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4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경기 포천가평, 3선)은 진정성을 호소했다. 김영우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한국당 내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3선이지만 52세로 아직 젊은데다 2016년 총선에서 62.22%의 득표율을 얻어 무난하게 4선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던 까닭에서다. 불출마 선언으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기 때문인지 일요신문이 12월 19일 국회에서 만났을 때는 여유로웠다. ‘어쩌다 보니’ 길렀다는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2020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을 일요신문이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사진=박은숙 기자
―불출마 선언이 갑작스러웠다.
“처음 정계 입문할 때 공천 받기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 도움을 받았다. 재선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 도움을 받았다. 초선 때인 2011년 연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전화해 “박근혜입니다”라고 해 깜짝 놀랐다. 그분이 의원들에게 전화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제1 사무부총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그렇게 비대위에서 사무부총장을 맡아 공천 받는 데 수월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초선, 재선이 되는 데 도움을 줬던 전직 대통령들이 다 법정에 섰고 감옥에 갔다. 그들을 대통령 만드는 데 나름 애를 썼다. 그렇게 보면 도의적으로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 상황에서 4선 시켜달라고 표를 부탁할 수가 없었다.”
―한국당 의원으론 5번째 불출마 선언이다.
“정치는 책임이 바탕이 돼야 한다. 우리 당은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모두가 책임을 질 수는 없겠지만 나라도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당은 ‘내년에 문재인 정권 심판하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 새누리당 거치며 정치를 잘못해 대통령들이 감옥에 갔다. 그런데 한국당이 달라진 게 있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심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심판하자고 하니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지역 주민들이 굉장히 서운해 하고 당직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당을) 나가야 할 사람은 안 나가고 왜 김 의원이 나가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내 불출마가 찻잔 속의 태풍인 건 알지만 당의 개혁 불씨가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당이 국민들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대안정치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비전과 개혁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야 한다. 개혁은 결국 인적쇄신이다. 세 부류 사람들은 불출마해야 한다고 본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포함해 20대 막장 공천에 책임이 있는 사람, 대통령 측근이라며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했던 사람, 정치 품격을 떨어트리는 막말을 하는 사람들은 출마해선 안 된다고 본다.”
―세 부류에 포함되지 않는데.
“나는 양심이 찔려서 그런다. 개혁적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를 듣긴 하지만 나도 솔직히 초선, 재선 때 줄서기 했고, 패거리 정치 한 적도 있다. 잘못한 점도 있다. 나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탄핵에 후회하진 않는다. 올바르지 못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로 인해 보수가 분열됐고, 정권을 빼앗겼던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는 거다. 결정은 각자 하는 것이다.”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황교안 대표가 불출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내년 총선에서 내 밥그릇만 생각하면 이기기 힘들다. 선당후사를 해야 하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당은 너는 불출마해라, 나는 출마하겠다는 분위기다. 이런 모습에서 장외투쟁 해봤자 국민과 괴리를 좁힐 수가 없다. 삭발, 단식, 장외투쟁해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건 결국 한국당이 나 홀로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려놓질 않으니 투쟁의 진정성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황교안 대표가 불출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가 먼저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건 새로운보수당의 유승민 의원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불출마 선언하고 여러 지역에서 출전하는 장수를 돕는 게 낫다고 본다. 양쪽 다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통합도 어렵다. 두 사람이 자기 지지층만 보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최근 황 대표의 당직 인선을 두고 말이 많다.
“아주 실망스럽다. 김세연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서 솎아내기 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동규 신임 여의도연구원장이 전당대회부터 도와줬다는 얘기도 있는데 잘 모르는 분이라 평가하긴 어렵다.”
―황교안 대표에게 직접 고언을 한 적도 있나.
“했다. 최근 국회 로텐더홀에서 자고 일어나서 황교안 대표와 의원 10명 정도가 둘러앉아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고개를 끄덕이시긴 했다. 전당대회 끝나고 황 대표를 세 번 정도 독대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개혁해야 한다’, ‘통합해야 한다’, ‘중도를 아우르는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언을 듣고 행동을 할지는 모르겠다.”
―20대 국회를 돌아본다면.
“너무 힘들었다. 20대 국회는 한마디로 하면 막장 국회다. 정치가 실종됐다.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도 당 내에서는 윤리위에 회부했고 여야 간 고소, 고발전이 난무했다. 18대 동물국회보다 훨씬 질이 낮아졌다. 18대 선거에서 당선되고 첫 날 국회 등원할 때 택시를 타고 왔다. 국회로 가자는 말에 택시기사 분이 ‘국회의원이냐’고 물어서 맞다고 했다. 그때 기사 분이 ‘정치가 너무 엉망이다. 좋은 정치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보다 정치가 좋아지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이 든다.”
―이유가 뭘까.
“대통령이 국민을 통합, 화합시키지 않고 자기편을 향한 편향된 정치만 하니까 야당이 무시되고 정치도 양극단화 된다. 타협도 없고 대화도 없다. 여당은 청와대 거수기 역할만 한다. 국회가 협상의 결과물을 내는 곳이 아닌 투쟁하는 곳이 됐다. 대통령 책임이 크다고 본다.”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내년 총선 이후 무엇을 할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1980년대 운동권 특유의 폐쇄적인 가치관이 문제다. 이들의 특징이 반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옳다. 우리는 정의 편이다’라는 자기 확신이 있다. 보수정당은 협치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소멸과 괴멸의 대상이다. 그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 세력으로 집권여당이 됐는데 정작 의회 민주주의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굉장히 건강하지 않은, 진보의 탈을 쓴 반진보의 모습이다.”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최근 주변국과의 외교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북한 눈치 보느라 한미관계 악화됐고, 과거사 문제 대응을 잘 못하면서 한일관계 엉망이 됐다. 그렇게 우스운 나라가 됐다.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든다고 했지만 정작 중국 러시아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카디즈) 침범 등 우리 주변 모든 나라가 흔드는 나라가 됐다. 기본적으로 한미, 한일이라는 동맹 관계가 흔들리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우릴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우리가 만들었다.”
―12년 의원 생활을 지나오면서 가장 기억남는 게 있다면.
“2016년 국방위원장 맡았을 때 정세균 당시 의장 문제로 새누리당 당론이 ‘국정감사 보이콧’이었다. 그런데 국정감사를 보이콧할 수 없다는 마음에 당론을 어겼다. 그리고 국방위원회만 열렸다. 당에서 징계 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돌아보면 잘한 일이다. 헌법에 보면 ‘국회의원은 국익을 우선해서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적혀 있다. 당론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의 양심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기자 출신이다. 자격증 있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까 앞으로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