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소녀상. 천황의 사진을 불태운 후 발로 밟는 영화. 그 나라의 프로파간다 풍습. 대놓고 표절. 현대 예술에게 요구되는 재미! 아름다움! 놀라움! 지적 자극성이 전혀 없는 천박함에 질렸다.”
여기서 소녀상이란 당연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을 가리킨다.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문제에 해선 안 될 소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가해국 국민 입장에서 실로 거리낌 없이 내놓았다는 점에서 어이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또 다른 데에 있었다.
#‘찐 사랑’을 배반당한 자, 탈덕하다
사다모토 요시유키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 하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을 넘어 오타쿠 문화에 큰 파장을 몰고 왔던 문제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화판을 제작하기도 했고,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비롯해 ‘썸머워즈’ ‘늑대 아이’ 등 유명한 작품 상당수에 그가 만들어낸 외모를 지닌 캐릭터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중후반에 성장기를 겪은 많은 이들에게 꼭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깊이 파고들지 않았어도 한번쯤은 스쳐서라도 거쳐 간 홍역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작품 속 인물들의 외모를 창조한 이가, 한국인이라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이용자 같은 극우파가 아닌 이상에야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발언을 던졌으니 그 충격파가 컸다.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발언이 나오고 20일이 지난 8월 23일, ‘힙합 비둘기’ 데프콘이 유튜브 방송에서 아스카가 그려져 있던 벽면의 특제 대형 화보를 자기 손으로 직접 찢고 더 이상 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했다. 갖가지 방송 활동을 통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연 중 한 명인 아스카를 향한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해 왔던 그의 선언은 그저 한 사람의 ‘탈덕(몹시 깊이 좋아하고 파고들던 대상 또는 분야에서 멀어지기로 함)’ 사례라고만 이야기하기엔 모자랄 만큼 깊고 진한 인상을 남겼다.
#입이 웬수인 SNS 시대
문제는 사다모토 요시유키만 일으킨 건 아니었다. 캐릭터성을 부각하고 만화스러운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미하는 점을 주요 특징으로 삼는 라이트노벨에서 오랜 시간 대형 히트작으로 꼽혔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온 바 있는 ‘풀 메탈 패닉!’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작가 가토 쇼지는 얼마 전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 관한 트윗을 올렸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그레타 툰베리는 UN에서 아이들을 위해 모였다는 어른들에게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 당신들은 헛된 말로 내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다”고 꾸짖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그의 발언을 당연히 비판하거나 반대할 수야 있고 동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인기 작품의 작가이자 명색이 성인인 남성이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10대 소녀에게 내놓은 발언으로는 너무 저열했다는 데에 있다.
“나도 이 애 싫어. 만약 내가 세상의 그림자 지배자라면 모든 것을 빼앗아 절망의 바닥에 처박고 조롱하고 싶어. 그리고 나서 따끈따끈하고 끝내주게 맛있는 스테이크라든가를 먹인 후 분해서 우는 꼴을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그나마 사다모토 요시유키 같은 혐한 발언은 아니긴 하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그림자 세력 간의 충돌을 그렸던 작가의 실제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꼴이어서 많은 이들을 경악시켰다. 발언의 여파는 실로 심각해서, 만화판을 담당했던 만화가 가사하라 데쓰로가 원작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작품 홍보와 속편 제작을 중단하고, 나아가 해당 만화로 벌어들인 수익을 환경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지경에 이른다.
‘풀 메탈 패닉!’이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큼 한 ‘시대’를 만들어낸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199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일본의 라이트노벨의 한 시기를 이끈 히트작임은 분명하다. ‘풀 메탈 패닉!’은 한국에서도 웹소설 이전인 2000년대의 한 흐름을 만들었던 라이트노벨 붐을 연 작품으로서 고정 독자층이 많았는데, 정작 작가가 선해나 옹호가 끼어들 여지조차 없는 저열함을 내비침으로써 오랜 팬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말았다. 트위터가 아무리 광장에서 혼자 뇌까리는 느낌으로 쓰는 공간이라지만 이쯤이면 거의 입이 웬수다. 한데 알고 보면 이게 SNS의 문제만은 아니다.
#비록 추억이 배반할지라도
대중문화는 특성상 어리거나 젊은 시기부터 접해 청춘의 한 시기를 함께 보내는 경향이 크다. 근래 ‘탑골가요’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사람들은 대부분 유아기부터 20대에 이르는 시기에 접한 대중문화에 평생을 저당 잡혀 산다. 그래서 대중문화 창작자들은 여타의 셀럽(유명인)들과는 다소 다른 위상으로 사람들 뇌리에 각인된다. 평생 추억으로 남을 어느 한 시기를 만들어준 이들이기 때문이다. 만화 외의 엔터테인먼트가 많지 않았던 지금의 중년 세대들이 만화가들에게 품는 감정이 각별한 까닭도 다른 데 있지 않다.
하지만 창작자들만이 아니라 한때의 청춘들도 함께 나이를 먹는다. 팬심으로 선망하던 대상이 고고한 곳에서 순수한 창작열만 불사르는 존재가 아님을, 독자들도 팬들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SNS를 비롯해 창작자들의 실제 생각과 모습이 드러날 여지가 늘어난 근래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대중문화 창작자들은 온라인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거나 아예 SNS를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의 SNS 사용 유무와는 상관없이, 완전히 정체를 감춘 채 활동하지 않는 이상 평소의 발언이나 생각, 과거 행적이 드러나는 걸 막을 도리는 없다. 사다모토 요시유키나 가토 쇼지는 저런 말을 드러내놓고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지만, 저런 해외 사례가 아니라도 문제 소지가 다분한 행태가 드러나는 경우는 국내에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불합리, 불평등, 부조리, 차별에 그저 가만있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실망하는 일은 갈수록 늘어나고, 추억에 배반당하는 일도 갈수록 늘어난다. 이젠 정말 대중을 상대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경계와 반성을 품고 살아가지 않으면 문자 그대로 미래가 사라지는 시대다. 하지만 추억이 배반할지라도, 마냥 슬프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보고 들을 건 여전히 많다. 빛바랜 추억은, 좀 버려도 된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