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영국 총리 처칠이 의회에 연설을 하기 위해 갔다가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엔 노동당수가 소변을 보고 있었고 처칠은 그와 좀 떨어진 곳에서 용변을 봤다. 그런 처칠에게 노동당수는 “총리는 왜 항상 나를 멀리하시오?”라고 뼈 있는 소리를 했고 처칠은 노동당수에게 “당신들은 항상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해야 한다고 하지 않소”라고 농담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3월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급하게 병원 수술실로 향한 대통령은 집도의들에게 “당신들은 나와 같은 공화당원들이오”라고 유머를 던졌고 수술실에 있던 의사들은 “대통령님, 지금부터 우리 모두는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좀 유머가 있으면 한다. 정치 지도자는 물론 대변인들까지도 당장 내일 전쟁이라도 벌일 듯이 상대방을 향해 저주의 말을 쏟아낸다. 자기와 뜻이 다른 진영을 향해 대한민국, 아니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차마 표현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언어들이 뉴스를 도배한다.
나는 무섭다. 정말 두렵다. 이러다가 내전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나는 영화제작자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미운 사람이 다름 아닌 감독들이다. 감독은 언제나 좋은 것만 생각한다. 프로듀서인 나는 그 좋은 것이 우리 예산과 우리가 추구하는 영화의 세계관과 맞는지 그리고 그게 맞다 해도 최종적으로 그것이 꼭 필요한지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제작자와 감독은 충돌한다.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감독과 많은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같이 작업하는 현장에서는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 만약 현장에서 내가 감독과 갈등 상황을 연출한다면 우리를 믿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스태프와 연기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작업 현장에서 가장 농담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도 절대 현장에서 농담을 잃지 않는다. 그래야만 수많은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대표님이 저리 농담을 하시니 우리 영화는 문제가 없구나. 우리 일이 잘 되고 있구나”라며 안심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일하는 현장이 아니라 가정을 생각을 해보자.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매일같이 서로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 싸운다고 하면 그 모습을 보는 자녀들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난 아이들과 외식을 하러 가거나 여행을 하러 갈 때 자동차가 신호에 걸려 있으면 조수석의 아내의 볼에 뽀뽀를 한다. 그러면 뒷자리의 딸아이들이 “에이, 에이”하고 야유(?)하지만 부모의 다정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이 될 것이다.
2019년도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대한민국의 5000만 국민들은 위대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인들이 좀더 상대를 배려하고 자기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상대를 향해 유머러스하게 대응하고 여유를 가지고 서로서로 대화하고 절충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린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건가.
자기와 뜻이 다른 상대까지도 유머로 감싸 안는 그런 리더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안심이 되고 희망을 품으리라는 걸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모르는 걸까. 올해의 사자성어가 공명지조(共命之鳥)라고 한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상대가 죽으면 결국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제발 정치인들이 각성해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