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을 거듭하며 주목을 받은 삼진어묵이 위기설에 휩싸였다. 박종수 삼진어묵 회장(왼쪽)과 박용준 삼진인터내셔널 대표. 사진=연합뉴스
삼진어묵은 1953년 부산에 설립된 이후 3대째 이어져온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장수기업이다. 제조법인 삼진식품과 유통법인 삼진어묵, 해외법인인 삼진인터내셔널을 통해 국내외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3년 기준 매출액 82억 원, 직원 수 45명의 부산지역 중소 어묵 제조업체였던 삼진어묵은 지난해 직원 수 550명, 매출 920억 원을 기록하며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삼진어묵이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것은 창업주의 손자인 박용준 삼진인터내셔널 대표가 2011년 가업에 뛰어들면서부터다.
박용준 대표는 간식형 ‘베이커리 어묵’을 내놓으며 반찬 개념이던 어묵을 고급화했다. 또 기업 간 거래(B2B)로 이뤄지던 사업구조를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로 바꿨다. 기존 지역 업체들이 대기업에 치여 대형 유통 체인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로 재래시장에 유통하며 가격경쟁에 집중하던 때 역발상을 한 셈. 베이커리 어묵이 인기를 얻으며 삼진어묵은 전국 백화점에 입점에 성공했다. 지난 상반기 기준 국내 23개, 해외 9개 직영 매장을 운영했다.
2013년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삼진어묵은 최근까지 승승장구해왔다. 삼진어묵의 성공 스토리는 혁신 사례로 꼽히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삼성SDI는 사보를 통해 삼진어묵을 혁신사례로 소개했고, SK 또한 ‘사회적 가치’ 행사를 통해 삼진어묵의 행보에 주목했다. 삼진어묵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출액 100만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1월부터 지역 업계에서 삼진어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산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는 “삼진어묵 본사가 있는 영도에서는 이전부터 위기설이 돌았다. 원래 가족경영을 해오던 작은 업체가 짧은 기간 갑작스럽게 덩치가 커진 데다 사업분야를 확장하고 직원 수가 늘어나며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어묵업체 관계자는 “동종업계라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상황이 어려운 것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실제 삼진어묵은 지난 11월 서울 영등포점과 벡스코점, 수원점, 현대천호점 등 수도권에서 4개 직영 매장을 철수한 바 있다.
삼진식품의 경영 관련 각종 지표는 회사가 현재 위기 상황이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삼진식품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6억 7443만 원이었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마이너스(-) 24억 9937만 원으로 전환됐다. 신용분석보고서에서도 지난해 기준으로 삼진식품과 삼진어묵의 현금흐름 등급은 모두 열위로 평가됐다. 열위 등급은 현금흐름 창출능력이 보통이지만 향후 영업활동 성과가 저하될 경우 재무활동 및 투자활동 현금지급능력이 저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삼진식품 당기순이익 또한 2017년 5억 6932만 원에서 2018년 3억 2106만 원으로 44%가량 감소했다. 매출은 2017년 391억 2075만 원에서 465억 3821만 원으로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6억 6705만 원에서 6억 6074만 원으로 사실상 정체를 보였다. 부채비율은 2016년 595.99%에서 2018년 1203.06%로 급증했다. 일반적으로 부채비율 200% 미만이 정상적인 기업으로 분류된다. 차입금 의존도 또한 2017년 37.81%에서 2018년 75.27%로 치솟았다.
삼진어묵 사정을 잘 아는 부산지역 어묵업체 관계자는 “고급화했던 간식형 제품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아 고전 중인 것으로 안다”며 “삼진어묵이 어음을 쓰지는 않지만, 은행 대출이 많아 이자와 원금이 돌아오기 시작하면 힘들 수 있다”고 전했다.
2018년 기준 삼진어묵의 단기차입금은 77억 4500만 원, 장기차입금은 13억 24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은 1억 3392만 원, 1년에서 2년 안에로 갚아야 하는 장기차입금은 9억 3392만 원이다. 올해와 내년 삼진어묵이 정리해야할 차입금 규모가 작지 않다는 의미다.
회사가 겪는 어려움은 삼진어묵과 삼진식품, 박용준 대표 소유의 부동산등기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삼진어묵 본사 부동산등기부에서는 2018년 6월 국민은행이 20억 4000만 원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이 확인된다. 지난 11월 29일에는 박용준 대표의 자택과 삼진식품 제1공장에 대해 각각 15억 원과 70억 원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지난해 6월 삼진어묵 본사를 담보로 16억 원을 대출한 데 이어 지난 11월 70억 원을 추가로 대출한 셈이다.
성장 동력에 불이 꺼진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다각화 또한 불안해 보인다. 삼진어묵은 최근 중견기업 연합 벤처투자 플랫폼을 통해 2개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2월 설립된 ‘온지’는 한방 음료 및 식품을 제조‧유통하는 기업이다. 온지의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박 대표와 그의 아내가 각자 사내이사와 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진어묵 관계자는 “박 대표께서 식품사업에 관심이 많다. 함께 커갈 수 있는 사업을 하기 위해 초기 투자를 한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지역에서는 삼진어묵이 지난 7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삼진어묵은 지난 7월 황종현 전 동원F&B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삼진식품과 삼진어묵의 국내 사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것. 박용준 대표는 삼진식품‧삼진어묵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해외법인인 삼진인터내셔널 대표 직책만 유지, 해외 진출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역 업계는 박 대표가 3대째 대물림해오던 기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그간 경영 상황 악화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직영 매장 3곳을 검토 중인 탓에 해외 진출 또한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삼진어묵 측은 위기설에 대해 “그간 회사가 급성장했고, 최근 그 속도가 멈칫한 데다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다보니 대표 업체로서 삼진어묵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회사에서는 이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유통경로 확대나 신제품 개발, 원자재 가격에 대한 고민 등 체질개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