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대한항공을 시작으로 항공사들 구조조정 이어지나
대한항공은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운항승무원과 기술·연구직, 해외근무 직원 등을 제외한 전 직원 중 만 50세 이상, 15년 이상 근속 직원들이 대상이다. 대한항공 측은 이번 희망퇴직에 대해 “정년(60세)에 앞서 새로운 인생 설계를 준비하는 직원들에게 보다 나은 조건으로 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강제성은 없으며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신청한 직원에 한해 실시된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이번 희망퇴직은 2013년 이후 6년여 만이다. 당시 11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이어 받은 조원태 회장은 사업영역 개편을 포함한 ‘슬림경영’에 착수했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 11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진행한 특파원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을)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버릴 것”이라고 밝혀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 대한항공은 희망퇴직에 앞서 지난 10월 근속 만 2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3개월 단기 무급휴직을 시행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3분기까지 매출 9조 642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96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8% 급락했다. 당기순손실도 709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75억 원보다 12배 이상 적자폭이 확대됐다.
대한항공의 구조조정 여파는 다른 경쟁사까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하긴 했지만, 나머지 항공사들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부진에는 일본 불매운동, 홍콩 민주화 시위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쳤다. 잇따른 저비용항공사(LCC) 등장으로 인한 공급 과잉 역시 최근 수익성 악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최근 플라이강원이 취항을 시작했고,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도 내년 취항을 목표로 준비 중에 있어 향후 출혈경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HDC현대산업개발로 매각이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지난 4월 희망 휴직을 실시한 데 이어 5월에는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스타항공 역시 지난 11월 무급휴직을 시행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올해 4분기는 물론 내년에도 당분간 수익성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항공사들 입장에서는 비용절감 노력에 나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항공사들의 인력 구조조정 움직임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밖으로는 M&A 통해 규모의 경제로 돌파구 마련
서울 김포공항에 대기 중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제주항공이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에 대한 양해각서를 맺고 이스타항공 경영권 인수 절차에 돌입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항공사들은 실적부진과 출혈경쟁을 타개하기 위해 내부 구조조정뿐 아니라 항공사 간 ‘합종연횡’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같은 고민의 첫 번째 결과물이 나왔다. 국내 LCC 1위 제주항공이 경영난에 허덕이던 이스타항공을 품에 안은 것. 제주항공은 지난 18일 이스타홀딩스와 이스타항공 주식매매계약(SPA)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수 주식은 이스타항공 보통주 497만 1000주(지분율 51.17%)로, 인수금액은 695억 원이다(관련기사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앞과 뒤…LCC 구조조정 신호탄?).
제주항공은 26일부터 2020년 1월 9일까지 실사에 돌입하는 한편 31일 SPA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후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대주주 적격심사와 기업결합심사 등을 받는다. 이번 인수로 제주항공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1등 LCC가 돼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항공사 간 결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양사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시장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며 “국내 항공업계 시장이 재편되는 국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제주항공은 국내 2위 국적사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애경그룹 컨소시엄은 인수전에서 1조 5000억 원 수준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의 약 5%인 700억 원으로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것이다.
항공업계에서는 향후 M&A 시장에 또 다른 항공사가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에어부산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HDC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도 공정거래법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서도 매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같은 전망의 근거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거나, 2년 내에 처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하면 ‘HDC-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의 지배구조를 갖추게 된다. 따라서 현대산업개발이 에어서울과 에어부산도 보유하려면 보유 지분율을 100%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 에어서울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100% 자회사이기에 문제가 없다. 반면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율이 44.2%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이 에어부산의 나머지 지분 매입에 나서기보다 매물로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만약 에어부산이 매물로 나오면 많은 LCC에서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도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점유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에어부산 등 다른 LCC를 인수하면 기존 노선 등을 활용해 중복비용을 줄여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규모 확장과 사업 구조조정 두 가지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LCC 간의 추가 M&A 등으로 항공업계 순위가 바뀌는 등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