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사진=고성준 기자
―정의당 부대표나 서대문 구의원 직함보다 ‘전두환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전두환 씨를 추적하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고 노회찬 의원실 인턴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 의원은 살아생전 삼성과 검찰 등 거대권력과 맞서 싸웠다. 노 의원은 이런 행동이 선출직 공직자의 소명임을 거듭 강조했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서대문구 구의원으로 공직생활 첫발을 뗐다. 주민으로부터 처음 부여받은 권력을 갖고 서대문구 안에서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여전히 이 지역에서 위세를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전두환 씨를 추적하는 것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서대문구의 수많은 국회의원과 구청장, 지방의원들이 전 씨 문제와 관련해선 누구도 책임 있게 나서지 않았다. 우리 당명이 정의당이지 않나. ‘정의당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라는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다.”
―전 씨와 두 차례 마주쳤다. 그 전까지 허탕을 친 경험도 많을 듯한데.
“물론이다. 헛다리짚고 허탕 친 기억이 훨씬 많다. 전두환 씨가 언제 어디로 골프를 치러가는지 특정을 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게 어느 정도 좁혀졌다 하더라도, 전 씨가 집에서 언제 나올지를 또 예상하기 어렵다. 골프를 치러가는 것으로 예상되는 날엔 새벽부터 전 씨 집 앞에 잠복한 적도 여러 번이다. 골프장에 미리 가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던 기억도 있다. 아슬아슬하게 전두환 씨와 스쳐지나간 경우도 있었다. 전 씨 차량을 쫓아가다가 신호대기에 걸려서 눈앞에서 멀어지는 전 씨 차량을 바라만 봐야 했던 날도 있었다. 전두환 씨와 마주친 것은 11월 7일 홍천 모처 골프장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거의 10개월 동안 허탕만 쳤다고 봐도 무방하다(웃음).”
―10개월 동안 잠복을 한 건가.
“10개월 내내 잠복을 한 건 아니다. 나도 서대문구 구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해야 하지 않나(웃음). 처음 추적을 시작한 뒤로부터 전 씨를 포착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는 것이지 10개월 내내 잠복한 건 아니다. 틈틈이 전 씨를 추적하면서 허탕 치기만을 반복하다가 처음으로 전 씨 포착에 성공한 것이 11월 7일이었다.”
―‘전두환 추적기’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을 법한데.
“소위 말하는 ‘맨땅에 헤딩’ 방식이었다. ‘무작정 뒤따라가 보자’는 식이었다.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전 씨 차량이 시야에서 그냥 사라져버릴 때가 많았다.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를 모르는 상황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제보를 바탕으로 추적을 시작했지만, 대한민국에 골프장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전 씨는 여러 골프장을 돌며 골프를 친다. 언제 어느 골프장에 전 씨가 나타날지 특정하기까지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10개월 잠복 끝에 ‘서대문구 주민’ 전두환 씨와 처음 마주한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사진=임한솔 제공
―11월 7일 전 씨 추적에 성공했다.
“여러 번 허탕을 치다보니, 허탕 친 사례 속에서 패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라. ‘이날엔 이래서 헛다리, 저날엔 저래서 헛다리’ 복기를 해봤다. 그렇게 하니 전 씨가 언제 어느 골프장으로 갈지 특정이 되더라. 11월 7일엔 전 씨가 홍천에 있는 골프장에 나타날 것으로 강하게 예측이 됐다. 11월 7일 아침, 전 씨의 차량이 자택을 출발하는 것을 보고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날은 차량을 시야에서 놓쳐도, 어디로 갈지를 미리 예측하고 있어서 괜찮았다. 전 씨 차량이 동쪽으로 향하는 것만 확인한 뒤엔 미리 골프장으로 가서 진을 쳤다.”
―전 씨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전략을 세웠나.
“그런 셈이다. 골프장 추적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먼저 ‘건강 이상’을 사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는 전 씨가 골프채를 멀쩡히 휘두르며 건강한 몸 상태를 자랑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 또 하나가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질문 두 가지를 던지는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여드리는 것 자체가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골프장 현장에서 전 씨가 1번 홀을 마치고 2번 홀 어프로치 샷을 시도하는 것을 포착했다. 이때 ‘충분히 전 씨가 골프채 휘두르는 장면을 담아냈다’고 판단했다. 다음 직접 전 씨에게 다가가 5·18과 관련한 책임에 대한 질문, 추징금 및 세금 미납 관련 질문을 던졌다. 전 씨는 굉장히 뻔뻔한 태도로 답했다.”
―12월 12일엔 전 씨와 신군부 오찬 모임을 포착했다.
“12월 12일 당일엔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전두환 씨를 추적했다. 마음 한편엔 ‘설마 군사 반란을 일으킨 날을 기념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설마가 현실이 됐다. 처음엔 12월 12일 전 씨가 다시 한번 골프를 치러 갈 것으로 예상했다. 전두환-이순자 부부는 자택 지하에 골프 연습장을 마련해놓을 정도로 대단한 골프광이다. 라운딩도 5공 독재를 함께했던 ‘신군부 주축’들과 함께하는 정황을 여럿 파악한 바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 씨가 단단히 채비하고 오전 11시쯤 집에서 나왔다.”
