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듯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정기구독하는 시대가 왔다. 사진=최준필 기자
구독의 의미가 가장 눈에 띄게 확장된 분야는 동영상 서비스다. 유튜브의 ‘구독’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용자들은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다’고 말하며, 해당 채널을 ‘구독’하면 새 콘텐츠가 올라올 때마다 ‘알림’이 뜨면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월정액을 결제하면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구독경제의 한 예다.
최근에는 물품이나 서비스도 ‘구독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생필품과 육아용품 등은 물론 액세서리, 심지어 속옷까지 구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구독이란 말이 생활경제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구독경제’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구독경제는 기존의 렌털서비스나 정기배송과 혼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렌털·정기배송은 넓은 의미에서 구독경제에 수렴될 수 있다. 한국마케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구독경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한 번 일정 금액을 내면 무한정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무제한형 구독경제’, 기간을 정해두고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정기 배송형 구독경제’, 그리고 ‘렌털형 구독경제’다.
다만 구독경제는 기존의 소비경제와 다르다. 조혜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독경제는 ‘소유 방식’이 변화한 것”이라며 “돈을 내고 소유한다는 점에서 기존 구매방식과 다를 바 없지만 소유의 개념이 구독형식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귀걸이를 구입한다고 했을 때 기존 소비·소유 방식은 ‘사서 가진다’에 그치지만 구독경제에서는 ‘몇 개월치 구독료를 미리 내고 매달 다른 콘셉트의 새로운 귀걸이를 받아본다’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구독경제 시장이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인가구 증가와 소비 형태의 변화, 배달 서비스의 발전, 소유욕 등이 희박해지면서 물건과 서비스를 소유가 아닌 공유와 구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반영해 국내 기업들은 앞다퉈 구독경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쏘카’는 지난해 모빌리티 업체 중 처음으로 ‘쏘카패스’라는 차량 구독서비스를 선보였으며 배달 애플리케이션 요기요는 지난 8월 1일부터 정기할인 구독서비스인 ‘슈퍼클럽’을 시작했다.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롯데렌탈은 지난 9월 육아용품을 대여해주는 렌털형 구독경제 서비스 ‘묘미 베이비패스’를 선보였다. 월 이용료를 내면 3개의 육아용품을 한 달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기 때문에 용품이 정기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판단, 육아용품 구독서비스를 시작했다”며 “다른 물품 구독서비스 개발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구독경제 시장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곳은 스타트업들이다. 스타트업들은 식음료를 비롯한 먹을거리, 물티슈 같은 생필품, 심지어 액세서리와 속옷까지 구독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실제 이들 업체의 구독자 수는 매달 증가 추세다. 한 액세서리 업체 대표에 따르면 해당 스타트업은 6개월치를 한 번에 결제하는 이들이 중간에 해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이 기존의 소비·소유 방식에서 탈피해 구독을 선택하는 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도날을 구독하는 송 아무개 씨(30)는 “쇼핑 시간 자체가 낭비처럼 느껴지는 데다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면 배송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무뎌진 면도날을 며칠 더 써야 할 때도 있다”며 “구독을 하면서 이런 불편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큰 장점이다. 속옷을 구독하는 이 아무개 씨(29)은 “속옷 세트 하나 사는 가격과 구독 2회 가격 차이가 별로 없어 구독을 선택했다“며 “새로운 속옷을 받고 기존 속옷을 버리면서 자연스레 교체할 수 있는 점도 좋아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구독경제 모델이 향후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재고를 가늠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음 달 구독자가 몇 명인지 확인한 뒤에 그만큼만 상품을 만들면 되기 때문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이득이 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객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신선한 아이템을 앉아서 받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과 고객에게 모두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서비스인 것이다.
구독서비스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중요한 경제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스타트업 시작 전에 정부 지원책을 찾아봤는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법률만 있을 뿐 구독경제와 관련한 스타트업 지원책은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며 “초기 마케팅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으면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구독 서비스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 구독경제는 아직 태동기에 불과하다. 구독경제가 올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업체 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조혜정 연구위원은 “소비자 입장에서 구독서비스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물품과 서비스에 대해 돈을 미리 내는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독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는 구매 대신 구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 연구위원은 “기대한 것과 다른 서비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며 “소비자와 업체 간 신뢰관계가 확립되는 것이 구독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유하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