟁사인 티웨이항공(28대), 에어부산(26대), 진에어(26대), 에어서울(7대), 플라이강원(2대) 등을 압도한다. 아시아나항공(86대)과도 차이를 상당히 좁혔다.
이석주 제주항공 사장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통해 여객점유율을 확대하고 LCC 사업모델의 운영효율을 극대화해 LCC 선두 지위를 공고히 할 계획”이라며 “안전운항체계 확립과 고객만족도 개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이스타항공의 재무 상태가 좋지 않아 제주항공이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재무적으로 부담이 갈 수 있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2018년 말 기준 이스타항공의 자본총계가 253억 원으로 부분 자본잠식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며 “2019년 업황 악화에 따라 추가 결손금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돼 향후 신주 발행을 통한 자본금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이에 제주항공 관계자는 “자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제주항공은 3분기 말 기준으로 3000억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재무 상태가 좋지 않아 제주항공이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재무적으로 부담이 갈 수 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이스타항공 본사. 사진=박은숙 기자
올해 들어 항공업계는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져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LCC 1위 제주항공과 2위 진에어는 올해 1~3분기 각각 185억 원과 10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에어부산과 티웨이항공도 636억 원과 350억 원의 적자를 거뒀다. 비상장사인 에어서울과 이스타항공은 실적을 공시하지 않았지만 적자를 기록 중일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한다.
최근에는 보잉의 B737NG 계열 항공기에서 결함이 발생하는 이슈까지 발생했다. 국내 항공사에서 결함이 발견돼 운항이 중단된 B737NG 계열 항공기는 대한항공 5대, 진에어 3대, 제주항공 3대, 이스타항공 2대, 총 13대다. 이중 대한항공 1대와 진에어 1대는 수리가 완료됐고, 다른 항공기는 수리가 진행 중이거나 수리 대기 중이다.
지난 3월 국토부는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항공, 에어프레미아 3곳에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해 항공사들 간 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진현환 국토부 항공정책관은 “건실한 사업자가 항공시장에 신규 진입해 경쟁 촉진과 더불어 우리 항공시장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플라이강원은 지난 11월 첫 운항을 시작했고,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도 내년 취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 LCC는 아니지만 소형항공사인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가 양양-부산, 양양-제주 노선을 운항하고 있고, 하이에어도 김포-울산 노선을 운항 중이다. 플라이강원도 지난 11월 양양-제주 노선을 취항해 코리아익스프레스에어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경쟁이 소위 치킨게임으로 이어져 항공 업계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올해 소형항공사 에어포항과 에어필립이 운항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폐업했지만 보유 기체가 2~4대밖에 되지 않았고, 운항 노선도 김포-포항, 제주-포항, 김포-광주 등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노선이었기에 추가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운임은 탑승률이 높아져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수준까지 온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방민진 연구원은 “최저가를 제시하기 위해 경쟁사보다 저원가 구조를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격적인 항공기 도입으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야 하기에 LCC 시장의 공급 과잉은 필연적”이라며 “LCC 시장은 구조조정 없이는 궁극적인 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전했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도 “수요 약세 및 신규 항공사 진입으로 공급이 과잉돼 구조조정 본격화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1978년 항공규제완화법이 제정된 후 100개가 넘는 신생 항공사가 설립됐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100여 개의 항공사가 파산 혹은 피합병되는 등 구조조정을 거쳤다. 2017년에도 신세계그룹이 티웨이항공 인수를 시도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외부에서 매각 이야기가 나온 것이지 내부에서는 관련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면서도 “LCC 노선 경쟁으로 인한 포화가 예상돼 중장거리 노선을 준비하는 등 나름의 사업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