―뭐가 이상했나.
“전두환 씨가 보통 골프를 치러갈 땐 오전 9시를 전후로 집에서 나온다. 그런데 11시가 넘어 집에서 출발한 것이 이상했다. 처음엔 전 씨의 차량이 동쪽으로 향해 ‘조금 늦게 골프장을 가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거기서 전 씨 차량이 성수대교를 건넜다. ‘강남에서 중요한 식사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현장에 가보니 정호용, 최세창 등 12·12 군사반란 핵심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은 정말 반성하지 않는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12월 12일을 기념일처럼 챙겼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식사 자리였다.”
12월 12일 강남 모처 고급 중식 레스토랑에서 오찬을 마친 뒤 나오는 전두환 씨. 사진=임한솔 제공
―추적 과정에서 전 씨 경호원들로부터 제지를 받진 않았나.
“경호원들은 신분이 경찰이다. 경찰이 나를 막거나 제지하진 않았다. 11월 7일 골프장에선 오히려 경호 인력들이 저를 막기보단 전두환 씨를 막아서는 느낌을 받아 인상적이었다. 전 씨가 그 자리에서 나를 때리기라도 하면, 오히려 경호원들이 굉장히 골치 아픈 상황에 놓이는 형국이 아닐까 싶었다. 12월 12일 오찬 자리에서도 경호원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심정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었나.
“12월 12일 전 씨가 식사 자리에서 15만 원짜리 불도장(30가지 이상 재료가 들어간 중국 최고 보양 음식)을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경찰 소속 경호팀이 그 불도장을 나르는 역할을 하더라. 저는 그분들이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경찰이 됐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전직 대통령이 아니고 자연인 신분에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문제적 인물인 전두환 씨에 대해서 경찰이 경호를 해줄 법적 근거도 없거니와 그런 사적인 업무를 경찰에게 수행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부당하다. 전 씨가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면 사비로 사설 경호업체를 고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1997년 출소한 뒤 지금까지 전 씨 경호에 쓰인 세금이 100억 원 규모다. 2020년 경호 관련 예산도 2억 원이 넘게 책정이 돼 있다. 전 씨가 골프 치러 갈 때 지켜주고, 밥 먹고 나오는데 테이크아웃한 음식 날라주고 이런 역할을 하는 게 경찰의 역할이 아니라고 본다. 경찰 경호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도장을 테이크아웃했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여러 가지 전 씨 관련 자료를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전 씨는 굉장히 미식가이고 식탐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2월 12일에도 이미 나온 요리만으로도 상당히 배가 부를 상황인데 더 고급요리를 계속 추가 주문했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을 테이크아웃해가는 것을 보고선 전 씨가 음식에 대한 욕심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전두환 추적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 사진=고성준 기자
“사실 노태우 씨도 연희동 주민이다. 노 씨도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자, 독재정권의 주역이다. 하지만 나는 노 씨에 대한 추적은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 씨는 아들을 시켜서라도 12·12 군사반란 관련 사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노 씨 부인 김옥숙 씨는 망월동 5·18 묘역을 찾아가 직접 참배를 했다. 노 씨는 2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몇 년 전에 진작 완납했다. 전두환 씨와 대조적인 행보다. 전 씨는 반성이 없다. ‘5·18은 폭동이었다’ ‘젊은 사람이 나에게 안 당해봤다’와 같은 망언을 일삼고 있다. 여기다 전 씨 부인 이순자 씨는 2019년 연초부터 ‘전두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아버지’라는 망언을 보탰다.”
―앞으로도 전두환 추적은 계속되는 건가.
“당연하다. 내가 전두환 씨를 추적하는 데 있어 목표는 두 가지다. 먼저 5·18 발포 명령 책임이 전 씨에게 있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증명하는 것, 또 하나는 범죄 수익인 전 씨의 재산을 온전히 다 환수하는 것이다. 전 씨가 내 얼굴을 다시 보지 않으려면 본인이 5·18 관련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노태우 씨처럼 추징금과 세금을 완납하면 전 씨가 더 이상 내 얼굴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 행적을 봤을 때 전 씨가 이 조건들을 충족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추적과 단죄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전두환 씨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11월 7일 골프장에서 전두환 씨가 ‘너 명함 줘봐’ 해서 명함을 받아 갔다. 나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전 씨를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12월 12일 두 번째 만남에서 전 씨가 나를 알아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저 정의당 부대표 임한솔입니다’ 했더니 전 씨가 ‘어 그래’라고 답했다. 이날 전 씨가 꽤 과음해서 취해있는 상태임에도 또렷하게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자리에 있던 한 여성이 내 입을 틀어막은 사이 전 씨는 바로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전 씨가 내 존재를 알고 있다면 피하지 말고 만나서 진지한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죄의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정식으로 만나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