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신혜선 씨가 제기한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이 확산되면서 은행권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의 시발점은 신 씨와 이상호 우리들병원 원장의 전처인 김수경 우리들리조트 회장과의 관계다. 두 사람은 2009년 웨딩홀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아니베’를 공동 설립했는데 이 과정에서 총 259억 원의 신한은행 채무를 진다. 김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이 원장과 함께 연대보증인이 되고, 신 씨는 연대보증인과 본인 소유의 청담동 소재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다.
하지만 2012년 아니베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김수경 회장이 이 원장과 이혼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김 회장은 사업에서 손을 떼고 아니베를 신 씨에게 넘기는 사업양수도계약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이상호 원장의 연대보증관계 해소를 요구했다. 김 회장은 신 씨에게 아니베를 양도하는 ’포기각서‘를 써주며 “신한은행 대출(일부 상환금, 이자, 계약금) 등 일체를 포기하며, ’이상호‘를 보증인과 차주에서 제외시켜주기를 부탁하고, 이에 차주변경에 동의한다”고 명시했다.
아니베가 연체이자도 내지 못하자 신 씨는 담보로 내놓은 부동산이 경매 처리될 것을 걱정했다. 이에 신 씨는 김 회장에게 향후 6개월분 이자와 사업 운영자금 등으로 30억 원을 주면 그때 채무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이 돈을 주지 못할 처지가 되자 신한은행 아무개 지점장이 신 씨를 찾아와 이 돈을 주면서 ’개인사업자대출‘로 전환할 것을 권유했다. 신 씨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 원장은 연대보증인에서 빠지게 된다. 이어 신 씨와 신한은행 사이에서 채무인수약정서가 오갔다.
신 씨는 당시 자신의 이름만 기입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연체이자 7억 2000만 원을 포함해 인감, 조수, 채무 지위, 채무 이율, 상환 기일 등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아 지점장 등을 사금융알선과 채무인수약정서와 여신거래조건 변경 추가 약정서를 위조한 혐의(사문서 위조)로 2013년 고소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간 재판에서 신 씨는 증거 불충분으로 패소했다. 다만 사금융알선죄는 인정됐다. 지점장이 신 씨에게 주기로 한 돈이 문제였다. 은행이 신 씨에게 직접 대출해준 것이 아니라, 이 원장에게 15억 원을 대출해준 뒤 그의 개인 돈을 합쳐 20억 원을 신 씨에게 빌려주도록 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만큼 우리들병원 관련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여겼다. 이후 신 씨가 신한은행 측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 일부가 조작됐고, 은행 지점 직원들이 거짓증언을 했다며 경찰에 추가로 진정서를 냈지만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신 씨의 의혹제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간담회를 열고 앞선 추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또 고소를 했다. 사문서 위조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지만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신한은행 지점장이 거짓증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신 씨는 이 과정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윤규근 전 총경,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입설도 제기했다. 우리들병원이 2012년 12월 산업은행으로부터 1400억 원 대출을 받기 위해 이상호 원장을 연대보증인에서 제외시켰다는 것. 이 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주치의로 알려져 있다. 우리들병원이 담보물 940억 원보다 훨씬 많은 1400억 원의 대출을 받은 점,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개인에게 거액의 대출을 내준 것 등은 외부 압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신 씨의 주장이다.
특히 산업은행이 우리들병원에 1400억 원을 빌려주기 위해 기업 규모를 대기업으로 부풀렸다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산은 측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15일 “우리들병원 청담점은 법인도 아닌 개인병원인데 대출심사 때 대기업으로 분류됐다”고 주장했다. 산은이 한국당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출이 이뤄진 2012년 우리들병원 본원 병상수는 236개이고, 1년 매출액은 696억 원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대출을 받은 A 의료재단 병원은 본원 병상수 550개, 매출액 1164억 원임에도 중소기업으로 분류됐다.
여기에 신 씨가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넉 장 분량의 메모에는 심상치 않은 내용들이 보인다. 이에 따르면 정재호 의원은 신한은행 여신담당 부행장과 수차례 만났고, 신 씨에게 여신담당 부행장과의 합의 내용을 전했다. 신한은행이 제시한 협의안은 ’4년간 연체이자를 내지 않는 것과 새로 받는 대출의 이자율‘ 등이었지만 신 씨는 “신한은행이 내 동의 없이 돈을 전용해서 발생한 연체이자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은 애초에 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정 의원은 “신한은행에 선이자를 10억 원 정도 예치하면 연체이자를 받지 않고, 하나은행으로 대환할 때까지 최대한 낮은 금리를 여신담당 부행장이 제안했다”고 했다. 정 의원은 중재안을 내놓은 이후 신한은행 채권을 하나은행으로 넘기라고 했고, 실제로 하나금융그룹 계열사로 넘어갔다. 게다가 현행법상 은행이 선이자를 받는 것은 불법이다. 양정철 원장도 신 씨 사무실로 직접 찾아 “2017년 8월 중 금융감독원장이 바뀌면 다시 논의해보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렇듯 개인 간의 채권채무 관련 분쟁이던 우리들병원 대출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은행권은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의혹의 중심에 선 신한은행과 산은뿐 아니라 채권을 넘겨받은 하나금융과 다른 대출관계로 얽힌 금융사들도 언제 어떻게 휘말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대출이라도 우리들병원과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검찰 등에서 서둘러 결과를 투명하게 밝혀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