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라톤과 경보 경기는 도쿄가 아닌 삿포로로 옮겨서 진행할 예정이다. 삿포로는 북쪽에 위치해 있어 도쿄보다는 선선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굳이 엄청나게 더운 시기에 대회를 개최하는 걸까.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주간겐다이’는 “도쿄올림픽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미국 방송국과 스폰서, 정치인들의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고 한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쿄올림픽 뒷얘기를 모아봤다.
지난 15일 열린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준공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담당상, 아카바네 가즈요시 국토교통상,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엔도 도시아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왼쪽부터)이 준공식에 참석했다. 사진=AP/연합뉴스
#굳이 폭염 속에 개최하는 이유
1964년 도쿄올림픽은 10월 10일에 개막했다. ‘스포츠의 계절 가을’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이번에도 기후 좋은 10월에 올림픽을 개최한다면, 일부러 마라톤을 삿포로로 옮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선수와 관객들의 열사병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스포츠 전문기자 다마키 마사히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문제다. IOC는 미국 방송국으로부터 거액의 TV 방영권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등 인기 스포츠 시즌과 겹치는 가을을 피하고, 비수기인 여름에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어 한다.”
가령 미국 NBC유니버설은 2014년 소치올림픽부터 2032년 하계올림픽까지, 10회분의 올림픽 미국 방영권을 ‘120억 달러(약 13조 9700억 원)’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독점 계약했다. 요컨대 “IOC가 이 정도로 큰손인 단골손님의 뜻을 무시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9~10월, NFL(내셔널풋볼리그)과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가 시작된다. 덧붙여 비슷한 시기 대학리그 미식축구도 개막한다. 미국 스포츠 경제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가을보다는 여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편이 균형을 이룬다. 실제로 IOC는 “7월 15일부터 8월 31일 사이 하계올림픽 개최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의 정치적 역사’의 저자 줄스 보이코프는 “한여름 도쿄올림픽 개최는 선수와 관객의 건강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일”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작년 7월 도쿄에서 2주일간 체류한 적이 있다”면서 “고온다습해 열사병으로 숨지는 사람까지 나오는 마당에 경기를 치르려고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인기 경기 결승전은 왜 오전에 치러질까
도쿄올림픽 경기일정을 보고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며 갸웃거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육상 9종목을 비롯해 농구, 비치발리볼 같은 인기종목 결승전이 모두 오전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수영의 경우 예선전이 저녁 7시부터 실시되며, 준결승 및 결승전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된다. 주요 국제대회는 저녁 시간대 결승전을 치르는 것이 관례. 그런데 도쿄올림픽에서는 거꾸로 되어 있다.
왜 이런 ‘기묘한 일정표’가 나왔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개최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TV 황금시간대에 맞춘 것이다. 참고로 일본과 미국은 14~18시간의 시차가 있다. 다만, 곤란한 것은 선수들이다. 아침에 경기가 열리면서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수영처럼 여러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고민스럽다. 컨디션을 미처 끌어올리지 못한 채 아침에 중요한 결승전을 치르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다시 저녁에 예선전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올림픽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막대한 세금 투입, 폭염 속 개최 등 도쿄올림픽을 둘러싼 여러 의문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올림픽 스폰서가 된 일본 유력 언론들은 비판 기사를 쓰지 않고 있다. 15일 개장한 올림픽 주경기장 전경. 사진=EPA/연합뉴스
#올림픽에 투입되는 세금은 얼마일까
일본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JOC)는 “대회 경비가 총 1조 3500억 엔(약 14조 원)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 1조 2000억 엔은 도쿄도와 조직위원회가 각각 6000억 엔씩 부담하고, 나머지 1500억 엔은 정부가 부담한다. 내세우는 이름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바탕은 세금이다. 게다가 세금 투입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JOC가 발표한 예산은 쉽게 말해 ‘직접경비’로 신국립경기장 건설비 등이 해당된다. 이와 별도로 국가는 보안대책비 등 ‘간접경비’도 부담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약 1380억 엔을, 도쿄도도 8100억 엔을 관련 비용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부 합하면 정부는 2880억 엔, 도쿄도의 부담액은 자그마치 1조 4100억 엔에 달한다.
‘주간겐다이’는 “사실상 올림픽의 최대 스폰서는 일본 국민”이라면서 “한 사람당 1만 3000엔(약 14만 원)을 후원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더욱이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란다. 매체에 따르면, 도쿄도는 당초 마라톤 코스의 도로 온도를 낮추기 위해 특수 차열성 포장을 진행 중이었다. 관련 예산은 무려 24억 엔. 하지만 최근 IOC 측이 마라톤 개최지를 도쿄에서 삿포로로 변경하면서 혈세가 허공으로 사라지게 됐다.
매체는 “미국 대형 방송국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그 뒤치다꺼리를 일본 국민의 혈세로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고 있으나 이익을 얻는 것은 정작 방영권을 획득한 대기업과 일부 정치인, 경제 엘리트들뿐”이라는 비판도 이어나갔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는 “과거만큼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기 힘든 반면, 개최지에는 엄청난 세금 낭비와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신문사가 비판기사를 쓰지 않는 까닭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올림픽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비판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와 관련, 고베대학 오가사와라 히로키 교수는 “일본 메이저 신문사들이 일제히 올림픽의 스폰서가 되어 침묵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히로키 교수는 “개인적인 조사에 의하면, 신문사들이 올림픽 공식 스폰서가 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면서 “해외 연구자들도 일본 언론 환경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공식 후원사는 최상위 파트너인 TOP부터, 골드 파트너(티어1), 공식 파트너(티어2), 공식 서포터(티어3)로 나뉜다. 그런데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마이니치신문이 모두 티어2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홋카이도신문, 산케이신문 등도 티어3다.
원래 일본 신문업계에서는 2002년부터 요미우리신문이 JOC의 공식 파트너라는 입장이었다. 요미우리신문 측는 그대로 후원사가 됨으로써 올림픽보도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부터 ‘업종별 1개 업체’라는 후원 제한이 사라졌고, 아사히신문 등도 모두 스폰서로 참여하게 됐다. 타 신문사의 경우 요미우리신문의 독점을 막고 싶었을 터다. 히로키 교수는 “이런 이유로 일본 메이저 신문사에 의한 올림픽 비판 기사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전했다.
2016년 4월 일본 ‘주간신조’는 “JOC 모리 요시로 회장이 ‘올림픽을 비판하는 신문과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며 도쿄신문을 스폰서로부터 배제”한 사실을 보도해 논란이 일었다. 바꿔 말하면, 다른 신문사들은 JOC에 백기를 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스포츠평론가 다니구치 겐타로는 “일본 신문사들은 미디어로서 자살을 선택한 것과 다름없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