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캣츠’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단언컨대 이 뮤지컬은 스크린으로, 그것도 실사 영화로 옮겨져선 안 될 작품이었다.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운명의 밤에 모든 ‘젤리클 고양이’들이 모여 자신을 뽐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극의 전부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원작조차 뚜렷한 스토리랄 것도 없이 각 고양이들의 자기소개와 군무가 이어질뿐이다. 그런 판에 어떻게 해서든 서사를 부여하려다 보니 영화는 결국 마지막까지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영화 ‘캣츠’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뭐가 돼도 이 영화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제작진의 뚝심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서 더욱 빛을 발한다. 대중들의 거센 비판을 듣고 거액을 들여 모든 CG를 고쳐낸 ‘수퍼 소닉(소닉 더 헤지혹)’이라는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캣츠’의 특수 분장과 CG는 영화의 초기 설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국내 관객들을 마주할 준비를 갖췄다. 인간의 이목구비에 대충 수염과 귀만 붙여 놓은 뒤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이들은 고양이입니다”라고 주입시키는 식이다. 속아주려다가도 괘씸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영화 ‘캣츠’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배우들이 고양이 배역에 더욱 가까워 보이기 위해 화장을 스스로 하고, 털이 붙은 가발로 완벽하게 두상을 가리는 뮤지컬에 비하면 분장을 위한 설정 자체를 게으르게 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와 관련해 23일 내한한 톰 후퍼 감독은 “고양이 캐릭터의 외모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선보인 고양이의 외모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놀랄 수도 있지만 즐겁고, 마법과 같은 여정에 함께 즐겨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유감스럽게도 제작진 중 아무도 이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새로운 시도라는 것에만 너무 매몰돼 정작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만 것은 아닐까.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한계치 말이다.
영화 ‘캣츠’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사실 스토리만 좋다면 사람 얼굴이 달린 고양이나 쥐, 바퀴벌레가 나온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오히려 그런 부분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스토리적으로도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스토리의 주요 지점을 담당하는 캐릭터들의 성격은 그들의 얼굴보다 인상적이지 못하다. 별다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리더 고양이 멍커스트랩부터 시작해 빅토리아와 합쳐져 버린 드미터와 제마이마, 완전히 성격이 달라진 봄발루리나는 그나마 최소한 새로운 영화적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각으로 본다 하더라도,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 분)의 재해석만큼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심지어 원작에서 맥캐버티의 강력함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퀀스도 이 영화에선 삭제되거나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렇다보니 작중에서는 인간들마저 두려워할 정도인 희대의 악당 고양이가, 스크린 속에서는 단순한 ‘못된 고양이’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 ‘캣츠’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반면 영화적 새로운 시도 가운데, 어느 한 마리가 주인공을 맡지 않는 뮤지컬과 달리 흰 고양이 빅토리아(프란체스카 헤이워드 분)에게 극의 중심을 이끌게 한 것은 눈 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인간에게 버림받고 처음으로 젤리클 고양이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청소년 고양이 빅토리아를 따라 현실 속 관객들도 고양이들의 시선에 맞춰 그들의 세상을 보게 된다.
특히 빅토리아가 무리로부터 배척받는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제니퍼 허드슨 분)를 이해하고, 그를 위해 부르는 영화판 새로운 넘버 ‘뷰티풀 고스트’가 ‘메모리’와 어우러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인상적인 신 가운데 하나다. ‘뷰티풀 고스트’는 뮤지컬 ‘캣츠’의 제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하고, 극중 봄발루리나 역을 맡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가사를 붙인 곡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러닝타임을 위해 몇몇 노래가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젤리클 고양이를 위한 젤리클 노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한 판을 펼치고, ‘캣츠’의 테마 그 자체인 ‘메모리’는 그 얼굴의 고양이들이 불러도 감동적이다. 노래와 노래로 이어지는 고양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벅찬 관객들이라도 이 두 곡이 들릴 때 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거나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뮤지컬적인 여러 가지 시도도 연말 분위기에 맞게 반짝거린다. 고양이들의 클로즈업만 피하면, 눈과 귀는 쉴새 없이 즐겁다. 109분, 12세 이상 관람가. 24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