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데이터는 금전적 가치로 교환이 가능할까.’ 일본 기업 ‘플라즈마’가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1개월 동안 생활비 20만 엔(약 210만 원)을 제공하고, 사각지대 없이 집안에 카메라를 설치한다. 참가 조건은 수면을 포함해 하루 8시간 이상을 집에서 보내는 사람. 단 카메라를 가릴 경우 보상이 지급되지 않거나 감액될 수 있다.
한 달 동안 사생활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엑소그래프(Exograph)’에 참여할 4명의 피험자가 선정됐다.
프로젝트 이름은 ‘엑소그래프(Exograph)’. 총 1311명의 지원자 중에서 4명의 피험자가 선정됐다. 플라즈마 측에 따르면 “개인 특정 방지를 위해 얼굴과 주요 신체 부위는 모자이크 처리할 예정”이란다. 하지만 욕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기록, 매매 대상이 된다.
이런 식으로 플라즈마가 취득한 데이터는 기업과 연구원의 공청회에서 그 판매가치를 알아보는 데 사용된다. 플라즈마는 “한 사람의 사생활 데이터 매출이 ‘얼마 정도 되는가’를 추정하고, 1월말 결과를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다 보니, 엑소그래프는 발표와 동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을지언정 사생활 공개는 싫다” “화장실, 탈의실에도 카메라가 설치된다는 건 끔찍하다”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 일본 온라인매체 ‘일간SPA’는 실험에 참여하는 피험자와의 인터뷰를 실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참가자 남성 A 씨는 IT기업에 근무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다. 연수입은 450만 엔(약 4800만 원). 후생노동성이 조사한 ‘일본인 전체 직종의 평균연봉(454.5만 엔)’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지원 동기를 묻자 A 씨는 “트위터에서 실험 개요를 우연히 보고 꽤 재미있는 시도라 여겼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20만 엔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솔깃했다”며 “조만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 결혼비용에 보태고 싶어 신청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호기심 반, 금전적인 이유 반으로 응모한 A 씨. 아무리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지만, ‘사생활 대부분이 촬영된다’는 특수성에 저항감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그는 “별다른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차피 내 사생활은 찍혀도 재미가 없는 정보들로, 솔직한 심정은 그게 돈이 될까 싶다”는 것이다. 다만, A 씨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모자이크 처리 전 동영상이 유출됐을 경우 가족과 연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는 된다”고 털어놨다.
일본 기업 ‘플라즈마’의 엔노 히로키 대표. 사진=플라즈마 홈페이지
그렇다면 A 씨는 개인정보의 가치를 얼마로 추정하고 있을까. 그는 “내 일상 데이터에 아주 큰 금전적 가치가 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돈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다는 정도로, 정확히 얼마라는 감각은 없다. ‘한 달에 10만 엔 정도라면 팔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비단 A 씨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터. 현시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개인정보에 얼마의 가치를 매길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적정가격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실험은 등가교환에 대한 단서를 찾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화제를 몰고 있는 ‘엑소그래프’를 제안한, 엔노 히로키 대표(28)는 이번 실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표는 크게 오프라인 데이터 수집방법 및 사회적 활용방법을 탐구하는 데 있다. 먼저 수집된 데이터는 모자이크 처리하고 익명화해 기업과 연구가들에게 전달된다. 한 달간의 삶 데이터와 관련해 ‘구매 가치가 있는가’ ‘상품개발에 도움이 되는가’ 등을 알아볼 예정이다.”
그러면서 엔노 대표는 “예를 들어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빈도를 통해 질병과 생활습관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고, 거실에서 TV를 보며 찍힌 데이터의 경우 특정 프로그램이나 CF를 보면서 ‘정말 웃고 있는가’ 등을 확인함으로써 광고나 프로그램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이미 검색엔진과 SNS에서는 온라인 데이터 활용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오프라인 데이터는 아직 공식적으로 활용된 바가 없다. 이와 관련 엔노 대표는 “데이터가 석유 버금가는 중요자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오프라인 데이터만 제외시키는 건 아깝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어떤 기준으로 피험자를 선정했는지’도 궁금한 부분이다. 엔노 대표는 “응모자의 속성에 초점을 맞춰 4명을 채용했다”고 전했다. “응모자 연령 분포를 살펴보면 24세와 29세가 가장 많았다. 이에 그 나이에 맞는 남녀로 폭을 좁혔으며, 그 다음 평균 연봉에 가까운 남녀를 각각 선별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상이 전국민에게 생방송되는 상황을 그린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덧붙여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감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서 이렇게 반박했다. “언뜻 사생활 동영상을 매매한다고 하면, 매우 민감한 안건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글 검색엔진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검색창에 입력한 이력에는 자신의 취미, 기호,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이 적지 않게 반영돼 있지 않는가.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데이터가 기업 간에 거래되어 개인 광고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유튜브 같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는 대가로 개인정보가 기업에 제공되고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 프로젝트의 오프라인 데이터도 마찬가지로 활용해도 괜찮은 것인지, 혹은 그것을 허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민감한 사생활 공간은 정말 금기인지를 사회에 묻겠다는 의도다.
엔노 대표는 “물론 어디까지나 다양한 삶의 한 가지 선택사항으로써 오프라인 데이터 제공을 제안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무리하게 따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극히 사적인 데이터를 제공받은 이상 공명정대한 교환이 필수다. 과연 전대미문의 이번 프로젝트 결과가 얼마만큼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엔노 히로키(遠野宏季) 대표 : 1991년 출생으로 교토대학을 졸업했고,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전공은 화학이었지만 IT분야를 창업하기 위해 휴학했다. 2016년 8월 주식회사 Rist를 설립해 의료분야에서 ‘AI영상검사 시스템’을 개발했다. 2018년 12월 말 동사를 대기업 교세라그룹에 매각했다. 2019년에는 새로운 주식회사 플라즈마를 창립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