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와 보복성 음란물은 둘 다 내밀한 사생활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참혹한 피해를 불러오지만 보복성 음란물은 한때 매우 가까웠던 누군가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타깃 유포가 이뤄지기도 해 훨씬 치명적이다. 웹하드 카르텔 붕괴로 몰카와 보복성 동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없게 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몰카 범죄가 여전하듯 보복성 동영상 관련 범죄도 지속되고 있다(관련기사 ‘웹하드서 다크웹으로’ 몰카 범죄 여전히 기승). 관련 법률의 개정으로 처벌이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수위는 피해자의 충격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보복성 동영상의 폐해는 외국에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9년 10월 미국 정치권에서 주목받던 초선 하원의원 케이티 힐이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 이유는 그의 나체 사진과 사적 대화가 담긴 문자 메시지 등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됐기 때문이다. 힐은 이혼 소송 중인 남편 케니 헤슬렙이 사진과 메시지 등을 언론에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사회에서 보복성 동영상이 사회 문제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보복성 동영상이 유포될 수 있는 사이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3년 문을 연 ‘마이엑스닷컴’이 대표적인 보복성 동영상 공유 사이트였고 결국 2018년에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는 웹하드가 주된 보복성 동영상의 공유 공간이 됐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웹하드를 통해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급증했다. 여기에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촬영한 몰카도 있지만 촬영 당시에는 동의를 구한 후 헤어진 뒤 동의 없이 유포한 보복성 동영상도 많았다. 웹하드 카르텔의 붕괴로 웹하드에선 보복성 동영상이 사라졌지만 각종 음란 사이트에 보복성 동영상이 올라오는 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2019년 7월에는 현역 군인 2명이 보복성 동영상 유포 혐의로 적발되기도 했다. 육군 탄약사령부 병사 한 명이 헤어진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 및 성관계 동영상을 수차례 음란 사이트에 올린 것. 같은 탄약사령부 소속의 또 다른 병사는 동료 부대원들에게 헤어진 여자친구의 몰카를 온라인에 유포하겠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는데 육군본부 헌병실이 그 병사의 휴대전화를 확인한 결과 실제 그런 영상이 담겨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보복성 동영상 관련 사건은 바로 고인이 된 구하라 사건이다. 구하라와 전 남자친구의 법적 분쟁 과정에서 보복성 동영상 논란이 불거졌던 것. 그렇지만 1심 판결은 조금 달랐다. 2019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상해, 협박, 강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촬영), 재물손괴 등 5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구하라 전 남자친구에게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가장 논란이 됐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촬영)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그리고 구하라가 2019년 11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다. 이에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과 녹색당 등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1심 재판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낸시랭의 전남편 왕진진은 재판 과정에서 보복성 동영상을 통한 협박 혐의를 인정했다. 기자회견 당시의 왕진진. 사진=이종현 기자
역시 가장 큰 쟁점은 처벌 수위다. 그나마 몰카에 비하면 처벌 수위가 높다. 몰카의 경우 10건 가운데 9건가량이 벌금형 내지는 집행유예인데 반해 보복성 동영상은 실형을 받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많다.
2018년 10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헤어진 연인과의 성행위 영상 등을 19차례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A 씨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심지어 A 씨는 보복성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한 뒤 피해자 지인 100여 명에게 이를 볼 수 있는 인터넷 링크를 전달했으며 추가 영상 공개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혐의의 법정 최고형이 징역 3년이다. 이에 재판부는 A 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후 2심 재판부 역시 감형 없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르면 몰카 촬영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상호 동의하에 촬영한 동영상을 나중에 동의 없이 유포하는 보복성 동영상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었다. 이로 인해 A 씨는 최고형인 징역 3년형을 받은 것이다. 이 법률은 2018년 12월 18일에 개정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수위를 높였다. 그럼에도 피해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A 씨 사건은 그 뒤에도 화제가 됐다. A 씨가 유포한 동영상 가운데에는 피해 여성이 다른 남성과 찍은 것도 있었다. 확인 결과 피해 여성이 A 씨와 헤어진 뒤 만난 남자친구 B 씨였다. A 씨가 B 씨를 찾아가 자신이 피해 여성과 찍은 동영상 등을 보여주며 강하게 비난하자 B 씨도 자신이 찍은 피해자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A 씨에게 제공한 것. 그리고 A 씨는 이것 역시 유포했다. 이를 확인한 경찰은 B 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금은 법이 개정됐지만 2018년 11월까지는 신체를 직접 찍은 것이 아닌 영상 재생 화면을 재촬영한 경우에는 처벌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동선 프리랜서