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부산에서 70대 남성이 차에 치어 숨졌다. 경찰은 과속 여부를 조사 중이다. 사진=경찰서 제공
12월 17일 밤 10시 30분쯤 부산 서구 남부민초등학교 앞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을 걷던 A 씨가 뒤에서 오는 차에 치여 사망했다. A 씨는 그대로 5m 앞 전봇대에 부딪혔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인도는 구청에서 진행하던 하수관로 공사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대체 보행로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공사 구간을 피해 걷던 A 씨가 달려오는 차에 봉변을 당한 것이다.
관할 구청인 부산서구청은 12월 14일부터 하수도관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도로공사를 진행하면서도 안전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청으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공사를 진행한 시공업체는 맨홀을 설치한 뒤 콘크리트를 말린다는 이유로 라바콘을 세워 인도의 보행자 통행을 완전히 차단했다. 구청은 사고가 난 다음날 라바콘을 철거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도로공사를 할 때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안전 표지판을 설치하고 신호수 등을 두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구청과 시공업체는 임시 보행로를 만들지 않았다. 또 도로공사를 시행할 때에는 해당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업체는 이마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인근 주민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뒤에 공사를 해야 하는데 인도를 완전히 막아놨다”며 “언젠가 사고 날 거라고 불안해했다. 애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유가족은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서구청에서 해당 지역을 관할하고 있음에도 안일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공한수 구청장는 사고 이틀 뒤인 19일 오전 7시쯤 빈소를 찾았으나 3분 만에 자리를 떴다. 유가족에 따르면 공 구청장은 유가족에게 “구청장으로 온 것이 아니라 구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왔다”며 “아직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논하긴 어렵다”고 말한 뒤 일정을 이유로 급히 이동했다.
이후 구청을 찾아간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도 문전박대에 가까웠다. 빈소에서의 공 구청장의 태도에 화가 난 유가족이 구청장과의 만남을 요구했지만 공 구청장은 “연말이라 일정이 바쁘다”며 만남을 거절했다. 구청 직원들 역시 “구청장님이 너무 바빠서 만나줄 시간이 없다. 약속을 잡고 다시 오라”고 답했다. 구청장 일정표를 보려고 하던 유가족과 구청 직원이 몸싸움을 벌여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A 씨의 동생은 “공사 때문에 보행로를 막아놨으면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터놔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구청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안일한 행정이 한 생명을 앗아갔다”고 답했다. 공 구청장은 20일 유가족에게 “사과 전화를 하겠다”고 했으나 유가족은 “현재까지 어떠한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부산서구청 관계자는 “구청장의 개인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부산서구청 건설과 관계자는 “아직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라 책임 소재를 따지기는 어렵다. 다만 공사는 시공업체에서 진행한 것이다. 구청에서는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12월 18일 A 씨를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B 씨(26)를 입건했다. B 씨의 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28%로 측정됐다. 이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3%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다. 인근 CCTV에는 B 씨의 차량이 앞서 전봇대를 들이받고 균형을 잃은 채로 달려 A 씨를 덮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B 씨에 음주 운전 혐의를 묻지 않기로 했다. 과속 여부는 조사 중이다. 차량 내 블랙박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어린이보호구역 내 부주의로 사고를 낸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민식이법’은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행일은 2020년 1월 1일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